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어 생각한다 - 남과 북을 갈라놓는 12가지 편견에 관하여
박한식.강국진 지음 / 부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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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북한은 일본 만큼이나, 어떻게 본다면 일본보다도 더 우리가 감정적으로 대하는 대상이다.  '이념'이 얽혀 있기도 하며, 이로 인해 가장 가까운 시기에  전쟁을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객관적으로 대하고 있는 이웃 국가가 있기라고 한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도 마찬가지이고, 다른 방향으로는 미국을 대할 때조차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너무나도 자주 접한다. 그나마 러시아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다보니 씁쓸하게도 '중간'은 간다고 해야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상당히 얄팍한 사고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 핵심은 정통성과 국론의 차이에 있다. 


3대 째를 맞고 있는 북한을 두고 곧 망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매체를 통해 자주 접한다. 사실, 그렇다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붕괴와 유지 쪽 어디에 본인의 '희망'을 두고 이야기를 하는건지 파악하려고 애 썼다. 그런데 북한 문제는 이념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고, 이념 문제는 때로 이해득실을 초월하다보니 그런 추측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 대해서는 나도 작지않게 설득이 되어 있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아닌 체제가 과연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면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끝날거라는 가능성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었다.    


북한 붕괴론이라는 거친 언사에 반론을 제기해 본다면단적으로 표현해서 북한은 절대’ 붕괴하지 않습니다. ...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습니다일종의 집단 결정 체제’ 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0 페이지)

 

체제가 붕괴하는 것은 그 체제를 유지하는 정통성이 무너졌을 때입니다만약 북한이 경제성장을 정통성의 근거로 삼는 국가였다면 북한은 몇 번이나 무너졌을 것입니다냉정이 말해서 북한 체제는 1984년 정부 수립 이후 단 한 번도 정통성의 위기를 겪지 않았습니다북한의 정통성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항일 무장투쟁을 지도한 김일성 주석과 조선노동당 그리고 미국 등 외세에 맞서 자주성을 지키는 것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21 페이지)

 

체제 유지를 위한 환상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합니다예를 들어 대다수 미국인들은 실제로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면서도 자신들이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 환상에 빠져있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0~21 페이지)

 

잇따르는 숙청과 처벌이 북한 정권이 붕괴하는 징후인 양 이야기하기도 합니다하지만 그들이 간과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권력에서 밀려나고 쫓겨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를 채우며 출세하는 사람도 있는 법입니다. (22 페이지)

 

통일이란 그렇게 손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수십 년간 교류를 이어 가며 준비한 독일만 하더라도 지금도 보이지 않는 진통을 계속 겪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좀 더 냉정히 말해서 만약 북한이 급작스럽게 붕괴한다면 이후 일어날 일은 흡수통일이 아니라 제2차 한국전쟁이 아닐까요그런 점에서 본다면 북한 붕괴의 결말은 독일이라기보다 시리아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25 페이지)

 

중국과 러시아는 모두 국가 안보와 국제 정치그리고 경제적 차원에서 북한과 상당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 대북제제는 국제적인 공조를 필요로 하지만 국제 정치 역할상 중국과 러시아의 적극적인 동의를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이와 더불어 대북 제제는 북한 경제가 중국에 종속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28~29 페이지)


개인적으로는이 책을 읽으면서 학부시절 국제통상학을 전공하면서 가졌던 여러가지 문제의식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 좋았다. 동북아시아의 통상은 특수한 국제관계 역사와 너무나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통일이 필요하며, 꼭 해야하는지에 대해서까지는 이 책을 읽은 뒤로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객관화' 된 위치에서 북한을 바라보았을 때 많은 것들이 보인다는 것이고, 그런 시각을 가지고 일단은 꾸준히 가까워지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해 본다. 이런 이야기 한다고 어느 누군가에게 '빨갱이' 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해야하는 시대는 언제나 지나갈까 하는 의문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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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D] 고마워, 러시아
정보람 지음 / 부크크(book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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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는 살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러시아 레버리지'를 많이 져왔다고 생각한다. 이  지역과 관련한 전공을 택한 덕분에 부족한 스펙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항상 과분한 결과를 얻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대학교 진학이 그랬고, 언어연수 시절도 그랬고, 가장 크게는 구직활동을 할 때가 그랬다. 그리고 지난 한 번의 주재원 파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아마도 저자가 이런 글을 쓰게 된 동기에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도 적어도 지금까지의 소회를 한마디로 표현해야 한다면, 이 책의 제목 따나 나도 '고마워, 러시아' 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수백번은 했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현역(?)이고, 아직도 관련 일을 더 해야하기 때문에 당장은 입 밖으로 꺼내서 표현하기에는 조심스럽다는 점이다. 이게 아마, 나와 내 입장 차이라고 해야겠다. 


저자가 각기 다른 목표를 가지고 다른 신분으로 러시아와 한국을 왔다갔다 한 이력이 인상 깊었다. 흔히 러시아 관련 공부를 하거나 러시아를 자주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끼리는 '알 수 없는 매력' 같은게 있다고 말하긴 한다. 끊어질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는 점이 첫 번째 느낌이었고, 매순간 떨어지는 기회를 쫓아가다 보니 그게 공교롭게도 매번 러시아와 관련된 것다는 점이 두 번쨰 느낌이다. 그리고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고생을 겪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는 정도 세 번째 느낌인데, 이 모두가 어우러진게 저자의 소회가 아닐까 싶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저자처럼 석사 유학과 같은 '인텐시브' 한 현지에서의 공부 경험이 없다는 점도 좀 아쉽게 다가왔다. 그랬드면 뭔가 나도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아쉬움 때문이다. 물론, 고생은 훨씬 더 많이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쉽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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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하는 여자, 영혜 - 과학 없이 못 사는 공대 여자의 생활 밀착형 과학 이야기
이영혜 지음, 고고핑크 그림 / 새움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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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과를 나왔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수학이었다. 못 한다기보다는 싫다는 느낌이었다. 싫다는게 원인인지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노력한다고 해서 잘 할 자신도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수능시험 때까지 일관되게 언어 과목은 이상하게 자신이 있었는데 점수가 안 나왔던 반면, 수학은 무섭고, 싫고, 자신이 없었는데 시험 점수는 언어 과목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대학에서는 외국어를 전공하다보니 내 학창시절은 줄곧 여초인 환경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남자는 이과, 여자는 문과라는 고정관념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때에 '소수'라는 면에서는 고등학교 시절 이과, 대학교 시절에는 공대를 다니는 여자들도 문과 남자인 나와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차이가 있다면, 문과 남자들은 대체로 수학이나 과학에서 도망쳐 온 '루저'들 취급을 받는데 반해, 이들은 극소수라 어디 가서든 튀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거기에 어려움을 정면돌파 한다는 이미지까지 있었다.

 

그런데 내 주위를 보면 이과 전공을 한 여자는 있어도, 그 커리어를 유지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다보니 만약 이과를 전공한 여학생들에게 이과 본능이라는게 있다면, 그게 실제 생활 속에서 어떻게 드러날까? 하는게 좀 궁금하기도 했었다. 학창시절 때도 그렇지만 사회생활을 하면 더 드러내기는 쉽지 않았을테니 이건 오로라나 유성을 보는 것만큼이나 힘든 걸 텐데,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먼저 이 부분을 읽어본다.   

 

19995<사이언스>지에 실린 인간 비만 유전자에 대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유전적 요인이 체중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적게는 40%, 많게는 70%나 된다. 유전적인 이유로 신진대사 속도가 느려 살이 찌거나, 운동을 한 효과가 다른 사람에 비해 잘 안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16 페이지)

 

어떤가? 의미는 같다고 해도 문과생이 그냥 입으로 타고난 건 못 이겨생겨먹은 대로 살아야 해라고 나불대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문과생은 오랜 시간 머리를 마구 굴려도 나오는게 좀 더 '세련된’ 혹은 '정제된' 언어표현 정도라면, 이과생에게서는 새로운 정보와 숫자가 나온다. 그래서 다소 건조한 언어로 풀더라도 세련되게 읽힌다는 점이 어떤 때에는 부럽기도 하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과학의 언어로 풀고 있는데 그렇다고 <빅뱅 이론>처럼 이해를 못해 결과적으로 웃게 되는 그런 이야기들은 아니다.

 

다이어트를 다루고 있는 1장의 다른 내용에도 눈이 갔는데 역시나, 실험하는 이과생 출신 저자의 고급진표현은 여전하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장내세균 구성을 가지는데,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박테로이테스 속 세균이 주를 이루고 있다면, 유형1, 프테보텔라 속 미생물이 가장 많고 대장균류가 상대적으로 적으면 유형2, 루미노코쿠스 속 미생물이 가장 많으면 유형3으로 분류한다. 유형1에 속하는 사람들은 평소에 고지방 음식을 즐기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육식을 중단하다시피 크게 줄이면 다이어트 효과를 볼 가능성이 크다. (26~27 페이지)

 

살을 빼는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건강을 위해서 장내세균을 관리해야 합니다.” (27 페이지)

 

그래서 저자는 본인을 상대로 45일간 육식을 중단하는 실험을 한다.

 

미생물군집분석연구소 천랩이 분석한 나의 장내세균 중 75.7%를 차지하던 피르미쿠테스 문 세균의 비중이 47.3%로 줄었다. ‘뚱보균이라고도 불리는 피르미테쿠스는 에너지를 과잉으로 저장해 비만을 유방하는 원인균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15.7%에 불과했던 박테로이테테스 문 세균은 47,7%로 늘었다, 피르미테쿠스는 열량을 과잉 섭취하는 사람의 장에서 잘 자라고, 박테로이데테스는 그렇지 않은 날씬한 사람의 장 속에 많다. 이는 쉽게 말해 장내세균 구성이 비만 체질에서 마른 체질로 바뀌었다는 뜻이었다. (25~26 페이지)


말 그대로 정보와 분석 그 자체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 분야에서 무엇을 하든 이공계 지식이 기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거의 매일 한다. 블록체인이나 비트코인 같은 것들 때문이 아니다. 점점 수치로 나온 자료를 볼 일이 너무 많고, 내가 만들어야 하는 보고서에는 기본적으로 사진(시각증거) 아니면 숫자(데이터)가 들어가도록 은근 강요받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예전처럼 단어나 문장이 세련되지 못하다고 지적받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는 내 조어 실력과는 상관이 없이 말이다. 오죽하면 지금 가장 필요한 분야를 하나 꼽으라면 주저 않고 통계학이라고 할까. 내 머릿속에서는 이 생각을 이미 수 백번은 했다. 설사 내가 글렀다고 치면 아들도 그렇지만, 나는 딸도 이제는 이공계 전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거의 신념에 가깝다. 그런데 그게 책을 읽고 나서 더 강해졌다.

 

아무튼, 위에서 인용한 장내 미생물 에피소드의 막바지에는 이런 내용도 나온다.

 

장내세균 구성이 달라져서 체중이 줄어든 것인지, 체중이 감소하면서 부산물로 장내세균 구성이 더 크게 달라진 것인지 인과관계는 정확하지 않다. 그렇지만 상관관계는 분명히 있었다. (26 페이지)

 

, 여러번 봐도 이런게 실험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문과가 상상 혹은 논리라면, 이과는 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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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 인생을 계산하다 - 일상의 모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는 생각의 혁명
브라이언 크리스천 & 톰 그리피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청림출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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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일반적인 쟁점 중 하나는 인간의 경험과 데이터 중 어느 것이 판단의 중심에 있는지다. 데이터가 훨씬 우수하다는 증거들이 많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암묵적 지식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분야도 있고, 이 둘은 역할의 비중이 조절될 뿐 모두 필요한 분야도 있어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물론, 제일 큰 걸림돌은 사람들의 저항(세대간의 관점)이겠지만 말이다. 


이 책은 알고리즘을 통해 인생문제를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방법을 다루고 있다. 한 때 유행이었던 'OO의 경제학' 류와 같이 일상생활의 문제를 경제학 이론을 토대로 설명하거나, 통계 분석을 통해 기업경영이나 사회행정 분야에서 나타나는 거대한 문제를 해결한 사례들을 나열한 책들은 이미 많이 나와있지만, 철저하게 통계와 확률에 기반해 체계적인 사고를 평소에도 발휘할 수 있도록 '내재화' 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해야겠다. 아마, 네이트 실버가 쓴 <신호와 소음>이 가장 비슷했던 책인 듯 싶다. 읽은지 벌써 3년 반이 지난탓에 가물가물하지만 계속 이 책을 떠올리면서 읽었다.  


하지만 이 책은 <신호와 소음>보다 좀 더 철학적이다. 제시된 알고리즘은 모두 다르고, 그것을 적용할 수 있는 시기나 상황에는 차이가 있지만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효과(Gain)를 극대화 하기보다는 실현될 혹은 미래에라도 실현될 것으로 예상되는 손실(Loss)를 최소화하라'는 내용인 것 같다. 

다른 하나는 다양한 증거들을 수집하여 이를 변수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래 서평의 <사례 2>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해서 어떤 사건을 역으로 바꾸지 말라는 거였는데, 이런 오류는 지나치게 '단순화' 하는 것을 통해서도 나타나는 것 같다. 
이러한 태도는 끊임없이 다양한 사건들을 채집하고, 어떤 것이 어느정도의 영향을 주는지 생각하고, 이를 통해 사건의 확률을 부지런히 '업데이트' 해 나가야 한다는 '베이즈 규칙' 과 정확히 일치한다. 책 6장 <베이즈 규칙>에서 들고 있는 마쉬맬로우 일화에 대한 해석은 짚고 넘어갈만 하다. 

마시멜로 실험이 의지력에 관한 것이라면, 이 실험은 자제력을 터득하는 것이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입증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그 실험이 의지보다는 기댓값에 관한 것이라면, 이 조사결과는 다른, 아마도 더 심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로체스터대학교의 연구진은 최근에 사전 경험이 마시맬로 실험에서의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를 조사했다. ... (어린이들은 먼저 미술과제에 착수했는데) ... 실험자인 어른은 아이들이게 평범한 미술용품을 준 다음, 곧 더 좋은 미술용품을 갖고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아이들 자신은 몰랐지만, 그들은 두 집단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 쪽 집단의 실험자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고, 약속한 대로 더 좋은 미술용품을 갖고 돌아왔다. 반면에 다른 쪽 집단의 실험자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빈손으로 돌아와 놓고 사과도 하지 않았다. 

미술과제를 끝난 뒤, 아이들은 표준 마시멜로 실험에 참가했다. 앞서 실험자가 못믿을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아이들은 실험자가 돌아오기 전에 마시멜로를 먹을 확률이 더 높았다. 즉, 간식을 하나 더 받을 기회를 잃는 비율이 높았다. (모두 272 페이지)

이 실험은 이외에도 참 다양한 목적으로 인용 또는 비판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간단하게만 이야기하면 단순히 실험 참가자인 아이들의 자제력이 이 실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기본적으로는 아이의 자제력 이외에, 1) 어른이 돌아온다는 말 자체를 믿는가, 2) 어른이 보상을 해 줄 것이라는 걸 믿는가의 두 가지가 추가로 아이의 최종 행동 혹은 의지력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나이가 많으면 자제력이 더 클 거라고 기대할 수 있지만, 그 정도는 3) 아이들마다 달라 어떤 나이대에서는 역전될 수도 있다.  
위의 기사도 진지하게 파고들면 그런 오류를 똑같이 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에 대한 선생님의 언행은 중요하지만 단순히 그것 하나만으로는 어떤 결정도 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대신 저 말 한마디가 방아쇠가 될 수는 있었겠다고 보는 편이다. 물론, 이걸 믿고 학생들에게 조심해야겠다는 선생님이 있다면 그건 좋은 오류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한마디로 "인생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내 인생과 남의 인생 모두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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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머니 -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투자전략, 젊음이 엣지다
패트릭 오쇼너시 지음, 한지영 옮김 / 새로운제안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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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세대 갈등론; 밀레니얼 세대가 지는 게임 


나는 돌아가신 할머니한테 좋지 않은 감정이 많다. 물론 어린 내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쪽이었다. 돌아가시기 몇 년 전에는 약한 치매와 풍을 안고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우리 집에서 모시게 됐었는데 내가 할머니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걸 아버지는 외면하고, 어머니는 이걸 조금이라도 풀려고 시도하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끝까지 풀리지 않았다. 풀 생각도 전혀 없었다. 내가 일방적으로 당했는데 그 사람이 병 들고 나이 들었으니 화해하라니? 더욱이 청하지도 않는데. 그게 무슨 논리인가... <헌터X헌터>에서 클로로가 그랬다. 굴레는 잊는게 아니라 끊는거라고. 


그러면서 나는 나이 든 사람과 업을 엮는다는게(특히 내 의지가 아니라면) 젊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회로 나와보니 이런 틀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면 억측일까? 물론, 모든 세대는 괴롭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으로 젊은 시절을 다 날려보낸 세대가 내 조부모였고, 우리 부모세대는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은 급격한 사회 변화를 다 견디면서 노후에 와서는 예상외로 오래 사는 부모와 사회진출이 늦어지는 자식 부양에 낀 세대가 되어버렸다. 서로 자기가 힘들었다고 해도 다 맞는 말이다. 이건 개그맨 유병재의 말 따나 '네가 힘들다는 걸 알아도 내가 덜 힘든 건 아닌' 셈이다. 


허나, 이건 세대 내의 문제이고 서로 다른 세대 간의 문제로 오면 양상은 달라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중에 위치한 세대의 입장에서는 '그럼 니들이 어쩔건데?' 라는 막무가내 논리를 뒤집어 써야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저 논리는 숫자와 돈이 얽혔다고 다르지 않다. 국가부채 확대, 노년층을 위한 사회보상세 확대, 의료비 지출 증가 등이 해당한다. 이 책에 '책임부채' 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건 마치 '비자발적' 책임부채가 되어버리는 형국이다. 


□ YOLO vs 스튜핏; 투자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 세대의 문제에 집중해서 보자. 한동안은 단순히 'O포 세대'라고 해서 연애와 결혼 등 인생에서 겪어야 할 몇몇 과정들을 포기했다는 자조가  섞여 나왔지만, 요즘의 표현들은 보다 구체적이다. 그 중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인생은 한 번뿐이다' 라는 의미의 욜로(You Only Live Once, YOLO)다. 한마디로 현재의 만족만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겠다는 극단적인 스탠스인 셈이다. 동시에 이와는 정반대의 입장을 가진 트렌드도 있다. 개그맨 김생민씨가 나오는 <영수증> 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사연을 의탁한 일반인들의 한 달치 영수증을 일일히 보며, 코멘트를 해 주는 프로그램인데 과도한 지출에 대해서는 '어리석다'는 의미로 '스튜핏' 이라고 하는 것이 유행어가 되고 있다. 여기서는 극단적으로 꼭 필요한 소비만 하며 저축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둘 다 재미있는 현상이긴 하나, 빠진 것이 있다. 소비와 저축만 있지 투자는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영수증>에서 조차도 대놓고 투자가 부정적이라고 하지는 않으나, 투자상품을 줄이거나 없애서 예적금을 하거나 주택 대출금을 먼저 상환하라는 조언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건 현실의 반영일까? 실제로도 20~30대에게 '투자' 는 재무계획에서 아얘 빠져버린 선택지인 것처럼 보인다.  



□ 탁월함; '그렇게 되기 싫다'는 네거티브 


흰 쌀을 불려서 적당한 물을 넣고 전기밥솥에 끓이면 밥이 된다. 그런데 이 때 가서야 '저는 쌀밥을 지으려고 한 게 아니었어요, 된장찌개를 만들고 싶었어요!" 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어떤 행동을 하면 응당 거기에 예상되는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다. 성과가 나오는 시점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그 내용 자체는 제한적이다. 바꿔 말하면 '열심히' 쌀 불리는 시간을 재고, '철저하게' 물 양을 맞춘 다음 '조심스럽게' 전기밥솥에 얹는다고 해서 그게 된장찌개가 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진로문제도 그렇다. 수능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인정받는 대학에 들어가서, 높은 학점 받고, 알아주고 급여 많이주는 직장에서 열심히 오래 일해 아끼고 저축한다면 어떤 삶이 펼쳐질까? 그렇다고 다른 방법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일단 알려진대로 열심히 해야하는게 변명이 될까?


여기서 확실하게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은 일단 '그렇게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적어도 '그렇게 되기 싫으면' 말이다. 앞서 평균의 현실적인 20~30대에게 빠진 것은 투자라고 지적했다. 소비와 저축을 얼마나 '잘' 혹은 '안'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복리수익; 젊음이 엣지다


그럼 어떻게 투자하는 것이 좋을까? 물론 좋은 기업을 고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책에서도 '밀레니얼 체크리스트' 라고 해서 나름대로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주주수익률이 5% 이상인가?

 - 투자자본수익률이 30% 이상인가?

 - 영업현금흐름이 순이익보다 높은가?

 - 잉여현금흐름 대비 시가총액이 10배 미만인가?

 - 지난 6개월간 모멘텀이 가장 높은 상위 20% 집단에 해당하는가?


그런데 이 전략을 시행하려면 기업재무 관련 데이터도 수집해서 가공하는 작업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혹자에게는 말이 좀 어려울 수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시간'이다. 복리의 중요성은 여느 투자 관련 책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특별할 건 없다. 다만, 여기서는 밀레니얼 세대가 충분히 많은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역량과 환경을 갖추고 있으면서, 투자를 할 수 있는 충분히 긴 시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윗세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메리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통상적인 투자수익은 수익률과 시간의 조합인데, 시간이 충분히 많다면 수익률을 희생해도 된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률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 기대 수익률이 낮다면) 이는 자연스럽게 위험을 회피하는데 반영할 수 있으며,  손실 가능성도 상당히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간은 어떻게 해도 벌 수 없으며, 왠만큼 높은 수익률로도 만회가 되지 않는다. 

 

□ 유전자 몫의 세금과 소음 


시간이 주는 복리효과를 이해하고, 좋은 기업을 고르는 전략을 마련했다면 이를 지속하는 문제가 남는다. 여기서는 인간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심리적 허점들, 책에서는 '인간 유전자 몫으로 내야하는 세금' 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크게는 아래와 같다. 


 - 고점매수 저점매도

 - 위험회피, 보상추구 

 - 행동패턴을 바꾸는 무의식

 - 즉각적인 욕구 추구와 만족지연 

 - 패턴 찾기 


또 다른 하나는 외부에서 얻는 정보중 판단을 방해하거나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정보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것들을 흔히 '소음'으로 분류하는데, 투자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아래 책에 드러나 있기도 하다.  


□ 배당; 비관속의 근거 


이 책의 마지막 장인 나오는 말의 제목은 '밀레니얼 세대의 근거 있는 비관주의' 이다. 나는 이 제목이 참 인상깊었다. 왜냐하면 나를 포함한 밀레니얼 세대를 둘러싼 경제 환경은 부정적인 부분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 윗세대를 위해 더 많은 부담을 져야 할 것이 명백하며, 

 - 교육도 트렌드도 '투자'라는 선택지에 대해서는 제시하지 않고 있고, 

 - 우리 세대도 다르게 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고, 

 -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안고가야 하는 많은 내/외부의 방해가 있다. 


그럼에도 미래를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든지, 투자를 해야한다든지에 대한 근거라면 책에서 언급대로 시간이 가져다주는 복리수익이 될 수 있을 것 같고, 여기에 하나를 추가하면 '배당'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투자 복리수익의 경우는 가정한대로 이루어진다는 '보장' 이 없다. 당연한 것이지만, 좀 더 자세히 언급해 보자면, 전년도에 평가익으로 8%를 거둔다고 해도 실현한 것이 아니라면 이는 차년도 시황에 따라서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낮은 가격에 매수해서 보유중인 주식을 무작정 팔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작긴 하지만 세금과 수수료 문제도 따라오고 말이다. 


하지만, 그 수익이 배당 4%와 평가이익 4%라면 어떨까? 평가이익이 내 소유의 숲에 둥지를 튼 새라면, 배당은 쉽게 말해 '새장 안으로 들어온 새'에 해당한다. 다른 말로 하면 실현한 이익이라는 거다. 그리고 이는 재투자함으로써 다시 추가적인 평가이익을 위한 원금(시드머니)으로 전환이 되고, 더 보다 많은 배당금으로 돌아온다. 겹복리라고 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그래서 나는 충분히 배당도 비관속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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