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거인 - 어린이 책을 고르는 어른들을 위하여 바깥바람 10
최윤정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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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린이문학을 매개로 어른다운 삶의 길잡이가 되는 지침서 같다. 아이건 어른이건 끊임없이 성장해 가는 연장선에서 필요한 것들, 어른으로 아이에게 책을 권하며 주의해야 할 것들이 적절한 예시를 든 적확한 문장으로 서술되어 있다.

저자는 ‘어린이문학은 어렵다’는 말을 계속한다. 어른이 어른 이야기가 아닌 어린이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어른 작가가 어린이 독자 마음에 닿기가, 어린이 독자가 맛보기 전 기미상궁 노릇을 하며 가리고 막는 어른 독자까지 고려하기가 여러모로 어려울 수밖에 없는 장르 특수성이 있다. 게다가 유튜브, 게임, VR 등등 급격하게 변화하는 ‘재미있는 지옥’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어쩌면 어른도)에게는 올바른 지적과 권유일지라도 지루하고 갑갑한 잔소리일 뿐이다. 갇힌 이데올로기에서 해방되어 좀 더 가볍게, ‘생각하는 아이들’이 제대로 숨을 쉬도록 어린이문학은 다채롭고 유쾌해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가벼움이 소홀함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상황을 제시하는 것도, 해법을 제시하는 것도 다 진중한 고민이 필요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이지 않는 복잡한 세계로부터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러니까 분배의 불평등이나 부정부패나 권력에 의한 폭력 등의 문제를 날것으로 아이들에게 드러내며 사유를 촉구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아이들은 사회 개혁 의지를 추궁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141쪽) 뜨끔한 말이다. 있는 그대로 문제상황만 부각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불안함만 공유할 뿐이고 아이들의 불안함은 어른들의 불안함보다 더 큰 것이 될 것이다. 주의가 필요한 건 마무리도 마찬가지다. 안일하게 대충 해피 엔딩으로 얼버무리는 해법은 아이들도 쉬 알아차리고 실망한다. 아동문학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행복한 결말이 아니라 내면적 성숙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기댈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이 되어주어야 한다. 스스로 자신을 돌보고 깊어져야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된다. 글을 쓰는 어른도, 책을 권하는 어른도, 아이들 곁을 지켜주는 어른들 모두.

그러나 그런 어른 되기가 만만찮다. 그래서 저자는 일러준다. ‘아이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며 어른 또한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다.’(35쪽), 평범한 말인 것도 같은데 슬픈 거인을 울리는 울림이 있다. ‘상황에 코를 박고 있으면 ‘부분’밖에 보이는 게 없지 않은가. 눈물을 흘리고 있으면 시야가 흐리지 않은가. 거리를 두고 초점을 맞추어야만 모든 게 제대로 보인다.‘(121쪽) ’인생은 이런 거 아닌가. 인간의 관계에는 서로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상대방’만 있을 뿐 사태와 문제를 조망하는 제3의 눈이 없는 거 아닌가. 이래서 산다는 건 쓸쓸한 일 아닌가.‘(124쪽)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흑과 백 사이에 존재하는 회색의 스펙트럼을 점점 확장해 나가는 일이라고 생각된다.‘(125쪽) 등등 쭉쭉 밑줄을 치며 “그렇지……. 그런 거구나.” 새긴다. 위로 받는다.

어른 같지 않은 어른, 어른 같지 않음을 자랑스레 여기는 어른, 어른 같지 않은 어른임을 모르고 어른 행세하는 어른, 그런 어른들이 범람하고 있다. 내가 어떤 어른인지 자각하고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방향을 정할 때 믿고 물을 수 있는, ’슬기로운 어른 생활 지침서‘가 될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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