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르부르의 저주 - 귀족 탐정 다아시 경 1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6
랜달 개릿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랜달 개릿의 '귀족 탐정 다아시 경Lord Darcy' 시리즈는 여러모로 즐거운 작품이다. 대체역사 SF로서의 배경을 깔고, 그 위에 과학적(그렇기에 또한 SF인 걸까?) 마술의 요소를 녹여내 만든 멋진 추리소설이기에 장르 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누구나 만족할만한 작품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복합 장르적 요소는 단순히 이것저것 갖다 붙인 정도에 그치지 않고 서로 긴밀히 어우러져 있기에 각각의 장르-SF, 팬터지, 추리-를 더욱 참신한 형태로 재구성해내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귀족 탐정 다아시 경' 시리즈는 새로운 형태의 SF이자 새로운 형태의 팬터지 소설이며 새로운 형태의 추리 소설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더욱 주목할만한 사실은 이러한 '새로움'이 작품 발간으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체역사 SF의 측면에서, 이 작품은 영국의 사자심왕 리처드가 전쟁에서 전사하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로 인해 신대륙과 서유럽에 걸친 거대한 영불(英佛)제국이 형성되고, 그 제국은 로마 제국 이상으로 오랫동안 존속되며 유럽 및 신대륙 전역에 평화를 이끌어낸다. 랜달 개릿은 작품 속에서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여러차례 반복하여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설정을 충실히 인식시키는 동시에 제국의 이름처럼 영어와 프랑스어를 오가는 언어의 사용을 통해 작품 전체에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아무래도 주인공 다아시 경이 영국 태생인지라 영국적 분위기가 더 진하긴 하지만.)

그러나 역사적 설정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마술에 대한 설정이다. '귀족 탐정 다아시 경'의 세계에서 마'술'은 그 명칭이 뜻하는 바처럼, 신비로운 불가지의 대상이기 이전에 과학적으로 분석되고 탐구될 수 있는 '기술'이다. 가톨릭에 의해 통제되며 법칙에 따라 행해지는 마술은 그 설정만으로 팬터지에 익숙한 독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마술은 흥미로운 설정 정도에 그치지 않고 다아시 경이 겪는 여러 사건들에 깊숙히 개입함으로써 괴사건의 원인이자 해결책으로서의 역할을 한다.(그러나 마술은 직접적으로 '범인은 누구다!'라는 식으로 완벽한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지는 않으며 단지 '기술'적 측면으로서 기능함으로써 페어 플레이를 하고 있다.) 이러한 마술의 역할은 다시 추리 소설로서의 '귀족 탐정 다아시 경' 시리즈로 하여금 기존 추리 소설들의 맥락을 따라가면서도 색다른 형태를 띠도록 한다.

현대 소설에서 추리 소설 '기법'을 활용하는 작품을 찾아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마법 탐정 다아시 경'은 추리 소설 기법을 사용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완벽한 추리 소설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내 경우 이 책을 95년에 시공사에 출간된 <다아시 경의 모험> 버전을 통해서 이미 읽은 바 있었기에 이번 <셰르부르의 저주>에 포함된 중단편들의 트릭은 대강 알고 있는 상태였고, 그랬기에 오히려 이 작품이 추리 소설로서 갖추고 있는 독자에게의 공정성(독자에게도 추리의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능동적으로 작품 속의 사건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추리 소설로서 지켜야 할 일종의 불문율)을 지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모든 단서를 제공해줌에도 불구하고 독자가 완벽하게 사건의 전말을 알아낼 수는 없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다시 한 번 추리 소설의 규칙-독자는 작가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을 충실히 지켜내고 있다.(^^;;;)

이번에 새로 번역된 '전쟁 마술'은 특히 그 읽는 즐거움이 더했는데, 앞으로 행복한책읽기 출판사에서는 이번 <셰르부르의 저주>를 필두로 해서 랜달 개릿의 '귀족 탐정 다아시 경' 시리즈를 모두 완역하겠다고 하니 앞으로 계속해서 기대해 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인 에어 납치사건
재스퍼 포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북하우스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최근에 장준환 감독의 영화 '지구를 지켜라!'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이미 장르 구분이 필요없는 시대에 발을 들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액션, 코미디, 스릴러, 고어, '공상'과학 등의 장르 요소가 잔뜩 섞인 그 영화를 한 요소만 떼어서 '이것은 어떤 장르의 영화다.'라고 규정짓는 순간 그 영화의 다른 모든 요소는 무너지게 될테니까. 재스퍼 포드의 <제인 에어 납치사건>은 바로 그런 장르 혼합의 흐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대체역사SF라고만 알고 읽기 시작했던 이 작품은 팬터지, SF, 형사물 등의 요소를 모두 담고 있는 복합소설이었다.

영국과 러시아 사이의 크림전쟁이 백 년 이상 지속되는 가운데 문학 작품에 미쳐 사는 사람들로 가득한 1985년의 영국에서, 문학 관련 범죄를 담당하는 수사관 서즈데이 넥스트Thursday Next는 희대의 악당 아케론 하데스를 쫓는다. 죄목은 찰스 디킨스의 『마틴 처즐윗』 원본 절도. 뭐, 거기까지는 좋다. 고서를 박물관에서 귀히 보관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고 그게 사라졌으면 절도범을 쫓는 것도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 절도범이 원본 속의 인물을 꺼내다 죽여서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본들의 내용이 바뀌었다면 슬슬 곤란해진다. 게다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제인 에어>의 원본 속에서 주인공 제인 에어가 납치돼서 <제인 에어>의 뒷부분이 몽땅 지워졌다면(<제인 에어>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므로 주인공이 사라지면 끝이다.)?

이와 같은 재스퍼 포드의 발랄한 상상은 매력적인 주인공 서즈데이 넥스트와, 역시 그 매력이라면 뒤지지 않는 여러 조연들, 그들이 보여주는 유쾌한 유머 감각, 그리고 그 줄거리 만큼이나 황당한 세계관 속에 완전히 녹아들어 잘 짜여진 이야기로 완성된다. 상상 속에서만 붕붕 떠 다니는 허황된 소리일 것 같다고? 설마. <제인 에어 납치사건>은 현실을 유쾌하게 비틀어 허구를 제시하면서 우리에게 행복한 소설읽기를 가르쳐준다. 허구에서 기쁨을 느끼고 낄낄거리며 세상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아무 곳에서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 작품, 아낌없이 추천하련다.

송경아 씨의 번역은 원어의 느낌을 살리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며, 그 결과도 만족스럽다.(특히 141개에 달하는 주석은 책을 읽어나가는데에 방해가 된다는 평도 있긴 하지만 나처럼 무지한 이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참, p.77 l.1의 SO-4는 SO-14의 오타, pilgrim 님께서도 리뷰에서 언급하신 바 있는 p.473 l.15의 '세번째 이야기'는 '삼 층'의 오역이니 참조하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김탁환 지음 / 동방미디어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좀 부끄러운 일이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래, 고백한다. 매스미디어는 강력하다. 나의 구매 의욕을 자극할 정도로.

김탁환 교수를 처음 알게 된 것이 중앙일보에서 토요일마다 발행하는 도서 관련 섹션의 1면에 실린 <나, 황진이> 소개에서였다. 수험생 시절 제법 마음에 들어했던 시가들 중 하나가 황진이의 시조였던지라 일단 눈에 와닿았고 실제로 서점에서 서서 몇 구절 읽어본 바 다시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마음에 들고 안 들고야 어찌되었든 세상을 지배하는 건 예산이기 마련인지라 결국 김탁환 교수의 글과 나와의 인연은 거기에서 일단락(<나, 황진이>는 일반판과 주석판이 따로 나와있는데 일반판에는 아름다운 수묵화가 실려있고 주석판에는 주옥같은 주석이 실려있다. 일반판의 9500원도 부담스럽거늘 주석판의 15000원이라는 가격까지 생각하면 아무래도 구입이 힘겨워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런데 그 후 어느날, 역시 같은 신문, 같은 섹션의 1면에서 다시 김탁환 교수의 글을 보게 되었다(좋은 글 참 빨리도 쓴다고 생각했는데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지난 4년간 쓴 소설이 13편이란다. 어찌 그것들 모두가 맛깔스런 작품들이겠냐마는 그래도 어쨌든 다작에 재능이 있는 이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이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소설'을 주제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 매혹적이었으며 그것이 다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더욱 나를 끌었다.

조선시대의 소설이라 함은 민중들과 아녀자들의 것. 다시 말해 '비주류'에 속하는, '주류'들에게는 흔한 '천박한 흥미거리'였으며 그것이 작금의 팬터지며 SF와 같은 장르 문학들이 우리 나라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한 눈에 반해버린 뒤 얼마 안 있어 녀석은 내 가방을 차지했다(대입원서 쓰는 것 말고는 하는 일이 없는 수험생에게 학교에서 달리 할 일이 무어겠는가. 그저 일 년간 바라왔던 것처럼 원없이 책 읽는 일 뿐).

작가는 매설가(소설가) 모독, 백능파, 졸수재, 김만중(그래,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남긴 서포 그 분이다)을 통해 끊임없이 소설에 대해 논한다. 특히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라는 두 걸출한 작품의 대조를 통해 이야기 자체로서의 소설과 목적 의식을 가지고 쓰여진 소설이라는, 소설의 양면성에 대한 언급은 평소 내가 고민해오던 부분 중 하나인지라 독자로서 공감하는 바가 컸다. 주인공 모독은 목적을 가진 소설이라는 개념에 당혹스러워 하나 나는 이야기 자체로서의 소설이라는 개념을 쉽게 인정하기 힘들다는 점은 조선과 대한민국 사이에 놓인 시간의 차가 만들어 낸 역전 현상일 터. 그러나 그 의혹의 방향이아 어찌되었든 간에 수백년을 사이에 두고 '소설'을 토대로 저와 내가 엮일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혹적인 법이다.

이야기 자체로서도 이 소설은 크게 흠잡을 곳은 없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적절한 시간 배치나 잘 짜여진 인물간의 갈등 관계는 부담없이 독자를 이끌어 가고 있고 그 속에서 엮인 추리 소설적 기법도 크게 내세울 수는 없을 것이나 읽는 이를 흥미롭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소설가로서의 서포가 이 소설에서 그려진 모습 그대로의 인물이셨다면 그는 이 이야기의 축을 담당하게 된 것을 크게 기꺼워하지 않으셨을까.

읽는 중간중간에도 느낀 바이나, 분명 이 글에는 많은 결함들이 존재한다. 예컨대 '백능파'라는 인물의 소설에 대한 집착이 다소 지나친데가 있어 도리어 소위 요녀(妖女)로서의 행각이 쉽게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나 모독의 남은 생에 대한 뒷처리가 크게 만족스럽지 않다는 점 등이 그러한 것이다. 허나 그 단점을 구태여 캐내 작품을 깎아가며 읽을 필요가 있으랴(물론 이러한 태도는 정작 작가인 김탁환 교수에게는 썩 달갑잖은 것이리라. 어쨌든 작자는 자신의 글이 정당하게 평가받기를 원하는 법이니). 사람이 소설을 만들고 소설을 이야기하고 소설을 읽는다. 읽는 이와 쓰는 이와 말하는 이가 저마다 연결되어 있으니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룬의 아이들 2부 데모닉 1 룬의 아이들 (제우미디어)
전민희 지음 / 제우미디어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작품을 앞부분만 읽어보고 평가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나는 코끼리 만지는 장님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이것은 <룬의 아이들-데모닉>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이 자리는 <룬의 아이들-데모닉>의 1권을 읽은 기념(?)으로 이를 통해 전민희 씨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자리가 되겠다. 정확히 말하자면 쓴소리가 되겠지만.

간단히 말해서, 전민희 씨는 이번 작품에서도 통 달라진 게 없다. 배경에 깔린 귀족적 풍모,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캐릭터들이 내뱉는 차분한 말투, 종종 등장하는 전원의 아름다운 풍경, 국가적 규모의 정쟁, 암투, 애매하게 기분 나쁘게 하는 속을 알기 힘든 잘난 놈(종종 이것은 주인공과 일치하기도 한다.) 등등. <룬의 아이들-데모닉>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룬의 아이들-윈터러>나 아직 완결되지 않은 <태양의 탑>, 혹은 그의 처녀작 <세월의 돌>의 말미에서 이미 봐왔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캐릭터가 다르고 이야기가 달라져도 어쩐지 전에 봤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암만 <룬의 아이들>이라는 타이틀 하에 같은 배경을 토대로 쓴 글이라고 하지만 이쯤되면 걱정스러워지는 게 사실이다. 99년에 첫 책을 낸 작가가 벌써부터 같은 이야기만 한다는 건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고히 다졌다기보다는 처음 마련했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계속해서 맴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갑각나비>에 등장하는 엘버 브리드의 말을 빌리자면, '자기 작품의 자기 복제라고나 할까.') 그리고 다시 그가 손대고 있는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그 걱정은 더욱 커진다.

<아룬드 연대기>는 <태양의 탑>을 끝낸다고 해도 앞으로 세 작품은 더 남았고 <룬의 아이들>도 '데모닉'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새로운 시리즈를 내는 것도 매우 쉽고. 작정하고 쓰면 아예 12부까지 쓸 수 있다던가? 물론 상식적으로 보자면 중복 출연자들이 없는 선에서 끝날 것 같지만. 3부나 4부 정도?) 물론 중간에 잠시 집어치워두고 다른 작품을 손 댈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지금으로서는 계속해서 같은 세계관 속에서 글을 써야한다는 이야기가 되고 그만큼 전민희의 스타일은 경직화되기 쉬울 것이다. 물론 영화 <에일리언>시리즈처럼 공통 분모는 공유하되 각기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는 시리즈물을 기대해 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행보를 볼 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글쎄, 어쩌면 전민희 씨는 너무 겸손하거나 욕심이 많은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 지금의 스타일이 만족할만큼 다져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계속 글을 써가며 다듬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그 정도로 젊은 작가라면 좀 더 다양한 방면으로 뛰어들어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만지작거리는 쪽이 더 낫지 않을지. 벌써 하나의 스타일에만 집착하면서 안주하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 누가 그랬더라? 송경아 씨인가 우지연 씨인가? 아무튼 누군가가 이수현 씨의 <패러노말 마스터> 심사평을 하면서 우리나라 팬터지 판에는 기본기를 갖춘 안정감 있는 작가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뭐, 통신 어딘가에 숨죽이고 있는 고수들을 끌어내며 '훗, 무슨 헛소리!'라고 한다면야 나는 반박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출판된 것들만 봐서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판국에 안정감 있는 글쓰기를 보여주는 전민희 씨는 여러모로 계속 지켜보고 싶은 작가 중의 하나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전민희 씨는 그런 안정감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설령 그 안정감이라는 미덕을 잠시 잃게된다해도 그가 좀 더 새로운 것에 부딪혀보기를 바란다. 그래서 즐거운 작품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여러가지 새로운 이야기를 제시해주기를 바란다. <룬의 아이들-데모닉>이 끝날 때 즈음에는 지금과는 한층 달라진 모습이기를 기원하며, 글을 맺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는 말할 것도 없고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개는 말할 것도 없고>는 과학소설(SF:Science Fiction-이걸 '공상'과학소설이라고 하는 녀석은 적어도 내 앞에서는 그런 소리를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물론 정확한 사정은 모르고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덩달아 따라하는 거겠지만, 세상에는 '몰랐습니다'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굉장히 많다.)이다. 그것도 제법 진부한 소재-시간 이동을 소재로 한.

특히 <개는 말할 것도 없고>는 시간 이동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흔한 것-타임 패러독스-을 소재로 삼고 있다. <타임 패트롤>이라든가 <백 투 더 퓨처>같은 작품들이 워낙에 재미있게 이야기를 해놔서 도통 뭐 더 나올만한 이야기는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개는 말할 것도 없고>는 이러한 진부함의 난관을 의외의 방식으로 헤쳐나간다. 이름하여 '수다', 그리고 '로맨스'.

역자 해설에도 나와있듯이, 본 작품의 작가 코니 윌리스는 시종일관, 주리줄창 이어지는 수다로 독자를 압도한다. 영국 특유의 비꼬는 듯한 유머는 매 페이지마다 발견되고 온갖 문학 작품에서 따온 인용구가 책을 수놓는다.(737페이지짜리 이 소설에 달린 역자의 주석은 251개이며, 장담하건대 그 중 절반 이상은 인용구에 대한 설명이다.) 특히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채택함으로써 책의 곳곳에는 주인공 헨리 네드의 잡상이 널려있다.

내용을 보자. 시간 여행이 가능하게 된 21세기 중반, 과거의 성당을 복원하는 작업에 투입된 역사 연구가 헨리 네드는 과중한 업무로부터 벗어나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19세기 옥스퍼드로 간다. (21세기에서 쉴 수 없는 이유는, 눈에 불을 켜고 역사 연구가들을 찾아다니며 혹사시키는 악덕 고용주-엄밀히 말해 고용주는 아닌 듯 하나-가 있기 때문이다. 굳이 19세기 옥스퍼드인 이유는 읽어보면 안다.) 그곳에서 그는 실수로 어느 남녀의 만남을 방해하게 되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를 불확실하게 만들게 된다. 그리고 7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동안 헨리 네드는 이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서 오만가지 잡일을 하고 다닌다.

자아, 보시라. 남녀의 만남을 방해함으로써 생긴 실수를 교정하는 방법은 남녀를 다시 만나게 하는 것. 헌데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남자가 그 여자를 만나기 전에 다른 이와 사랑에 빠져버렸기 때문. 오오, 통재라. 결국 우리의 주인공이 할 일이란 이 한 쌍의 바퀴벌레 같은 커플을 찢어다가 제각기 원래 만나기로 되어 있는 임자를 만나게 해줘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 임무에는 아리따운 여자 역사 연구가도 동참. (오해의 여지가 있다. 주인공은 분명히 남자 역사 연구가 헨리 네드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 역사 연구가 베리티가 흔히 그렇듯 남자의 옆에 서 있는 보조적이고 수동적인 인물인 것은 아니다.)

결국 <개는 말할 것도 없고>는 그 바탕에 타임 패러독스라는 SF 개념을 깐 수다스러운 장편 로맨틱 코미디 소설이다. 오오, 그렇다고 폄하하지는 마시라. 추리소설을 방불케하는 플롯과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일품. (여담이지만, 그토록 골빈 여자들이 살았던 시대도 있었다니. 빅토리아 시대라는 건 그 이름만큼 영광스러운 시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코니 윌리스 여사의 수다스러운 유머 감각도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나같은 경우는 참 재미있게 읽었다. 휴고 건즈백의 이름이 박힌 상을 받는 건 아무 소설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