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거의 체험을 어떤 식으로건 서사화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저명한 실용주의자 리처드 로티는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1989)에서 자신의 과거를 바로 자신의 언어로 ‘재서술‘하는 행위의 중요성에 대해 열렬히 강조한 적이 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읽고 해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비평가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삶이라는 이야기를 전적으로 자신의 뜻대로 쓸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운명 혹은 신이 쓴 이야기 속의 힘없는 주인공으로서 태평양 위를 표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