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창 시절엔 참 단순하게 읽었는데. 지금 다시 읽으니 뭐라고 딱 정리해서 쓰지를 못하겠다.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크다고 할까. 내 속에서 솟아나오려는 것을 살아보려고 했다는, 그 문장대로 살아보려고 한다. 다른 것 접고 그것만, 지금은. 내 안으로 더더더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뷰를 올린 후에 새롭게 떠오른 생각들을 적어본다. 줄거리는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쓴다. 리뷰에서도 친절하게 줄거리를 적는 사람은 아니지만.

 

  6개월 후에 윌이 무얼 하려는지 알게 된 루이자는 첫 나들이로 경마장을 택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전혀 달리 참혹한 실패를 가져왔다. 집에 돌아왔을 때 윌은 말한다.

 

"귀찮아도 나한테 물어봤더라면 말이요, 클라크. 딱 한 번만 이 소위 즐거운 소풍 계획에 대해 나와 의논을 했더라면, 말을 해줬을 거요. 나는 말을 싫어하고, 경마도 싫어한다고. 옛날부터 싫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한번 물어보지도 않았지. 그쪽이 나한테 시키고 싶은 일을 혼자 정하고 강행했잖소. 다른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내 대신 결정을 해줬지."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든 그를 살게 해야 한다'는 강박과 초조함 때문에, 루이자는 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부족했던 것 같다. 앞의 윌의 얘기 후에도 루이자는 그와 의논하고 묻기보다는 여전히 다 알아서 준비하고 짠~ 하고 보여준다. 하지만 윌이 정말로 원한 건 그게 아닐 것이다. 좋아하는 그녀가 열심히 준비했기에 받아들여준 것일 뿐이다. 

 

루이자가 6개월 후의 윌의 계획을 알게 된 걸 밝히고, 그가 어떻게 그런 결정까지 가게 됐는지 솔직하게 물어봤으면 어땠을까? 여행에서도 그런 대화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결국 그런 얘기는 여행의 마지막 날, 윌이 계획을 실행하기로 한 불과 며칠 전에야 나누게 된다. 계획을 고수할 것이고,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 자리에 같이 있어달라는윌의 부탁에 루이자는 격하게 화를 낸다. 나 같아도 그 순간엔 기가 막히고 화를 낼 것 같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곰곰이 생각을 하다 보니, 사랑만으로 모든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이자도, 그 당시 그녀를 응원한 나도 너무 낭만적으로만 생각했던 건 아닐까? 현실의 윌은 외면한 채로다가.

 

성의 미로에서 윌이 루이자의 속마음을 듣고자, 그가 고백한 얘기가 있다.

 

-"이러다가 결국 어떻게 될까 나는 정말로, 정말로 겁이 나고는 해요."

-"사람들은 대체로 나처럼 사는 게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라고 생각한다는 걸 알아요. 그렇지만 더 나빠질 수도 있어요. 혼자 숨을 쉴 수도 없는 지경이 될 수도 있고, 말도 못 하게 될지도 몰라요. 순환계에 문제가 생기면, 팔다리를 잘라내야 한다는 뜻이죠. 무한정 입원하게 될 수도 있어요. 지금도 사실 산다고 하기엔 형편없는 삶이지만, 클라크. 얼마나 더 나빠질 수 있는지 생각하면...... 어떤 날 밤에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진짜로 숨이 안 쉬어지기도 해요."

-"그리고 이런 거 알아요? 아무도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거. 아무도 두렵다든가, 아프다든가, 무슨 멍청하고 뜬금없는 감염으로 죽게 될까봐 무섭다는 애기는 원치 않아요. 다시는 섹스를 할 수 없고 자기 손으로 만든 요리를 다시는 먹을 수 없고 절대 자기 자식을 안아볼 수 없게 되면 기분이 어떨지, 그런 걸 알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이 휠체어에 이렇게 앉아 있다보면 가끔 죽도록 답답해져서,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고 싶어진다는 걸, 알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입니다. (...) 궁극적으로 사람들은 다 밝은 면만 보고 싶어하는 거죠. 그래서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해줘야 하는 거고."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정말로 재앙에도 밝은 면이라는 게 있다는 믿음이 꼭 필요한 거죠."

 

이 얘기를 들은 후에 루이자가 자기 얘기를 하자 윌은 그녀를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았다. 그 순간에 루이자는 윌의 고통과 불안을 봐줄 여유가 없었겠지만, 나중에라도 그 이야기를 이어나갔다면 어땠을까. 윌이 불안하고 두렵고 울부짖고 싶은 마음을들 더 토해낼 수 있게 해주고 나서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줬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궁극적인 결정을 막지 못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제 마음을 알아주고 들어준 사람이 있었다는 위안은 컸을 것이다. 내가 루이자라면, 그런 후회가 남을 것 같다. 여행 후 화가 나 그를 보러 가지 않은 그 짧은 며칠도 나중에 생각하면 얼마나 아깝고 후회가 되었겠는가.

 

 내가 지나치게 극중 상황에 깊이 몰입한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 몰입 때문에 책을 덮고 나서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 채 아파하고 있다. 좋은 현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책을 읽고 나서 이래보기도 참 오랜만인 듯하다.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인지 감성이 메마르다고 생각하는 요즘이었다. 책을 봐도, 영화를 봐도 감동이 잘 오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이런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나를 보며, 아직은 감성이 살아있었구나, 위안이 되기도 한다. 나중에 영화를 보면서 이 감정을 다시 또 겪을지 어떨지 궁금하다. 여하튼, 윌과 루이자, 내 가슴에 계속 살고 있는 아픈 연인들, 조금만 더 품고 있다가 보내줄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살림)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EBS 책읽어주는 라디오에서 이 책을 낭독하는 걸 들었다. 뒷부분을 조금 남기고 전편을 읽어주었다. 그래서 대강의 줄거리는 안다. 집중해서 듣진 않았서였는지 그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다음 달에 영화로 개봉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예고편을 찾아봤다. 그 짧은 동영상에 반해버렸다. ,여주인공은 내 눈에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이었는데도 참 예뻤고, 잘 어울렸다. 영화를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일었다. 개봉까지는 더 기다려야 하고, 먼저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제법 두꺼운 책임에도 금방 읽었다. 하룻밤만에 읽은 건 아니지만. 결과는 역시 눈물콧물 찍찍. 아프고 아팠다.

 

두 남녀의 로맨스가 이루어지지 않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 <500일의 썸머>의 두 주인공이 결국에 헤어져서 허탈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차원이 아니다. 비극의 강도가 훨씬 높다. 책을 덮고 나서,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졌더랬다.

 

윌도 루를 사랑하는 게 틀림없는데, 박아놓은 그 날짜를 그렇게 꼭 고수했어야 했을까. 그가 야박하게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 아냐? 기간을 연장하고 좀 더 생각을 해보면 안됐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놓고도 그런 결정을 하는 거면, 윌도 오죽했을까 싶어서 더 마음이 아프고. 딜레마에 빠져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의 감정이었다.

 

윌의 고통이 사실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사랑의 힘으로 좀 견뎌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고백에 따르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은 가히 짐작할 수 있는 수준 이상 같았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를 맘껏 사랑해줄 수 없는 괴로움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거기서 나는 그를 더 붙잡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신을 보면서, 당신의 벗은 몸을 보면서, 그 정신 나간 옷들을 입고 별채를 돌아다니는 당신을 보면서…… 내가 당신과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없다는 게……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 , 클라크. 지금 당장 내가 당신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모를 겁니다. 그런데 나는…… 나는…… 그걸 알면서 살 수는 없어요. 못 합니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그저…… 순응하는…… 그런 부류의 남자가 아니에요.”

 

결코 현실에 순응할 수 없는 사람. 사랑하는 여자가 생겨도 그건 안 되겠다는 윌이 못되고 미우면서도, 그 속을 어찌 다 알겠는가. 그의 통증과 깊은 우울을 어찌 다 상상할 수 있을까. 오죽하면 죽음을 선택하고 그 희망으로 남은 시간을 견뎌낸다고 하겠는가.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젊은 청년 윌이, 가만히 앉아있으면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그 사람이, 사랑에 빠진 남자가, 그런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루를 생각하는 것도 참 힘들었다. 남은 사람은 아파하다가 점점 감정이 무디어가겠지. 가는 그도 몸에서 해방되어 진짜 자유를 누리겠지. 그렇게 그래, 모두 괜찮을 거야, 하면서도 눈물이 나는 건 왜 그런 거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인가. 로맨스의 새드엔딩에 익숙하지가 않아서일까.

 

영화는 개봉하는 대로 꼭 보고 싶다. 각본을 조조 모예스가 맡았다고 한다. 원작을 거의 그대로 보여주지 싶다. 그리고, 이 책의 속편이 곧 나온다. <애프터 유>. 영어판은 이미 작년에 나왔다. 루가 런던에서 또 다른 윌 트레이너를 만난다는데, 이건 무슨 얘길까. 속편을 꼭 썼어야 했을까? 처음부터 속편이 계획된 걸까? 베스트셀러라는 인기에 힘입어 독자를 위한 서비스로 해피엔딩 스토리를 쓴 건 아닌지 모르겠다. 엄청 슬프긴 하지만 크게 남겨진 여운을 끝까지 가져가게 해주면 안 되는 거였나? 웃기지만, 이러면서도 책이 나오면 사서 읽을 것 같다.

 

존엄사, 안락사에 대해서는 좀 더 알아보고, 생각해보고 싶다. 인도영화 <청원>도 보고, 관련된 책들도 읽어보고, 나중에 다시 얘기하고 싶다. 존엄사는 자신이 선택하는 거니까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그 대상이 내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인 경우에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보았듯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두에게 해피엔딩
황경신 지음, 허정은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월간 페이퍼'의 편집장이자 인터뷰어였던 황경신의 인터뷰를 좋아해서 인터뷰 모음집 《나는 정말 그를 만난 것일까》를 재밌게 읽었었다. 페이퍼의 글들을 통해 본 그녀는 감성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많이 감성적일 것 같은 그녀의 연애소설을 읽는 건 싫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20대의 나는 그랬다.

최근에 팟캐스트 '착한낭독, 독한일상'에서 이 책을 낭독하는 걸 더 들었다. 제1부 '덜 사랑하는 자' 를 듣고, 뒷부분이 궁금해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다. 2003년에 나온 이 책은 아마도 황경신이 두번째 낸 소설일 것이다. 찾아보니 그 후에 그녀는 꽤 많은 책을 냈다.

이 책의 뒷부분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별로였다. 풋풋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예고하는 1부를 들으며 마음이 아리아리했다. 두 남녀가 번갈아가며 하는 낭독이, 그 촉촉한 목소리 때문에 두 남녀에게 몰입했던 것 같다. 하지만 2,3부는 지면의 활자로 읽어서일까.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더이상 마음이 촉촉하지 않았다.

왜 에이에게 마음을 주고 그와 연인이 될 수 없는지 설득이 되지 않는다. 단지 연하이자 다소 많은 나이차 때문에? 비를 못 잊어서? '나'를 제대로 사랑하는 건 내가 봤을 때는 비가 아니라 에이인데. 사랑했지만 행복하게 해줄 수 없어서 떠났다는 비의 변명 역시 이해할 수 없다. 에이와 비 둘 다 끊지 못하다가 선택한 방법은 새로 등장한 제3의 남자에게 가는 것이라니. 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특히 사랑에 관해서는. 누군가는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다' 행복해지길 바란다.

비는 이미 결혼을 한 상태이지만 여전히 '나'는 그에게서 놓여나지 못하고 있다. 에이를 명확하게 잘라내지 못한 채 희망고문을 하면서. 그래서 택한 게 인터뷰하려고 만난, 비를 안다고 한 그 남자라니. 그럴려면 적어도 에이는 확실하게 정리하고 갔었야 했다. 이별의 뉘앙스만 띄워 그를 불안하게 둔 채 떠나는 건 더 잔인하다. 모두가 해피하길 바란다면서 행동은 반대로 한다. 결국 에이는 상처를 입겠지.

예상대로 감성적이긴 했지만 나의 감성을 적시지는 못한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통해서 한강이라는 작가의 매력을 알게 됐고, 그의 팬이 된 것 같다. 전작을 읽어보고 싶고, 앞으로 그가 쓰게 될 책들도 궁금하다. 독특하고도 신비하고 기괴하고 흥미롭다. 읽는 내내 많은 질문을 던지게 했고, 여운을 크게 남기는 소설이다. 해석의 여지가 많은 책, 남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한 책이다.

 

이 책은 채식주의에 대해서 말하는 책은 아닌 것 같다. 고기를 먹는 사람에게 어떤 경각심을 던지고자 쓴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폭력에 관한 이야기다.

 

<나무 불꽃>을 읽으니 가족에게 행해진 아버지의 폭력이 생각보다 수위가 높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 인혜의 이야기에 의하면, 아버지는 영혜에게 더 심했다고 한다. 영혜는 폭력과 육식이 동일선상에 있다고 느낀 것 같다. 영혜를 문 개를 오토바이 뒤에 끌고 다니며 처참하게 죽이고 나서(그래야 개고기가 맛있어진다는 이유로) 그걸 영혜에게 먹이는 장면. 육식을 좋아하는 아버지로 인해 회를 뜨고 닭을 토막내는 건 아무렇지 않게 해야 했던 집안의 여자들. 자신에게 맞는 전자제품을 고르듯 배우자감을 고른 영혜의 남편. 때리진 않았지만 구석구석 폭력적이었던 그의 태도들. 자신의 예술적 성취와 욕망을 위해 도덕을 내려놓고 처제를 취한 형부...

 

영혜의 가족은 아버지의 폭력으로 큰 내상을 입었을 것 같은데, 그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간다. 큰딸이 이사했다고 와서 축하파티도 하고, 일상적인 가족들처럼 살아간다. 아버지는 여전히 힘에 있어 가장 윗자리에서 기세등등하게 현재형으로 존재한다. 남동생은 아버지에게 맞은 만큼 다른 애들을 때려서 분출했고, 어머니는... 모르겠다. 폭력에 피해자인 두 자매는 어디에 호소하지도 못하고 삭이고 살아왔다. 애정과는 먼 결혼을 하고 그럭저럭 남들처럼 살았다.

 

하지만 결국, 터져야 할 것이 영혜의 꿈을 통해 터져나왔다. 영혜는 나무가 되고 꽃이 되고 싶었다. 뿌리를 땅에 박고 햇빛과 물만 먹는 식물이 되고 싶었다. 고기가 되지 않고 식물이 되어야 아버지 같은 육식동물에게 먹히지 않는다. 아버지를 떠나도 끊임없이 자기를 잡아먹으려는 육식동물들에게서 해방될 길은 그것밖에 없다고, 영혜의 무의식은 아우성쳤을 것이다.

 

영혜는 언니에게 왜 죽으면 안 되냐고 했다. 흙속에 묻혀 나무뿌리와 같이 사는 것만이 그녀에게 위안이요 안식이지 않았을 런지. 나는 그런 영혜가 이해가 됐다. 그걸 억지로 막으며 호스를 꽂아 영양분을 공급하려는 의료진의 모습은 폭력적으로 보였다. 그들은 그녀를 살리려고 하는 거라지만... 일단 병원에 들어오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존엄사가 인정되지 않는 나라이기에.

 

부모도 남편도 버린 영혜를 돌볼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언니 인혜도, 영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약하고 자신을 더 닫고 살았던 영혜가 먼저 드러났을 뿐.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줄 알았지만 트라우마는 그녀들의 삶을 잠식해 먹고 있었다. 의욕, 열정을 빼앗고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했다.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주지 못할 남자와 무기력한 결혼을 했던 그녀들. 앞으로 살아갈 인혜가 더 걱정이 된다. 자식이 있음으로 쉽게 자기를 버리진 않겠지만 그래도 위태위태하다. 아버지에게, 그리고 힘을 자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분노하며 살길 바래본다.

 

한강은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히 말해주지 않는다. 모호한 상징들 속에서 독자는 언뜻언뜻 그 의미들을 찾아내야 한다. 그 와중에 무언가 가슴을 후비게 하는 것들이 있다. 아프고, 공감되고, 나에게도 있는 폭력성 같은 것들. 문득, 남성이 읽은 채식주의자는 어떨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