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가 주는 어두움, 무거움에 한참동안 표지 그림과 제목만 보았다. 얼마전 읽은 안데르센 원작의 고정순 그림책 '그림자'가 떠올라 쉬 열어볼 수 없었다. 저 너머 산과 노을이 다 비치는 이 그림자와 미루로 짐작되는 자그마한 아이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을까. 뜸을 들이다 만난 면지에는 마그리트 하늘빛 하늘과 구름이 펼쳐졌다. 잔뜩 긴장했는데 괜찮다고, 아무 일 없다고 토닥여주는 것같았다. 긴장을 풀고 다음으로 넘겼다. 속표지 아이의 뒷모습에 또 덜커덕 걸렸다. 아이가 밖에 있는 것이 특이하다. 보통 이런 구도에선 아이가 창 밖이 아닌 건물 안, 이쪽에서 창 밖을 내다보는데 말이다. 아이는 건물 밖에서 창에 기대 창 밖 풍경과 같이 머문다. '이미 나가 있다. 기대고 있어 편하겠다. 너무 덥지도 않고 바람이 적당히 불어주고 있다. 아이는 다 보고 있지만 딱히 무언가를 보고 있진 않다. 아무 생각없이 멍하니 있지만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의식의 흐름대로 나도 가만히 여기서 같이 바라보며 잠기게 되는 생각이다. (끝까지 읽고 돌아와 다시 살핀 이 장면은 또 달리 보였다. 그림자가 두드러져 보이며 골똘하게 만들었다.) 본문을 읽으면서는 우선 그림이 너무 좋았다. 그림만 보아도 근사한 갤러리를 거니는 호사를 선물한다. 글은 찬찬히 곱씹어진다. 크고 진하게 씌어진 낱말은 작가님이 세워둔 표지판같다. 유심히 따라가며 길을 잃지 않을게요. 다짐하며 미루와 같이 여행했다. 그림책이 아이만 보는 책이 아니라 어른까지 다 보는 책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어른만 좋아할 그림책도 많이 쏟아지고 있다. 정진호 작가 강연에서 듣길, 그림책은 0세부터 100세까지 보는 책이라 하는데 그것은 10살 때 봤을 때와 2,30대 봤을 때가 다른.. 독자와 책이 같이 성장하며 본다는 의미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어른책, 아이책 구분지어지지 않고 다 나름으로 즐길 수 있는 그림책이 좋은 그림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으로 '미루와 그림자'도 여러 재미와 의미로 읽을 수 있는 꺼풀 두꺼운 책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