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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이중섭 - 전2권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11월
평점 :
(1권의 리뷰와 2권의 리뷰는 따로, 1-2권 묶음의 리뷰를 빌어 책 전체에 대한 소감을 적을까 한다.)
“그만해라, 영진아. 태성의 반딧불이 눈, 그 샛눈만 있으면 됐어.”
그 시인에게도 몇 번인가 그 이야기를 했다. “글쎄 그 어린 녀석이 샛눈을 뜨고 사인을 하더라고요.” “그래요? 거 참 영민하고 예쁜 녀석이군요.”
“삼촌, 그 이야긴 열 번도 더 들은 것 같아요.”해서 모처럼 크게 웃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감은 눈시울에 엉기는 어머니의 소복치마저고리, 몸뻬바지를 입고 꿇어앉은 남덕의 통통한 손등의 이미지가 자꾸 눈에 밟혔다. 둥실 날아올랐다. 두 아들녀석의 얼굴은 너무 멀어서, 너무 희미해서 자꾸 가물거렸다. 한국의 애들이 아니었다는 것, 반바지에 무릎까지 올라온 영말에 깍듯한 인사가 그녕 그렇게 너무 아득했다.(2권 p.300)
‘남덕 여사님, 대향이 평생 동안 지향했던 그 순연한 가지를 나는 한 글자 성誠에 의미를 둡니다. 선과 악이나 그 어떤 이데올로기와도 무관한, 생태계의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 가치로 존재하며 서로의 간극을 조율하는 자연의 섭리를 지닌다고 역설했던 대향을 존경했습니다.’ (2권 p.330)
소설 1권과 2권을 다 끝내고 나니 마음이 참 허탈했다. ‘문학’은 ‘인물’을 기본으로 하였기에 ‘인문학’과도 통한다고도 했던가, 문학을 통해 독자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게 된다 하던가.
소를 그려온, 민족의 아픔을 고스란히 그림에 담아낸 민족의 작가 이중섭을 사랑하게 되고 한 남자의 아내이자 일본에서 자라는 한국인 교포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어미 이남덕을 사랑하게 되고 존경과 사랑으로도 모자라 시기와 질투의 끝을 달리던 허수를 이해하게 되고 예수에 비할만한 성인으로 그려지는 따뜻한 구 시인을 존경하게 되고 과부인 딸들을 지켜내느라 강철여인이 되는 마사코의 엄마를 알게 되는 것... 이 소설이 내게 너무 많은 생각을 심어줄 수 밖에 없었던 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평전이 아닌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대향의 성誠, 그 고결한 마음을 아름다이 담아낼 수 있었던 것도 소설이기 때문일 것이다.
화가 이중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한 여인의 일생을 바라보는 여자의 본능으로 읽었기에...이 소설은 참 쉽기도 어렵기도 했다.
게와 아이들과 황소, 순수한 모순의 사랑... 책의 소제목과 책 표지에 있는 그림을 소설을 읽으며 몇 번이고 곱씹었다. 화가 이중섭의 작품들이 철저히 우리를 뒤흔들면서도, 때때로 사람들에게 오해받는 것은 그의 아내가 ‘일본인’이어서 그런걸까? (처음 소설을 읽기 시작하던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그의 사상이 의심스러워서? 벌거벗은 그림 속의 그들이 외설스러워서? (실제로 소설 속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힐난하는 여론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놀라운 붓놀림에 시기심이 일어서?
그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건 그것이 끝없는 모순을 낳았건(마사코로 인한 오해, 그리고 태성과 태현 두 아이들의 모순적인 태생...) 그의 작품마저 우리네들의 삶이나 눈물과 동떨어져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황소는 바라본다, 있는 그대로의 성(誠)의 마음으로 아프고 힘들고 짐진 자들을.
바라보는 이가 어떤 나라 사람이건 무엇을 선택했건 누구를 사랑했건 까맣게 타오르는 검은 눈동자로 말없이 바라봐 준다.
그의 그림들을 보며 헤헤 웃을 수 밖에 없었던 이중섭의 성정을 한번쯤 떠올리게 된다.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