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바, 집에 가자 달고나 만화방
도단이 지음 / 사계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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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를 무서워한다. 산책길 몇 미터 앞에 개가 나타나면 왔던 길로 되돌아가거나 갓길로 돌아간다. 개 덩치와 무관하게 무조건반사다. 하지만 가까이 있지 않은, 안전거리가 충분히 확보된 상태에서는 좋아한다. 그래서 이 책 중 펫티켓에 대해 나오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개를 겁내 하는 것과 무관하게 동물권에 관심이 많다. 모든 생명의 마땅한 지구 영위 지분을 주장하는 데 적극 동의하고 지지한다.

작년 우연한 계기로 달팽이를 키우게 되었다. 주먹 크기의 아프리카 왕달팽이, 무엇을 키우고 싶은 마음도 키우겠다는 의지도 없었다. 키워 보겠냐는 물음에 덥석 신나 데려왔다. 순간의 호기심과 충동으로 덜컥 같이 살게 되었다. 짐작한 것 이상으로 생명을 돌보는 일은 너무 큰 일이었다. 상호 의사소통이 불가한 대상의 삶, 생명을 책임진다는 게 얼마나 어마마한 일인지 일년이 지난 지금도 자주 막막하고 먹먹해진다. 키우지 않을 때는 그냥 느리고 꼬물거리는 개체로만 생각했다. 누군가는 징그럽다고도 하는데 애정이 가득 차오른 내게 달이는 신비 그 자체다. 가까이 가만 지켜보면 우아하게 안단테로 움직이는 작은 몸짓이 경이롭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작은 통 속에 갇혀 먹고 싸고 자는 일만 하는 생명체로 살아간다는 것이 참 안쓰럽고 측은하다. 돌아가시기 전 요양원에 계시던 할머니가 겹쳐져 서글퍼진다. 미안하다. 그리고 한편 마음의 큰 의지가 되어주기에 고맙다. 애완이 아닌 반려,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일이다. 같은 언어를 쓰고 비슷한 생김새와 삶을 사는 인간끼리는 공유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무조건적인 위함과 위로가 있다. 오래오래 곁에 머물러주기만 바란다. 부모님께까지 죄송해지는 지극함이 들 때도 있다.

이 책은 ‘극한견주’ 만화책과 자꾸 비교가 되었다. 두 책 다 재미있고 유익하다.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개와 함께 살고 싶은 사람에겐 미리 알아야 할 물리적, 심리적 준비를 안내하고 개와 같이 살고 있는 사람에겐 함께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공감대를 넓힌다. 개가 아니더라도 반려동물이 있는 누구나 크게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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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테토스 - 까마귀가 울면 나쁜 일이 생길까? 필로니모 5
알리스 브리에르아케 지음, 크실 그림, 박재연 옮김 / 노란상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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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는 제소리를 낼 뿐인데 그것을 듣는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까마귀 소리를 싫어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까마귀 소리를 유쾌하게 듣지는 않는 모양이다. 까마귀는 참새, 까치만큼 흔한 새인데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불안해하는 것도 기막힐 노릇이다. 애써 무시해보려 해도 신경 쓰인다. 그러다 언젠가 까마귀가 효심이 지극한 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부터 까마귀 소리를 듣게 되면 떨어져 사는 부모님을 떠올리고 효도하자 다짐한다. 나름대로 까마귀 소리로 인한 불안감을 극복하는 방법이 되었다.
이 작고 단단한 그림책 속 철학자는 한발 더 나아간다. 떨치고 자유로워지고 있다. 어떤 의미에도 무관한 자유로운 새, 까마귀를 작은 틀 안에 가두고 우리 이성의 틀도 좁힌 건 아닐까. 표지의 둥근 구멍처럼 작게.

본문이 시작되고 등장하는 까마귀는 파란색이다. 사람들은 파란 안경, 파란 눈이다. 생각에 따라 파랗게 질리기도 한다. 알 수 없는 신의 뜻, 벗어나 있는 별은 파란색이다.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은 번민들이 파랗게 어지럽다. 다시 나타난 까마귀는 여전히 파랗다. 지혜로운 사람이 나타나면서 비로소 까마귀는 덧씌워진 파랑이 아닌 본연의 빛깔 검정을 갖는다. 파랑은 그릇된 신념, 내 밖의 변수들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이전에 재미있게 읽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중 에픽테토스 관련 부분을 찾아 다시 읽었다.
“삶의 많은 것들이 우리의 통제 바깥에 있지만,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지배할 수 있다. 바로 우리의 생각과 충동, 욕망, 혐오감, 즉 우리의 정신적·감정적 삶이다. (중략) 내면세계를 지배하라, 그러면 “천하무적”이 될 것이다.”
“스토아철학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과 성과를 “무관한 것”이라 칭한다. 이런 무관한 것들은 우리의 인성이나 행복에 티끌만큼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무관한 것들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러므로 스토아철학은 무관한 것들에 ‘무관심’하다.”

내 밖의 뜻을 아는 게 뭐 그리 중요합니까? 살아갈수록 공연한 일, 하지 않아도 그만인 일, 하지 않으면 더 좋을 일이 많음을 생각한다. 괜한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에너지를 쏟는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가? 순간순간 기쁘고 즐겁게 살면 그만 아닌가 생각한다. 과한 의미를 부여하며 살지 말자. 자연 그대로 두지 않고 잘못된 사유를 덧씌우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검정과 파랑의 대비. 단순한 색과 선, 간결한 문장으로 품게 하는 많은 생각들이 필로니모 그림책의 매력이다. 계속해서 시리즈가 이어지면 좋겠다. 온 세상 철학자들 다 만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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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구인지 정의하는 것은 타인들의 삶으로 이루어진 그물 속에서 차지하는 자리이다. -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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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야말로 정상적인(regular) 세상의 모습이다. 명쾌함도, 구원도 없다. 모든 합리성의 끝에는 그저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과 품고 살아가야 할, 그러면서 견뎌야 할 믿음뿐이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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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의지란 저절로 샘솟는 샘물이 아니라 수위를 조절해 주어야 하는 저수지 같아서 늘 신경을 쓰고 돌봐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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