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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번리의 앤 ㅣ 네버랜드 클래식 46
김경미 옮김, 클레어 지퍼트 그림, 루시 모드 몽고메리 글 / 시공주니어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앤은 또다른 나
어릴 때 “주근깨 빼빼마른 빨간 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로 시작하는 노래를 “여드름 통통 살찐 검은머리 쩡~”으로 개사해 부르며 앤과 나를 동일시하곤 했다. 애니메이션과 책으로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앤이었다. 앤은 어릴 적 친구, 행복한 추억 그 자체였다. 곧잘 뜻하지 않은 사고를 치기도 하고 남다른 상상력의 세계를 이해받기 힘들지만 나름 굳세게 성장하는 그 아이는 나였다.
<빨간 머리 앤>을 읽고 이후 삶을 다룬 책이 전집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진작에 들었지만 나는 딱 어릴 적 그 소녀만 기억하고 싶었다. 첫사랑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은 마음과 비슷하게... 그러다 이번에 <에이번리의 앤>을 읽게 되면서 뜻밖의 즐거움을 느꼈다. 그리고 또 이어지는 이야기 <레드먼드의 앤>도 궁금해졌다.
<에이번리의 앤>에서 교사로서의 삶이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같은 직업 종사자로 남다르게 읽혔다. 초임시절의 내 모습, 마음가짐과 많이 겹쳐졌다. ‘절대 체벌하지 않겠다’ 다짐하는 앤은 ‘아이를 꽃으로도 때리지 않겠다’, ‘맞을 짓이란 없다’ 생각하는 내 교육관과 맞닿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화에 사로잡혀 아이에게 매를 들곤 몹시 절망하며 괴로워하는 앤은 나의 부끄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초임시절 아이에게 매를 들고 집에 와 밤새 뒤척이며 펑펑 눈물을 쏟아 운 기억이다. ‘너무 말썽꾸러기였어, 그 아이가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거야..’라고 아무리 합리화 해봐도 그 순간 보다 이성적이고 침착하지 못했던 내게 마지막 화살은 겨눠지게 된다. ‘교사를 괜히 했나보다. 복 짓는 일이 아니라 죄 짓는 일인 것만 같다.’ 몬스터로 변해버린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맞은 아이 외 우리반 전체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이후에도 체벌은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두어 번 더 그런 일이 생기고 말았다. 지금 난 물리적인 체벌은 아니라도 언어 폭력을 예사로 쓰고도 잘못임을 금방 환기하지 못하는 무딘 교사가 되었다. 책 속의 이상화된 교사 앤이지만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스스럼없이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는 앤은 지금 내가 이 길을 제대로 가고 있나 다시금 살피게 해주는 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