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도 못하면서 - Like You Know It Al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너무 늦게 본 것일까요? 홍상수 감독 영화는 놓치지 않고 봐왔는데, 이번에는 아쓸하게 막차를 탔습니다. 걸려 있는 극장이 많지 않더군요. 고맙게도 스폰지하우스가 저를 구해줬습니다. ^^

사람들이 다들 그러더군요. 홍상수 감독 영화 중에 그나마 재미 있는 영화라고. 보고 난 제 평가는 좀 다릅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썩 재미 있지는 않았습니다. [오! 수정]이나 [생활의 발견] 때만큼 많이 웃지 못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첫 영화였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가장 재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잘 알지도 못 하면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홍상수 감독이 자비를 들여 만들었고, 배우들은 영화 내용도 모른채 노개런티로 출연을 결정했답니다. 엄지원의 촬영일지를 보니, 캐스팅 단계에선 공형진이 엄지원의 남편이었더군요. 엄지원이 살짝 싫은 티를 냈더니 영화 내용처럼 바뀌었나 봅니다. 엄지원은 그저 "제천 사는 여자"라는 얘기만 듣고 출연을 결정했답니다. 트리트먼트도 촬영 당일날 해당일 분량이 나왔다고 하니, 배우들도 영화를 보고 나서야 자기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뒤늦게 깨닫지 않았나 싶습니다. 즉흥성과 우연성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있으면, 배우들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마다 피식 웃음과 함께 관객들의 입에서 제목이 나즈막이 터져나옵니다. "쳇..잘 알지도 못 하면서."

"잘 알지도 못 하면서".
일상에서 이 말의 화법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타인의 비판이나 오해로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 최후의 방어 수단으로 이 말을 내뱉습니다. "잘 알지도 못 하면서..." 나를 잘 알지도 못 하면서 니 마음대로 넘겨짚고 평가하지 마라...상대방의 인식 한계를 지적하면서 쿨하게 도망칠 수 있는 방어수단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내뱉고 돌아서면 늘 기분이 찜찜합니다. 자신도 잘 알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나는 나를 잘 아나? 나는 그를 잘 아나? 대체 내가 아는 게 뭔데? 한 방 먹이고 돌아서려다 부메랑처럼 크게 얻어 맞는 말입니다. 영화에서도 이 점을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영화의 중요한 사건들은 죄다 주인공들이 술에 취했거나 당사자가 부재 중인 "잘 알지 못 하는" 상태에서 벌어집니다. 공형진이 난리치던 일도, 엄지원이 강간당하는 일도, 대선배가 학생과 성관계를 갖게 되는 일도, 김태우가 고현정과 뜨거운 정사를 나누는 일도 모두 "잘 알지 못 하는" 상태에서 일어나고, 영화 끝날 때까지 미스테리로 남습니다.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들이 그렇듯 잘 알지 못 하는 상태에서 결정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나 봅니다. 하지만, 홍상수의 진짜 미덕은 이런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태도에 있습니다. 그는 자칫 비극처럼 보일 수 있는 장면들을 풍부한 위트로 채워 좀 더 가볍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우리는 잘 알지도 못 하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떻습니까?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고, 잘 몰라도 괜찮습니다...홍상수는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따뜻한 위로를 받은 느낌이 듭니다. 저는 여기에 한 문장 더 붙이고 싶습니다.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에게 "잘 알지도 못 하면서.."하며 뿌리치지 마세요. 몰라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덧) 엄지원은 보면 볼수록 귀한 배우입니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드러낼 줄 아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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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 알지도 못 하면서] By 홍상수
    from Omentie's Mind Healing Process 2009-06-22 00:16 
    너무 늦게 본 것일까요? 홍상수 감독 영화는 놓치지 않고 봐왔는데, 이번에는 아쓸하게 막차를 탔습니다. 걸려 있는 극장이 많지 않더군요. 고맙게도 스폰지하우스가 저를 구해줬습니다. ^^ 사람들이 다들 그러더군요. 홍상수 감독 영화 중에 그나마 재미 있는 영화라고. 보고 난 제 평가는 좀 다릅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썩 재미 있지는 않았습니다. [오! 수정]이나 [생활의 발견] 때만큼 많이 웃지 못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첫 영화였던 [돼지가 우물에..
 
 
프레이야 2009-06-22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니 오히려 사랑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