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계급투쟁]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새로운 계급투쟁 - 난민과 테러의 진정한 원인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희상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럽은 두 가지 난국에 빠져 있다. 첫 번째 난국은 난민 사태이다. 시리아의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 사태는 작년 9월, 시리아의 세살배기 아이 쿠르디가 터키 해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으로 유럽의 난민 문제가 전세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그 이후로 여전히 터키와 그리스의 해안에서는 계속 난민 아이들의 시신이 발견되고 있지만, 난민 문제는 지금까지도 해결책을 찾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두 번째 난국은 테러이다. 프랑스의 파리와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일어난 IS의 테러 사태로 유럽은 대혼란을 겪고 있다. 테러의 대상이 군시설이나 정부 관련 시설만이 아닌, 평범한 문화 공간과 일상의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누구도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고 마음을 놓을 수도 없음을 확인했다. 난민을 수용해도 문제가 발생하고, 수용하지 않아도 문제가 발생하는 사태와 무차별 테러 앞에서 유럽은 물론이고 세계가 딜레마에 빠졌다. 이러한 전지구적 현안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줄 지식인들의 제언을 기다리던 차에  ‘난민과 테러의 진정한 원인’이 부제인 슬라보예 지젝의 신간을 만났다.


지젝은 책의 초입에서부터 질문과 답을 던진다. “전쟁과 굶주림을 피해 북아프리카와 시리아 해안에 운집해 바다 건너 유럽에서 피난처를 찾고자 안간힘을 쓰는 수십만명의 절박한 난민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물음에는 두 가지 답이 있다고 설명한다. 어떻게 유럽이 수천 명의 사람을 지중해에 빠져 죽게 방치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유럽이 연대감을 보여 전면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 좌파의 답과 유럽의 생활 방식을 수호하기 위해 난민 수용을 거부하며 그들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일갈하는 대중영합주의자들의 답이다. 지젝은 두 가지 모두 나쁜 답이며, 두 가지 중 어떤 것이 더 나쁘냐고 묻는다면 두 가지 다 더 나쁘다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어떤 답을 내어놓아야 할까?


여기에 오스카 와일드의 진단을 빌어 곤경에 처한 난민이 더는 고향 땅을 버리지 않도록 전 세계적으로 사회의 기초를 재건하는 일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난민과 테러의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지젝은 그 원인으로 ‘새로운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를 지적한다. 천연자원을 차지하고 거래하려는 글로벌 기업들이 군벌 지도자와 결탁하여 전쟁과 가난을 양산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조국을 떠난 난민들이 유럽을 떠돌게 되었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공감이나 감상적 연민, 이타주의나 인도주의적인 동정과 연대 의식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문제 의식과 현실비판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아프리카 난민에 이어 그리스와 다른 유럽 국가의 난민들이 그 뒤를 이을 것이다”고 경고한다. 그러므로 책의 제목처럼 “새로운 계급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계급은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빈부 격차로 발생한 계급을 말하며 자본주의로부터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세계적 연대가 계급투쟁의 방법임을 강조한다. 


난민과 테러의 원인은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 나온 기아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도 멀지 않고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율과 묻지마범죄율의 증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페터 슬로터다이크가 “돈이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했다지만 나는 “지구가 돈을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말이 지금의 글로벌 자본주의의 성격을 설명하기에 딱 맞다고 생각한다. 지구가 자본주의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과열되고 응집된 자본의 에너지가 더 큰 재앙을 불러 올 것은 자명하다. 자본주의의 한계와 모순이 적나라하게 폐해로 드러났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권력층과 기득권은 부인하고 싶겠지만!) 지젝을 비롯해서 많은 저자들이 마르크스의 책을 다시 재조명하고, 지그문트 바우만이 사회주의를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반문화’로 제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얇은 책이지만 내용은 결코 얇지 않으며 책의 의미는 두터우나 어렵지 않고 명료하다. 역시 지젝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책이다. 주변에 일독을 권하고 독서모임에서 토론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책값이 두께에 비례해서 조금만 더 저렴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사서 읽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