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만 AI 시대에 자신의 개성을 잃지 않고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시스템의 부속품이나 알고리즘의 수동적인 소비자로 전락할지도 모를 운명으로부터, 인류의 미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기술이 아니다. 우리가 AI의 매끄러운 편리함에 저항하며, 기꺼이 사유의 짐을 짊어지고 고통스럽더라도 자기 자신을 극복해나갈 때, 비로소 노동 이후의 시대는 인간다운 시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스스로 생각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능력, 그것만이 AI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강력한 능력이자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증명일 것이다. - P262
전체주의는 사람들이 익해서 등장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생각하기를 멈추고, 타인의 판단에 의존하며, 세계를 자신의 눈으로보지 않을 때 등장한다. 전체주의의 악은 종종 사유의 결핍과 부재에서 비롯된다.
일이 사라진 이후, 모든 질문은 결국 인간 자신에게로 향한다. ‘인공지능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엘런 튜링은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했다. 본격적으로 열린 AI 시대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가?"
지금 우리는 새로운 위험 앞에 서 있다. 그것은 고전적 전체주의처럼 폭력과 공포로 인간을 지배하는 체제가 아니다. 오히려 편리함과 효율성 그리고 개인화된 서비스의 형태로 다가온다. 사람들은 조금도 강요받지 않은 채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선택의 상당 부분은 이미 알고리즘에 의해 예측되고 유도되었을 뿐이다.
인간은 점점 더 많은 판단을 기계에 위임한다. 그렇게 편리함에 취해 스스로 묻고 판단하기를 멈추는 순간, 아렌트가 경고했던 ‘사유의 부재‘가 완성된다. 그것은 곧 우리 스스로 세계에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가 되기를 자처하는 일이다. - P254
과거의 전체주의가 우리에게 "생각하지 말라"라고 명령했다면, 미래의 전체주의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라고 속삭일지 모른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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