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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사도들 - 최재천이 만난 다윈주의자들 ㅣ 드디어 다윈 6
최재천 지음, 다윈 포럼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2월
평점 :
저자의 애초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진화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독자로서 비판을 남깁니다.
이 책은 진화론을 종교로 퇴행시키고, 진화론자들을 신앙인으로 타락시킬 위험이 다분합니다. 출판사가 밝힌 이 책의 영어제목은 Darwin’s 12 Apostles 즉, 다윈의 열두 사도입니다. 목차를 보면, 소개하는 과학자들을 제1사도, 제2사도 같은 식으로 지칭하며, 책의 표지에는 "세계 유일의 진화론 사도행전"이라고 광고해두었지요. 책의 구성이 독자들로 하여금 예수의 열두 사도를 연상토록 자극하고, 예수의 자리에 다윈을, 열두 사도의 자리에 과학자들을 앉히려는 의도인가? 하는 의심이 따라오도록 만듭니다. 그런 연상을 의도한 게 아니라고 한다면, 독자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심하게 무시한 처사겠지요.
저자는 곳곳에서 사도라는 말을 자주 반복해서 사용하는데, 이 책에 소개된 과학자들을 진심으로 아끼며 읽어온 독자로서는 심각한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Apostles)는 종교적인 의미를 제거하더라도 추종자(Followers)를 뜻합니다. 추종자는 선지자의 뒤만 충실히 따를 뿐, 앞서 나아가지 않지요. 하지만, 과학은 이전 세대가 간과했던 지식들의 가치를 재발견하거나, 이전 세대의 주류였던 지식체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과학자들이 평생 동안 주장해온 것이고, 진화론은 그런 파괴와 혁신, 재창조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진화하여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 소개된 과학자들, 리차드 도킨스, 스티븐 핑거, 대니얼 대닛이 다윈의 추종자인가요? 이들은 다윈의 추종자가 아니라, 계승자들(Successors)입니다. 다윈이 멈춘 곳에서 시작해서 다윈보다 더 멀리 나아간 과학자들입니다. 저자 본인이 스스로를 추종자라 여긴다고 해서 이 과학자들을 대중에게 추종자로 소개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온당한 처사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이 책에 소개된 과학자들 중 몇몇은 적그리스도라는 오해와 비난을 감내해가며 종교를 비판하고 과학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일생을 바쳐 고군분투해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사도라는 명칭이 온당합니까? 리차드 도킨스가 자신이 다윈의 제4 사도라고 불리길 원했을까요? 저자와 출판사에게 진지하게 묻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과학자들이 정말 다윈의 열두 사도라 불리는 것에 동의한 것이 맞습니까?
책의 제목과 구성, 목차, 그리고 내용에서 사도라는 용어를 재고해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