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하자 1
하라히테노리 / 대원씨아이(만화)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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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그다지 많이 보는 것은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때문에 가끔씩은 만화를 보게 된다. 때문에 만화에 대한 내 지식은 일천하기 그지없다. 작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그러나 몇 안되는 만화가들 중에서 아직까지 기억나는 작가가 있다. '그래 하자'의 하라 히데노리와 'H2'로 빛나는 아다치 미쯔루. 두 작품 모두 야구를 소재로 한 만화지만 그 전개는 너무나 다르다.

둘중에서 어느쪽이 더 내 감성을 자극하는가 하는걸 따지는 것은 마치 가요 순위를 따지는 것 만큼이나 쓸데없는 것기는 하지만, 솔직히 하라 히데노리의 만화가 더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 아다치 미쯔루의 H2를 '엘리트의 고뇌'가 읽혀지는 만화라서 좋아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마도 그것 때문이 아닐까.. 내가 아다치 미쯔루의 만화에 동화하기 힘든 것은... H2의 히로나 히데오는 너무 완벽하다. 도저히 고등학생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성숙함과 여유, 게다가 자기 일에 대한 천재적인 재능. 그 어디에도 나와 닮은 점은 없는 것 같다.

하라 히데노리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왠지 모르게 패배주의적이다. 낙오자 정서라고 해야하나... 그 주인공들은 언제나 자기가 뭘 해야 하는 지 모른채 서성댄다. 우리들의 일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어딘가는 불만족스럽고 언제나 왠지 모를 불안함을 안고 사는 사람들...

하라 히데노리는 이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겨울이야기'의 무모한 삼수생에 대해서도, '그래 하자'의 주인공인 형편없는 투수에게도,' 내집으로 와요'에서의 서로의 갈 길을 가는 가슴 아픈 연인에 대해서도... 그래서 나는 그가 좋다.

인터넷을 떠돌다 발견한 하라 히데노리의 팬사이트에서 발견한 한 마디...

"무엇하나 잘하지 못하고, 스스로도 무엇을 원하는 지 모르는
소심한 주인공, 거기에 위로 받을 수도 지쳐버릴 수도 있다.
그렇담 그럼 당신은 자신있나? 무얼 할 수 있는 지? 당신이
옳은 지?. 난 자신없다. 그래서 하라가 좋다"


p.s1 만화를 좋아하는 한 친구가 아디치 미쯔루의 최고의 장점은 장면과 장면사이의 미묘한 변화를 통한 심리묘사의 탁월함이라고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찬사는 오히려 하라 히데노리에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의 그림에서 표현되는 정적감, 그리고 그 사이에 표현되는 인물들의 표정...그 리얼리티에 가끔씩 숨이 막힐 정도니까. '내집으로 와요'는 꼭 읽어보시길.

가끔씩...평범하기가 비범하기보다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p.s2
하라 히데노리의 대표작
"さよなら三角(안녕, 삼각)" "じゃすとみ-と(just meet)"

국내 소개작
"겨울이야기" (전7권, 대원)
"내 집으로 와요" (전7권, 대원)
"언제나 꿈을" (전6권, 대원)
"그래 하자" (전21권, 대원)
"Someday" (전8권, 대원)
"청공" (현재 7권 발간, 대원)

해적판
겨울이 끝나는 날(겨울이야기)
프리킥 (현재 대원에서 정식판 발간중)
마지막 승부 (그래 하자)
꿍따리사바라 (?)
거짓말 (언제나 꿈을)
못말리는 야구왕(파울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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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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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가슴을 울릴만한 경구들이 가끔씩 눈에 들어왔지만 그것이 내 가슴을 울리지는 못했다.

꿈을 찾아가라는 말.
그 말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꿈을 찾지 못하고 산다는 사실의 반증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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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파 - 김규항 칼럼집
김규항 지음 / 야간비행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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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은 글을 잘 쓴다.

글을 잘 쓴다는 말은 참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그것이 자신이 생각한 바를 상대방에게 명확하게 인식시키고, 자기가 혐오하는 것들을 독자 역시 혐오하게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면 그는 정말로 뛰어난 글재주를 지니고 있다.


그의 분노에는 날카로움이 있고 그의 냉소에는 오만함이 없다.

이것이 그의 글을 다른 글쟁이들의 그것과 구분짓는 명확한 경계선이다.

그 냉소의 대상에 때로는 나 역시 포함되지만, 뭐 어떠랴. 분노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씩 웃으며 넘어갈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서있는 곳의 어쩔 수 없는 차이이므로...  일찍이 샤르트르가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내가 서있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내가 가진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지지 않은 자라고 할 수도 없기 때문에.

뭔가 이 세상에 대해 답답함을 느낀다면 이 B급좌파의 일갈을 들어보라.. 그의 글은 당신의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맹렬히 자극할 것이다.


P.S '개자식''돌팔이''교양'등의 글은 정말 카타르시스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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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한국
공병호 지음 / 해냄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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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셀러가 되어 있는 책을 읽어 보았다.
균형잡힌 시각을 갖기 위해서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글을 꼼꼼히 챙겨봐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언제나 어렵고 귀찮은 일이다.

저자는 우리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다.
향후 10년간 우리나라의 정권은 좌파가 잡을 것이고(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지만) 우파에게 그것을 막을 역량이 없으며 앞으로 10년 후 우리 나라의 미래는 불투명하다는 비관론이 책의 주요한 테마인 듯하다.

여러가지 논거를 대고 있었지만, 그다지 과학적인 논거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가 제시한 자료를 가지고 그와 반대의 결론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

과연 10년 후 세상이 어떻게 변해 있을까?

(전반적으로 책은 쉽다. 그리고 신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참신성과 논리성 모두 그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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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몬드 카버 지음, 안종설 옮김 / 집사재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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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극찬과 남성잡지의 책 소개란을 통해 알게 된 미국의 단편소설 작가.

 

감상을 배제한 책 상황과 서술로서 모든 것을 전달한다.

 

어떤이들은 그를 최고라고 치켜세우고,

어떤이들은 그의 감성과 서술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균열을 감상을 배제한 채 조용하게 전달하는 그의 글은 등장인물들에 대한 감정이입을 강요하는 듯한 웅장한 소설들과는 확실히 달랐던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은 설사 제목이나 줄거리를 잊어버렸다 해도, '아 카버의 단편에서 불평만 해대는 이상한 이사광 어머니가 나오는 그 이야기...'라는 식으로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정도면 족하다고 나는 행각하는데..]

-하루키의 작품해설 중-

 

등장인물의 감정이나 심리가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행동들이 기억나는 것을 보면 하루키가 한 이 말은 확실히 맞는 것 같다. 그 정도로 족한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던 하루키와 카버의 인터뷰 중 인상적이었던 한 부분.

 

카버 - 미국에서는 작가가 대학에서 가르치는 전통이 있습니다. 저만 해도 존 가드너에게 배웠죠.

하루키 - 가르치는 일은 어떻습니까?

카버 - 즐거운 일입니다.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 무엇보다 학생들의 작품을 읽고 일일이 코멘트해주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죠- 그래도 열 시간씩 육체노동을 해야하는 사람들처럼 힘들다고 할 수야 없겠죠.

하루키 - 훌륭한 작가가 될 만한 자질이 있는 학생이 있습니까?

카버 - 한 둘은 그렇습니다. 모두가 그럴 수야 없겠죠. 하지만 그래도 다들 훌륭한 독자는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런게 대학 교육이 가지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그는 지성인이었음에 틀림없다. 대학이 자본의 맞춤공장이 되어야 한다고 외쳐대는 신지식인들 틈에서 그의 말은 인상적이다. 

 

우리의 대학이 그런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 대학의 현실이다. 지성인으로서의 교양에 전혀 무관심해도 훌륭한 학생으로 인정받고,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졸업이 가능하며, 책을 안 읽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학생들이 적지 않은 우리의 대학은 공장으로서도, 학교로서도 모두 불량품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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