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극찬과 남성잡지의 책 소개란을 통해 알게 된 미국의 단편소설 작가.
감상을 배제한 책 상황과 서술로서 모든 것을 전달한다.
어떤이들은 그를 최고라고 치켜세우고,
어떤이들은 그의 감성과 서술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균열을 감상을 배제한 채 조용하게 전달하는 그의 글은 등장인물들에 대한 감정이입을 강요하는 듯한 웅장한 소설들과는 확실히 달랐던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은 설사 제목이나 줄거리를 잊어버렸다 해도, '아 카버의 단편에서 불평만 해대는 이상한 이사광 어머니가 나오는 그 이야기...'라는 식으로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정도면 족하다고 나는 행각하는데..]
-하루키의 작품해설 중-
등장인물의 감정이나 심리가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행동들이 기억나는 것을 보면 하루키가 한 이 말은 확실히 맞는 것 같다. 그 정도로 족한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던 하루키와 카버의 인터뷰 중 인상적이었던 한 부분.
카버 - 미국에서는 작가가 대학에서 가르치는 전통이 있습니다. 저만 해도 존 가드너에게 배웠죠.
하루키 - 가르치는 일은 어떻습니까?
카버 - 즐거운 일입니다.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 무엇보다 학생들의 작품을 읽고 일일이 코멘트해주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죠- 그래도 열 시간씩 육체노동을 해야하는 사람들처럼 힘들다고 할 수야 없겠죠.
하루키 - 훌륭한 작가가 될 만한 자질이 있는 학생이 있습니까?
카버 - 한 둘은 그렇습니다. 모두가 그럴 수야 없겠죠. 하지만 그래도 다들 훌륭한 독자는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런게 대학 교육이 가지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그는 지성인이었음에 틀림없다. 대학이 자본의 맞춤공장이 되어야 한다고 외쳐대는 신지식인들 틈에서 그의 말은 인상적이다.
우리의 대학이 그런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 대학의 현실이다. 지성인으로서의 교양에 전혀 무관심해도 훌륭한 학생으로 인정받고,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졸업이 가능하며, 책을 안 읽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학생들이 적지 않은 우리의 대학은 공장으로서도, 학교로서도 모두 불량품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