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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사회 ㅣ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3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미리 고백하고 싶은 것. 나는 로저 젤라즈니의 팬이다. 누군가 말했듯, 팬은 '기본적으로 상대의 단점 아홉개보다 장점 하나가 좋아서 어쨌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집단'이며, 젤라즈니의 팬인 나로서는 그의 작품에 매료되었다는 이야기 외에는 달리 할 이야기가 없다.
나는 <앰버 연대기>를 다 읽고 '이 망할 자식, 다시 살아나지 못해!'라고 외쳤고,(그는 1995년에 사망했다.)<내 이름은 콘라드>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뒤에 그 욕망은 한층 더해졌다. 출판사 열린책들 측에서 나온다 나온다하면서도 젤라즈니 중단편집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의 출간을 미루고 있을 때 그 기다림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결국 작년 11월 30일에 나왔는데, 나는 그 504쪽짜리 양장본을 코트 주머니에다가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읽었다. 또, 염증이 생겨 사랑니를 뺀 뒤에는 한쪽 손으로는 볼에 큼지막한 얼음주머니를 대고 다른 손으로 책장을 넘겼다.)
그렇게 젤라즈니에 심취해 있을 때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신들의 사회>는 젤라즈니 전기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옛 정신세계사 판은 이미 절판되었고, 동네 도서관에서도 찾을 수 없었기에 대번에 몸이 달았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간 헌책방이고 어디고 도통 찾을 수 없었던 이 책을 이제야 만나게 되니 얼마나 기쁜지. 단숨에 읽어치웠다.
인도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 독특한 SF에는 로저 젤라즈니만의 특성-혹은 테마-이 여실히 드러난다. 불사에 가까운 초인적 인물 군상, 신으로 받들어 모셔지지만 실은 신이 아닌 존재를 통한 신성(神性) 담론, 다분히 현학적이지만 지루하지 않고 매력적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형이상항적 이야기들, 배경이나 인물간의 관계에 녹아든 신화적, 상징적인 요소들.(물론 이 작품의 경우 애초에 노골적으로 인도 신화의 요소를 차용했으니만큼 그 정도는 더하다고 하겠다.) 그 모두가 모여 작품의 활극적 요소에 품위를 더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단순한 전개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지적 포만감까지 제공하는 것이 <신들의 사회>의 매력이자 젤라즈니 작품의 매력이다. 그리고 그 내적 매력은 다시 젤라즈니 특유의 아름답고 현란한 문체로 장식되어 비할 데 없는 화려함을 제공한다.
이 호화찬란한 이야기 속에서 젤라즈니는 결국 '인간'을 이야기한다. 단,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또 읽고 나서 가슴 속에 아로새겨지는 그 인간은 우리가 현재 인간으로서 바라보는 인간이 아니라, 보다 광대한 우주적 차원에서의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이 작품을 읽는 것은 그처럼 인식의 범위를 보다 광대한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며, 그것은 나에게는 종종 종교적 황홀경처럼 느껴지곤 한다. <신들의 사회>는 그런 이야기이다.
바라건대 이 감상문을 읽는 당신의 장래 희망이 매드 사이언티스트라면 세계 정복 따위는 집어치우고, 로저 젤라즈니를 되살려 이와 비견될만한 작품을 더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