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교육
로맹 가리 지음, 한선예 옮김 / 책세상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의사 트바르도브스키가 숲에 숨어 있는 소년에게 온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말한다. “체념하고 함부로 굴면 안 된다…… 늘 반듯해라. 엄마가 가르친 대로 따르거라.” 한 저택 안에 여인들이 슬픈 얼굴을 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주근깨 가득한 금발 소녀가 담배를 피우다가 군인과 함께 올라갔다가 내려와 다시 한 모금을 빤다. 소녀는 방 속의 여자들에게 웃으며 말한다, 군인들에게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법은 간단하다고. 며칠 후 그곳으로 왕진 가방을 든 한 남자가 나타난다. 보초병들에게 서류를 내밀고 기다리며 그는 자연스레 기관총을 꺼낸다. 창문을 통해 쓰러져가는 군인들을 목격한 소녀는 후에 이 이야기를 다른 여자들에게 전한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슬로우모션처럼 펼쳐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난 생각했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겠다고.

친절하지 않게 드러나는 첫장면들은 내 마음 속에 강렬하게 와닿았고 나는 이 소설 『유럽의 교육』이 궁금했다. 유럽의 ‘교육’이 이 상황과 어떤 관련이 있다고? 저 어린 소년과 소녀가 같은 학교에라도 들어가는 걸까?

 

주인공 소년은 야네크다. 어느 날부터 아버지가 찾아오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의 당부대로 ‘빨치산’을 찾아간다. 야네크는 함께 지내는 그들이 비밀문서에 쓰는 ‘나데이다’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대학생들은 야네크에게 꾀꼬리처럼 노래 잘하는 사령관이라고 농을 던진다. 소녀는 조시아다. 소년과 처음 만나던 날, 다른 남자와 다르기 자길 대하기 때문에 야네크가 좋다고 한다. “일 끝내자마자 올게.”하고 조시아는 잠시 떠난다. 그는 춥고 어둡고 시린 숲에서 따스한 우정을 느꼈고 나무를 껴안으며 희망을 맛보았다.

둘은 어리다. 전쟁이 무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사여부를 알지 못하지만, 자신이 군인들과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만 그저 함께 있을 수 있어 행복하다. 심장이 함께 뛰면 서로 얘기를 나누며 행복해하는 것임을 배운다. 신이 잘못한 것 때문이 사람들이 힘든 건 아닐까하고 고민하는 두 사람의 대화는 아름답고도 슬프다.


소설을 읽으면서 두 소년 소녀가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을 보는 것이 하나의 큰 줄기라면, 또 다른 큰 줄기는 음악과 함께 읽혔다.

쇼팽의 음악은 소설 속에 배경음악처럼 흐른다. 처음 등장한 곳은 야블론스키의 편지를 전하기 위해 마을로 간 야네크가 야드비가 양을 만날 때였다. 그녀가 치는 쇼팽의 폴로네즈가 울려퍼지는 밤, 야네크는 무언가를 되찾은 것만 같았다(내가 느낀 감정은 그랬다). 그리고 소설 속에 실제로 음악이 등장하건 등장하지 않건 내겐 자꾸 쇼팽이 들렸다. 야드비가 양을 만나러 간 야블론스키를 교수대 밧줄에서 보던 찰나의 순간에도, 숲속에서 독서모임을 갖는 청년들의 모임 속에서도, 독일 감시병들과 함께 스케이트를 타던 순간조차도(야네크의 마음 속에서 어떤 불길이 타오르고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쇼팽의 음악이 들리는 것이 굉장한 아이러니일 수도 있다) 자꾸 쇼팽이 들린다. 야네크가 삶을 ‘살아내는’ 과정 속에서 한없이 쇼팽의 선율은 흐른다. 그 음악은 야네크를 품어주던 숲과 닮아있기도 하다. 아름다운 음악은 깊은 숲은 늘 그대로인데 야네크만 변하고 있다. 아니 사람들만 변하고 있다.

감자 몇 개에 친구를 팔아 넘기고, 주린 배는 사랑을 허용하게 되고, 자기만큼은 아무 일 없기를 바랬지만 아내를 잃고 아들을 잃고 외로움 속에 스스로를 잃기도 한다.


 

얼마나 많은 꾀꼬리들이 필요한 건지 야네크가 던지는 물음은 내게 묻는 질문같다. ‘그곳은 어떤 것을 가르치는 ’학교‘니? 내가 사는 곳보다 나아진 곳이니?’하고. 쇼팽의 음악은 여전히 아름답고 숲은 예나 지금이나 희망을 품고 있어. 다만 개미떼들이 수많은 꾀꼬리들이 방향없이 움직이고 노래하고 있을 뿐이지. 분명 그 모든 것들의 방향을 바로 잡을 수만 있다면 신을, 이 ‘학교’를 우리는 원망하지 않아도 될 것이야. 야네크가 목도리를 두른 독일군에게 총구를 겨눌 때, 그리고 도브란스키가 ‘노래’하고 있을 때 마음이 흔들렸다. 스산한 바람을 느낀 건지, 봄결을 감지해낸 건지 아직도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책 『유럽의 교육』이 좋을 뿐이다. 조시아와 야네크가 살아내는 그 시대를 내 것인양 느낄 수 밖에 없는 건 당연한 것이려나. 수없이 책의 부분들을 옮기고 또 옮겨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