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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십 트루퍼스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5
로버트 하인라인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좋아. 약점은 인정하자.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스타십 트루퍼스>는 실로 '남성적인' 작품이다. 글쎄,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의 남자로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상사들에게 어머니란 없어. 놈들은 분열해서 번식해…… 박테리아처럼 말이야.'와 같은 대사라든가 '우리 종족의 여성'이라는 생물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불타는 듯한 망상에서 비롯된 신화일 뿐이라고 확신'하는 사병들의 모습 앞에서 폭소를 터뜨릴 여자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을 듯 하다. 기동보병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전우애를 불태우는 주인공 조니 리코를 이해하는 것도, 어리숙한 부하의 질문에 대해 조롱하는 듯 비꼬며 답하는 상관의 모습을 이해하는 것도 결국 남성 독자들만의 특권(?)일 것이다.

중요한 점은, <스타십 트루퍼스>의 남성적인 태도가 노골적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은 결국 '군대 이야기'이고, 일부 해군들을 제외하면 여성 병사는 나오지도 않는다. (여군의 활약은 책 초반에 언급되는 이베트 델라드리에 함장의 경우를 제외하면 찾아볼 수도 없고.) 곤란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은 이처럼 여성들에게 불친절한 대신에 남성들에게는-최소한 나에게는-그만큼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얼렁뚱땅 군에 입대하게 된 조니 리코가 훈련받으며 억샌 군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후반부에 등장하는 외계 생명체와의 전투 이상으로 흥미진진하다. 설령 '역사와 윤리 철학' 과목의 과격한 논리가 중간중간 섞여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말이다.(좀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부분조차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었다. 무지한 것은 때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폴 버호벤이 만든 동명의 영화-SF독자들에게 무던히도 욕을 먹는-와는 달리, 이 소설은 밀리터리 액션물이 아니라 소년 성장물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물론 이후 일본 애니매이션 『모빌수트 건담』을 비롯, 수많은 작품들뿐만 아니라 실제 미군 장비 개발 작업에까지 영향을 미친 강화복의 매력 또한 무시할 수는 없으나 역시 이 작품 전체의 주된 즐거움은 평범한 청년이었던 조니 리코가 어떻게 단련되는가하는 데에 있다. 리코의 성장은 고대 영웅 신화로부터 반복되어 오던 주인공의 신화적 행위를 통한 자아 재발견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는 수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처음보다는 더 강인한 모습을 갖춰나간다. 그러나 리코의 성장은 미완성이다. 오히려 진정한 영웅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은 리코를 단단하게 훈련시켜 나가는 상관들이며 리코는 그들의 행위를 모방하고자 하는 미숙한 청년이다. 페르세우스 그 자신이 아니라 페르세우스가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던 에디오피아의 한 꿈많은 소년 같은 위치에 있달까. 그러한 리코의 위치가 도리어 나같은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을 보다 친숙하게 느끼고, 그의 성장을 즐거워하게끔 하는 게 아닐지.

모든 다른 소설들처럼, <스타십 트루퍼스> 또한 한계가 있는 작품이다. 뒤보아 선생의 입을 통하 들리는 하인라인의 말은 과격하기 짝이 없고 작품 전체에 근육질 아드레날린의 냄새가 풍긴다. 그러나 군인으로서 성장해 가는 리코의 이야기는 그러한 단점들을 극복하고라도 한 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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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사회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3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미리 고백하고 싶은 것. 나는 로저 젤라즈니의 팬이다. 누군가 말했듯, 팬은 '기본적으로 상대의 단점 아홉개보다 장점 하나가 좋아서 어쨌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집단'이며, 젤라즈니의 팬인 나로서는 그의 작품에 매료되었다는 이야기 외에는 달리 할 이야기가 없다.

나는 <앰버 연대기>를 다 읽고 '이 망할 자식, 다시 살아나지 못해!'라고 외쳤고,(그는 1995년에 사망했다.)<내 이름은 콘라드>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뒤에 그 욕망은 한층 더해졌다. 출판사 열린책들 측에서 나온다 나온다하면서도 젤라즈니 중단편집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의 출간을 미루고 있을 때 그 기다림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결국 작년 11월 30일에 나왔는데, 나는 그 504쪽짜리 양장본을 코트 주머니에다가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읽었다. 또, 염증이 생겨 사랑니를 뺀 뒤에는 한쪽 손으로는 볼에 큼지막한 얼음주머니를 대고 다른 손으로 책장을 넘겼다.)

그렇게 젤라즈니에 심취해 있을 때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신들의 사회>는 젤라즈니 전기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옛 정신세계사 판은 이미 절판되었고, 동네 도서관에서도 찾을 수 없었기에 대번에 몸이 달았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간 헌책방이고 어디고 도통 찾을 수 없었던 이 책을 이제야 만나게 되니 얼마나 기쁜지. 단숨에 읽어치웠다.

인도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 독특한 SF에는 로저 젤라즈니만의 특성-혹은 테마-이 여실히 드러난다. 불사에 가까운 초인적 인물 군상, 신으로 받들어 모셔지지만 실은 신이 아닌 존재를 통한 신성(神性) 담론, 다분히 현학적이지만 지루하지 않고 매력적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형이상항적 이야기들, 배경이나 인물간의 관계에 녹아든 신화적, 상징적인 요소들.(물론 이 작품의 경우 애초에 노골적으로 인도 신화의 요소를 차용했으니만큼 그 정도는 더하다고 하겠다.) 그 모두가 모여 작품의 활극적 요소에 품위를 더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단순한 전개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지적 포만감까지 제공하는 것이 <신들의 사회>의 매력이자 젤라즈니 작품의 매력이다. 그리고 그 내적 매력은 다시 젤라즈니 특유의 아름답고 현란한 문체로 장식되어 비할 데 없는 화려함을 제공한다.

이 호화찬란한 이야기 속에서 젤라즈니는 결국 '인간'을 이야기한다. 단,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또 읽고 나서 가슴 속에 아로새겨지는 그 인간은 우리가 현재 인간으로서 바라보는 인간이 아니라, 보다 광대한 우주적 차원에서의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이 작품을 읽는 것은 그처럼 인식의 범위를 보다 광대한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며, 그것은 나에게는 종종 종교적 황홀경처럼 느껴지곤 한다. <신들의 사회>는 그런 이야기이다.

바라건대 이 감상문을 읽는 당신의 장래 희망이 매드 사이언티스트라면 세계 정복 따위는 집어치우고, 로저 젤라즈니를 되살려 이와 비견될만한 작품을 더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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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Ngo 2006-02-07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망할 자식, 다시 살아나지 못해!' 그렇습니다.
 
불사판매 주식회사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2
로버트 셰클리 지음, 송경아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인간이 '살아'있는 이상 '죽음'은 항상 떼어놓을 수 없는 테마다. 특히 그것은 미지의 세계라는 점에서 인간에게-다른 '미지'의 것들과 마찬가지로-언제나 극복의 대상이 되어왔다. 따라서 많은 작가들이 죽음을 극복한 인물, 혹은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 해 온 것은 결코 특기할만한 일은 아니다. 로버트 셰클리의 <불사판매 주식회사> 역시 그 제목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불사, 즉 죽음 극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불사판매 주식회사>가 보여주는 세계는 죽어가는 신체를 바꿈으로써 생명을 연장하고, 내세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토대로 죽은 후에도 안전하게 내세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세계다. 단, 가진 자만이. 문제는 거기에서 발생한다. 내세를 보장함으로써 죽음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삶에 대한 집착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내세를 보장하는 대신 그들의 육체를 사서 자신의 생명을 연장한다. 또, 부자이기에 삶의 모든 쾌락을 맛볼 수 있었던 이들은 멋진 죽음을 '경험'하기 위해 자신을 죽여줄 사냥꾼들을 고용한다.

그런가하면 타인의 빈 육체에 잘못 들어가 자아를 잃어버린 좀비가 거리를 돌아다니며 불완전한 영혼은 유령이 되어 인간에게 해를 입힌다. <불사판매 주식회사>의 이러한 세계는 다분히 환상적이며-유령, 좀비, 버서커 등의 어휘만 보아도 장르 팬터지가 떠오르지 않는가-동시에 그 환상은 이론을 통해 현실화, 구체화됨으로써 실제적인 악몽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런 비극적 세계관과 달리 이야기는 타인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면서도 의연히 그에 맞서는 영웅적 주인공을 통해 경쾌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디스토피아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에 대한 비판-풍자로 되살아난다. 동시에 그 사이사이에 곁들여지는 영혼과 육체에 대한 담론, 미래의 새로운 자유에 대한 이야기는 이 작품을 단순한 모험담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한다. 최후에 주인공이 맞이하게 되는 문제-지극히 원론적인 양심의 문제에 이르러서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뒤돌아볼 때, 나는 이 이야기가-역자 송경아 씨가 서문에서도 언급했듯이-어떠한 종교적 숭고함에까지 이르는 것을 느꼈다.

로버트 셰클리는 자신이 '로맨틱한 모험에서 사회 풍자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분야'인 SF에 대해 언제나 강한 매력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그럼 나는 이렇게 고백하리라. <불사판매 주식회사>야 말로 로맨틱한 모험에서 사회 풍자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나에게 강한 매력을 제시하고 있노라고.

덧. 역자 서문은 본 작품의 결말 부분을 미리 밝히고 있다. 따라서 독자들께서는 먼저 작품을 읽은 뒤에 역자 서문을 보시길 충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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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세계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1
아서 코난 도일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아서 코난 도일에게 있어 '셜록 홈즈'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명탐정 셜록 홈즈'는 그에게 전세계적인 명성을 부여했으나 동시에 코난 도일의 다른 영광마저 모두 자신의 것으로 돌리고 말았다. (그는 1899년 보어 전쟁에 참전하여 종군 경험을 토대로 여러 저작물을 발표했고, 그 사회적 공헌을 인정받아 1902년 기사 작위를 받기에 이른다. 헌데 종종 코난 도일의 기사 작위를-마치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경우처럼-'셜록 홈즈' 시리즈의 창작 때문에 받은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마저 있으니, 셜록 홈즈가 앗아간 그의 영광이라는 게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만 하다.)

그리고 본 작품, <잃어버린 세계> 또한 셜록 홈즈가 앗아간 코난 도일의 영광 중 하나다. (아아, 기존에 SF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 분들은 이 발언을 참아주시길. '코난 도일=추리 소설 작가'라는 공식이 대중들의 보편적인 인식인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 않는가.)

<잃어버린 세계>는 <지구 속 여행>이나 <해저2만리>등 경이소설의 맥을 잇는 작품이다. 멸종된지 오래인 고대 생물들(표지와는 달리, 코난 도일은 고대 동물과 식물에 양자 모두를 공평하게 언급하고 있다. 물론 멸종된 양치식물보다 멸종된 공룡의 존재가 독자를 더 자극할 것임은 분명하지만.)이 여전히 살아있는 오지에 대한 탐험을 소재로 하는 이 작품은 경이소설들이 지닌 과학적 접근이나 모험의 요소를 충실히 갖추고 있다.

여타 경이소설들이 그러하듯, '외부와 고립된 채로 고대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세계'라는 이 작품의 무대는 해박한 과학적 지식을 지닌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논리적 합리화 과정을 거쳐 독자들에게 제시된다. 독자는 그것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쩌면 그럴 수 있을지도?'라는 은근한 거짓말에 끌리고, 덕분에 이 경이의 세계 속에서 펼쳐지는 주인공들의 모험담은 그 생명력을 얻게 된다.

그러한 경이소설 특유의 즐거움과 더불어, 이미 '셜록 홈즈'를 통해 익히 알려진 코난 도일의 이야기 솜씨는 <잃어버린 세계>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각자 독특한 개성을 지닌 등장인물들은 오늘날의 독자가 보기에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 속에서 코난 도일이 펼쳐내는 영국식 유머 감각은 독자들에게 경이의 세계에 대한 두근거림 외에 즐거운 웃음까지 제공하고 있다.

'<잃어버린 세계>는 독자를 끄는 매력이 있는 멋진 소설이다.'라는 요지의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그치고, 글을 맺기 전에 좀 더 작품 외적인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미 코난 도일의 유머러스하고 쾌활한(이것은 '셜록 홈즈'에 비해서 특히 두드러지는 점인데, 아마도 화자가 침착하고 이지적인 왓슨 박사에서 혈기왕성한 젊은 기자 멀론으로 바뀌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문체를 잘 살려냄으로써 나를 즐겁게 해 준 역자 김상훈 씨는 책 말미에 20여쪽의 해설을 덧붙임으로써 나에게 또 하나의 감동을 전해주었다.
해설에서 그는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이나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SF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SF에 대한 현재 대한민국 대중의 인식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그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그의 해설은 분명 이 장르에 처음 발을 디디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100권 분량의 총서를 출판하겠다는 출판사 행복한책읽기의 앞길에 기존 SF팬들뿐만 아니라 새로 이 영역에 발을 디디는 독자들의 관심도 함께하길 바라며, 글을 맺는다.

덧 하나. 추리소설에 있어서는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모리스 르블랑, 경이소설에 있어서는 '경이의 세계' 시리즈의 쥘 베른. 코난 도일의 활동 분야를 보면 그 반대편에는 언제나 프랑스 작가들의 족적이 보이는 게 아닌가 싶어 슬쩍 웃어본다. 덧 둘. SF이야기를 하려했는데 정작 감상문을 쓰면서 내내 경이소설이라는 어휘를 사용하다니. 특별히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꺼림칙한 기분이 든다. 부디 이 부족한 감상문 읽으시는 분들께서 오해 않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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