룬의 아이들 2부 데모닉 1 룬의 아이들 (제우미디어)
전민희 지음 / 제우미디어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작품을 앞부분만 읽어보고 평가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나는 코끼리 만지는 장님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이것은 <룬의 아이들-데모닉>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이 자리는 <룬의 아이들-데모닉>의 1권을 읽은 기념(?)으로 이를 통해 전민희 씨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자리가 되겠다. 정확히 말하자면 쓴소리가 되겠지만.

간단히 말해서, 전민희 씨는 이번 작품에서도 통 달라진 게 없다. 배경에 깔린 귀족적 풍모,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캐릭터들이 내뱉는 차분한 말투, 종종 등장하는 전원의 아름다운 풍경, 국가적 규모의 정쟁, 암투, 애매하게 기분 나쁘게 하는 속을 알기 힘든 잘난 놈(종종 이것은 주인공과 일치하기도 한다.) 등등. <룬의 아이들-데모닉>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룬의 아이들-윈터러>나 아직 완결되지 않은 <태양의 탑>, 혹은 그의 처녀작 <세월의 돌>의 말미에서 이미 봐왔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캐릭터가 다르고 이야기가 달라져도 어쩐지 전에 봤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암만 <룬의 아이들>이라는 타이틀 하에 같은 배경을 토대로 쓴 글이라고 하지만 이쯤되면 걱정스러워지는 게 사실이다. 99년에 첫 책을 낸 작가가 벌써부터 같은 이야기만 한다는 건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고히 다졌다기보다는 처음 마련했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계속해서 맴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갑각나비>에 등장하는 엘버 브리드의 말을 빌리자면, '자기 작품의 자기 복제라고나 할까.') 그리고 다시 그가 손대고 있는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그 걱정은 더욱 커진다.

<아룬드 연대기>는 <태양의 탑>을 끝낸다고 해도 앞으로 세 작품은 더 남았고 <룬의 아이들>도 '데모닉'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새로운 시리즈를 내는 것도 매우 쉽고. 작정하고 쓰면 아예 12부까지 쓸 수 있다던가? 물론 상식적으로 보자면 중복 출연자들이 없는 선에서 끝날 것 같지만. 3부나 4부 정도?) 물론 중간에 잠시 집어치워두고 다른 작품을 손 댈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지금으로서는 계속해서 같은 세계관 속에서 글을 써야한다는 이야기가 되고 그만큼 전민희의 스타일은 경직화되기 쉬울 것이다. 물론 영화 <에일리언>시리즈처럼 공통 분모는 공유하되 각기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는 시리즈물을 기대해 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행보를 볼 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글쎄, 어쩌면 전민희 씨는 너무 겸손하거나 욕심이 많은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 지금의 스타일이 만족할만큼 다져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계속 글을 써가며 다듬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그 정도로 젊은 작가라면 좀 더 다양한 방면으로 뛰어들어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만지작거리는 쪽이 더 낫지 않을지. 벌써 하나의 스타일에만 집착하면서 안주하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 누가 그랬더라? 송경아 씨인가 우지연 씨인가? 아무튼 누군가가 이수현 씨의 <패러노말 마스터> 심사평을 하면서 우리나라 팬터지 판에는 기본기를 갖춘 안정감 있는 작가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뭐, 통신 어딘가에 숨죽이고 있는 고수들을 끌어내며 '훗, 무슨 헛소리!'라고 한다면야 나는 반박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출판된 것들만 봐서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판국에 안정감 있는 글쓰기를 보여주는 전민희 씨는 여러모로 계속 지켜보고 싶은 작가 중의 하나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전민희 씨는 그런 안정감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설령 그 안정감이라는 미덕을 잠시 잃게된다해도 그가 좀 더 새로운 것에 부딪혀보기를 바란다. 그래서 즐거운 작품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여러가지 새로운 이야기를 제시해주기를 바란다. <룬의 아이들-데모닉>이 끝날 때 즈음에는 지금과는 한층 달라진 모습이기를 기원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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