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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테토스 - 까마귀가 울면 나쁜 일이 생길까? ㅣ 필로니모 5
알리스 브리에르아케 지음, 크실 그림, 박재연 옮김 / 노란상상 / 2022년 7월
평점 :
까마귀는 제소리를 낼 뿐인데 그것을 듣는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까마귀 소리를 싫어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까마귀 소리를 유쾌하게 듣지는 않는 모양이다. 까마귀는 참새, 까치만큼 흔한 새인데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불안해하는 것도 기막힐 노릇이다. 애써 무시해보려 해도 신경 쓰인다. 그러다 언젠가 까마귀가 효심이 지극한 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부터 까마귀 소리를 듣게 되면 떨어져 사는 부모님을 떠올리고 효도하자 다짐한다. 나름대로 까마귀 소리로 인한 불안감을 극복하는 방법이 되었다.
이 작고 단단한 그림책 속 철학자는 한발 더 나아간다. 떨치고 자유로워지고 있다. 어떤 의미에도 무관한 자유로운 새, 까마귀를 작은 틀 안에 가두고 우리 이성의 틀도 좁힌 건 아닐까. 표지의 둥근 구멍처럼 작게.
본문이 시작되고 등장하는 까마귀는 파란색이다. 사람들은 파란 안경, 파란 눈이다. 생각에 따라 파랗게 질리기도 한다. 알 수 없는 신의 뜻, 벗어나 있는 별은 파란색이다.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은 번민들이 파랗게 어지럽다. 다시 나타난 까마귀는 여전히 파랗다. 지혜로운 사람이 나타나면서 비로소 까마귀는 덧씌워진 파랑이 아닌 본연의 빛깔 검정을 갖는다. 파랑은 그릇된 신념, 내 밖의 변수들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이전에 재미있게 읽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중 에픽테토스 관련 부분을 찾아 다시 읽었다.
“삶의 많은 것들이 우리의 통제 바깥에 있지만,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지배할 수 있다. 바로 우리의 생각과 충동, 욕망, 혐오감, 즉 우리의 정신적·감정적 삶이다. (중략) 내면세계를 지배하라, 그러면 “천하무적”이 될 것이다.”
“스토아철학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과 성과를 “무관한 것”이라 칭한다. 이런 무관한 것들은 우리의 인성이나 행복에 티끌만큼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무관한 것들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러므로 스토아철학은 무관한 것들에 ‘무관심’하다.”
내 밖의 뜻을 아는 게 뭐 그리 중요합니까? 살아갈수록 공연한 일, 하지 않아도 그만인 일, 하지 않으면 더 좋을 일이 많음을 생각한다. 괜한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에너지를 쏟는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가? 순간순간 기쁘고 즐겁게 살면 그만 아닌가 생각한다. 과한 의미를 부여하며 살지 말자. 자연 그대로 두지 않고 잘못된 사유를 덧씌우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검정과 파랑의 대비. 단순한 색과 선, 간결한 문장으로 품게 하는 많은 생각들이 필로니모 그림책의 매력이다. 계속해서 시리즈가 이어지면 좋겠다. 온 세상 철학자들 다 만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