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퇴사>에서는 1인 기업을 창업하기 전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1만 원이라도 벌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해보라고 말한다. 1만 원이 얼마 안 되는 돈이니 쉽게 벌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누구나 제공할 수 있는 노동력이나 시간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나’라는 브랜드를 내걸고 돈을 벌기는 쉽지 않다. 1인 기업의 대표가 된 지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해서 우여곡절도 많고 사건•사고도 많았지만 지금은 나름 노하우가 생겨 차분하고 온유하게 모든 일을 해결하고 있다. 지난 일이니까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사실 처음 사업을 시작하면서 자신감보다는 두려움이 훨씬 더 컸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제 정말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인데 마음 한구석에는 자꾸만 두려움이 자라났다. 보이지 않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함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자신만만하게 준비해 왔던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갈까 무서워 자꾸만 눈앞의 현실을 회피했다. 나는 계속 스스로가 만든 마음의 어둠 속으로 잠식되고 있었다.그러다 어느 순간 변화는 안정성과 편리함을 동반하지 않고, 변화하고 싶다면 불편함을 느낄 각오부터 하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성공과 실패는 한 끗 차이이자 빛과 그림자처럼 뗄 수 없는 관계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해서 도전을 멈추거나 포기한다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원하는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는 자가 결국 원하는 것을 얻는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방황했던 시간은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잠시 먼 길을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하나의 과정일 뿐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조금 멀리, 천천히 돌아온 것이다. 1인 기업의 대표는 모든 부분을 혼자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다양한 분야를 책임지다 보면 많은 실수를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의 인생이 쉽게 망가지지는 않는다. 실수를 인정하고 좋은 방향으로 고쳐나가거나, 스스로의 문제점을 깨닫고 더욱 발전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이렇게 노력의 순간이 모두 모여 앞길을 밝혀 주는 빛이 되어 준다.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젊음과 청춘을 향유하면서 살고 싶다. 3년 후의 내 모습은 어떨까. 다른 건 몰라도 그때의 나도 기쁨으로 가득한 삶을 영위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목표 혹은 스스로에 기준을 맞추다 보면 목표 기준에 미달하는 상황이 왔을 때 받는 상실감과 패배감은 배가 된다. 내가 하는 일이 망해도 나는 망하지 않는다. 스스로에 대한 기준을 너무 완벽하게 세우지 않아도 괜찮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에서 오는 불안감을 내려놓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걷는 건 어떨까. 오직 달리기만 해서 유지되는 것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무너지기도 쉽다.<빠르게 실패하기>에서는 철저한 준비와 계획 대신 가능한 더 빨리 시작하고 최대한 더 많이 실패하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실패하거나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해 꼭 허튼 곳에 시간을 낭비한 것만 같아 아무것도 결정된 것 없는 미래가 막막하게 여겨지곤 했다. 이렇게 우리는 값진 경험을 ‘실패’라는 하나의 단어로 뭉뚱그려 이야기하곤 한다. 자신의 소신을 따를 수 있는 용기를 갖기까지는 수많은 노력과 실패가 필요하다. 또한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복되는 실패와 재도전이 필요하다. 실패하는 그 찰나에 부끄럽고 수치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실패가 모여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과 자신만의 내공이 된다. 처음 실패를 맛봤을 때는 두려움과 패배감으로 포기하고 싶어지지만, 긍정적인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은 계속하다 보면 될 것이라는 걸 안다. 부끄러움은 나만의 것이다. 그리고 빠르지만 결국 좋은 실패는 우리를 더 큰 세상에서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게 한다.
고흐의 걸작 대부분은, 그가 죽기 전 프로방스에서 보낸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탄생했다. 파리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고흐는 빛나는 색채를 찾아 1888년 프로방스의 아를로 향했다. 여기서부터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고흐가 보낸 편지의 주된 수신인은 그의 동생 테오다. 고흐는 자신의 그림에 대한 해설을 자세히 해 둬서 거의 모든 작품을 화가가 어떤 생각으로 그렸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반 고흐는 평생 딱 한 개의 작품밖에 팔지 못했으며, 미술계에서 알려진 인물도 아니었다. 그의 인생은 자신에 대한 회의감 등 다양한 심리적 문제로 가득했다.고흐의 그림에는 유독 노란색이 많이 사용되는데, 이것은 '초록 요정의 술' 혹은 '에메랄드 지옥'이라고 불리는 스위스의 술 '압생트'의 부작용이다. 고흐가 사용한 찬란한 노란색은 압생트에 들어있는 산토닌이라는 성분이 시신경을 손상시켜 모든 사물이 노랗게 보이는 시각장애, 환시증을 일으킨 결과였다고 한다. 고흐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림 안의 공기가 어떤 느낌인지 느껴지는 기분이 든다. 미술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작품을 보면서 습하거나 쨍하거나 탁하고 서늘한, 선선함 등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하다. 그의 작품은 모두 외롭지만 색은 또 따뜻하다. 고흐의 고민도 이렇게 따뜻하면서 외로운 것들 같았을까.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고흐의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반짝이는 별빛들을 따라 끊임없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그림을 그렸던 고흐의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가난과 빈곤이라는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좌절하고 방황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림을 향한 그의 열정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은 고흐만이 아닌, 우리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나는 동물에 대한 미신을 좋아한다. 고양이 수염을 가지고 다니면 행운이 온다든지, 프라하 카를교의 석상에 새겨진 강아지를 만지면 키우는 반려견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든가 하는 그런 귀여운 미신들. 이렇게 상상만으로도 작은 웃음과 기쁨을 주는 동물들인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하는 반려동물은 우리에게 더욱 큰 행복과 넘치는 애정을 준다. 반려동물은 내 삶의 한순간을 함께하는 하나의 올곧은 생명체기 때문에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심사숙고해야 한다. '반려'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우리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기에. <반려동물과 함께하다>는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반려동물 양육 문화와 반려산업, 정부의 정책, 현상 등을 다양한 시각을 담은 책이다. 또한 반려인이라면 꼭 지켜야 할 정보, 낙후된 반려동물에 대한 시각과 생존환경, 반려동물과 동반자로서 인생을 보내기 위해 개선되어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누군가가 애타게 기다린 여름 휴가철은 반려동물이 가장 많이 유기되는 시기다. 농림축산식품부의 통계에 따르면 일 년 중에서 7~8월에 유기되는 반려동물은 최소 7만 마리 이상이라고 한다. 휴가철에 반려동물을 데리고 이동해서 그곳에 반려동물을 유기하거나 혹은 호텔 등에 반려동물을 맡겨놓고 찾아가지 않는 유기도 다수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영혼의 단짝이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짐짝 취급하는 게 과연 인간으로 해야 할 도리가 맞나 싶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동안 마주할 모든 순간을 조금 강하게 이야기하지만, 다소 불편하더라도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이야기다. 그리고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지금까지 해 왔던 모든 사랑은 반려동물을 위한 사랑에 대한 연습이었음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이다. 사랑하는 순간에는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이별하는 순간에는 지금까지의 기억이 모두 없던 것처럼 한없이 잔인해진다. 만약 나라면 불가피하게 다가온 이별의 순간,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을까.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사랑과 이별이 존재한다. 이성과의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친구 사이의 사랑,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 등...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인해 웃고 운다. 그리고 언제나 어떤 대상을 사랑하고 있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의 두 주인공 무기와 키누는 서로에게 남겨진 사랑의 무게를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웃으면서 각자의 안녕을 바라던 그들은 헤어진 후에도 서로에 대한 좋은 기억만 남겼을 것이다. 사랑했던 연인은 이제 없지만, 사랑했던 시절의 기억으로 살아가는 자신이 있으니까.사랑은 하필,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같아서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세워두고 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자리에 사랑의 흔적만 남게 될 때 비로소 그게 사랑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터무니없게 순수하고 어렸던 사랑의 기억은 이제 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 필름으로 남았지만 기억을 더듬다 보면 그곳에는 늘 같은 사람이 있었다. 찬란했던 그 사랑의 기억은 이제 현재 진행형의 사랑은 아니다. 하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도 결국 사랑할 수밖에 없던 필연적인 사랑이라는 걸 안다. 그렇게 우리는 한없이 흔하고 더없이 특별했던 기억으로 오늘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