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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아이, 루치뇰로 ㅣ 도마뱀 그림책 3
로사리오 에스포지토 라 로싸 지음, 빈첸조 델 베키오 그림, 황지영 옮김 / 작은코도마뱀 / 2022년 4월
평점 :
나쁜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약하고 외롭고 힘든 아이를 나쁘게 만드는 상황과 나쁘게 비추는 시선이 있을 뿐이다. 아이에겐 지안니라는 이름이 있지만 사람들은 루치뇰로-양초 심지처럼 마른 외양에 따른 별명으로 부른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지안니가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진 사람인지 아무도 관심 두지 않고 그저 겉으로 드러난 모습, 행동으로 판단하고 평가해버린다.
모두 내게 그러면 안 된다고만 말하지, 내게 왜 그러는지 묻는 사람은 없어.
나쁘다고 단정하고 낙인찍고 외면하기는 쉬운 일이다. 왜 그러는지 묻고 그 고민을 들어주고 도와주기는 어려운 일이다. 친구들도 학교도 쉬운 일만 한다. 아이는 관심, 인정이 고프고 그립다. 그래서 잘못된 행동으로 관심을 끌고 나쁜 무리의 꼭두각시가 되기도 한다. 아이는 시험에 든다. 친구이고 양심인 머릿니를 밟으라는 것이다. 아이는 그럴 수 없다. 스스로 시험에서 벗어나 답을 찾는 아이에겐 지극한 아버지도, 꿈같은 요정도 없다. 부러진 연필 한 자루라니. 그러나 아이는 더이상 꼭두각시로 조종되던 실을 휘감고 있지 않다. 자유로이 무언가라도 쓸 수 있다. 이제 비로소 현실을 직시하고 제대로 품어보는 희망,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써나갈 것이다. 아이의 홀가분해진 표정만큼 가벼워진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주인공 피노키오의 환상 이면에 주변인 루치뇰로의 현실에 관심 가진 작가의 마음이 귀하다. 암담하고 거친 현실을 아름답고 섬세하게 보듬는 그림 작가의 그림도 훌륭하다. 양극화로 아래와 위가 점점 더 아득히 멀어진다. 다들 위만 쳐다보는 와중에 아래에 닿는 시선에 퍼득 깨인다.
“아빠처럼 이런 곳에 오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아빠가 미처 전하지 못한 마지막 말은 무엇이었을까. 네 양심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다 나를 나쁘다고 손가락질해도 스스로는 아는, 내 안에 있는 좋은 마음, 양심만이 시궁창 같은 현실에 침잠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출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