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십 대를 위한 동화 속 젠더 이야기 - 남자다움, 여자다움에 갇힌 나다움을 찾아 떠나는 동화 속 인문학 여행 ㅣ 십 대를 위한 인문학
정수임 지음 / 팜파스 / 2019년 3월
평점 :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동화 속 주인공을 꿈꾸던 내가 결코 그 꿈을 이루지 못할거라는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또한 ‘그 후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이야기들이 의심스러웠다. 대학 학부 시절 교양 강좌로 개설된 여성학 관련 강의들을 찾아 듣기 시작했던 그 때에 이르러서야 왜 내가 동화에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주어진 이야기들의 이면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더라면 동화 속 공주와 남성과의 관계가 필연적인 해피엔딩에 덜 몰입했을거라는 생각도 했더랬다.
<십대를 위한 동화 속 젠더 이야기>라니 내가 십대 때 이런 이야기를 만났더라면 나는 좀 더 행복해졌으리라 확신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수십 번 반복해 읽었던 어떤 동화들이 내게 가르쳐준 바람직한 삶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름답지 못하다는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었고, 다수의 사람들이 가라고 한 길을 가고 싶지 않다고 버틴다는 이유로 주위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았으며, 불행한 나를 구해줄 왕자님은 영원히 만나지 못할거라는 절망에 빠져 내 삶의 한계를 상기할 때마다 우울의 늪에 빠지곤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꽤 불행한 시절을 보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감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 (본문 131쪽에 인용되어 있음)
라푼젤, 빨간 모자, 백설 공주, 피터팬, 작은 아씨들, 선녀와 나무꾼, 빨간 구두, 오즈의 마법사, 피노키오, 미녀와 야수, 개구리 왕자, 플랜더스의 개, 푸른 수염, 80일간의 세계 일주, 행복한 왕자, 춘향전.
작가는 위 작품들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동생과 언니, 동생과 형이 주고받는 편지 형식을 통해 동화 속에 숨겨져있던 불편한 진실과 그 시절 가혹한 프레임에 갇힌 여성의 모습을 파헤친다. 작가가 다시 전해주는 동화 이야기를 들으며 깨닫는다.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질문하고 또 질문해야 한다. 의심하고 숨겨진 뭔가를 찾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책에 교묘하게 감춰져 있던 ‘위험한 생각들’의 씨앗을 자연스럽게 내 안에 심게 된다.
“세상은 정말 그런가요?"(책의 뒷 표지 글 중에서 옮김)
‘올바른 젠더 감수성을 키워 주는 새로운 동화 읽기’, 책의 표지에 쓰여진 글귀다. 작가는 ‘젠더감수성’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고, 젠더감수성을 함양하기 위한 다양한 개념들과 동화 속 장면들을 설득력 있게 배치 구성해두었다. ‘십대를 위한’이라는 표현대로 중학생 이상은 되어야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성인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더 이상 아이들에게 무심코 아무 동화나 골라 읽어줄 수는 없으리라. 그리고 오래전 읽었던 동화들을 다시 읽고, 많은 질문들 속에서 허우적거릴지도 모른다.
이 책은 재미있고 진지하다. 이 책을 통해 익힌 관점과 시선을 통해 다른 동화들에게 질문할 수 있을 것 같다. 질문할 수 있는 힘도 젠더감수성일터, 동화를 읽어주는 어른들이 먼저 읽어보시길 기꺼이 권하는 바이다.
201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