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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멸치, 제국의 멸치 - 멸치를 통해 본 조선의 어업 문화와 어장 약탈사 ㅣ 대우휴먼사이언스 3
김수희 지음 / 아카넷 / 2015년 12월
평점 :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게 내 손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서가를 걷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작은 책이다. 제목부터 희안하다. “근대의 멸치, 제국의 멸치”라니...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은 느낌인가. 황제가 즐겨먹었던 멸치이야기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멸치와 해양산업으로 본 구한말과 식민지시대의 풍경이었다. 사이즈는 작지만, 읽을꺼리가 많다.
예를 들면, 멸치는 어떤 생선을 말하는지, 언제부터 즐거먹었는지에서 부터 어떻게 멸치가 산업이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요리해 먹는지까지 다룬다. 이 책을 보고 있으면, 색다는 시선을 느낄 수 있어서 소소한 재미가 있다. 내가 살면서 언제 그렇게 멸치에 관한 글을 읽을 수 있을까. 아무 생각없이 먹던 밥반찬이지만, 꽤나 역사의 굴곡이 있는 생선이다. 생선이라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다. 어느 동네에선 멸치, 며르치, 반당어, 밴댕이, 정어리, 양미리 등 별의 별 이름으로 다 불렸다는데 그게 다 같은 종류의 생선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작은 사이즈의 생선을 통틀어 멸치라고 부르는지 아직도 헛갈린다. 어쨌거나 강원도에 가면 먹을 수 있었던 양미리가 멸치였다니... 읽다보면, 도대체 예전에는 이런 종류의 생선을 어떻게 잡았을까 궁금해진다. 큰 생선이야 낚시로 잡았을테고, 작은 생선은 그물일텐데, 예전에도 그물이 있었나. 그렇게 질기고 가는 소재가 있었나 싶었다. 소규모 어업에서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어업으로 바뀌는 과정도 흥미롭다. 구한말의 시대상이 고스란히 어촌에 묻어난다. 일본은 가까운 남해안에 일본인어촌마을을 만들었다. 인구가 늘어나니, 조선으로 이주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이었고, 이를 수용했다. 임진왜란 같은 모습이 아니라, 잘 어울려 살도록 장려했다는 점은 생각지도 못했다. 물론 다소 배타적인 시골마을의 특성상 갈등도 있었지만, 이런 경우에는 모종의 트러블(?)을 만들어 묶어버리기도 했다. 일본에서 부락민으로 불리며 차별받았던 어부들을 조선으로 이주해, 조선인 어부를 차별하고 괄시했다. 일본은 멸치를 비료로 사용했는데, 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라 지방의 번에서 어장을 관리했다. 부락민은 여기에서 따돌림받았지만, 조선이주장려정책에 따라 남해안으로 와 멸치어업에 종사했고, 꽤나 성공했다. 일본인의 남해안 이주는 어장의 선점 목적도 있었지만, 러일 전쟁에 대비한 면도 없지 않다. 영토를 관리하기 위해 자국민을 보낸셈이다. 이런 시절에 당시 정부는 뭘 했는지 궁금해진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의병이 일어나 난을 일으켰을 때의 대응이다. 이미 거주하여 지역의 유지가 된 일본인은 그런 트러블을 다스리기 위해 사람을 쓰고, 일본정부와 협력했다. 나름 치안을 관리한 셈이다.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 사람들의 대응도 못지 않다. 의병이 일어나 난이 터지자, 사람들은 일본인을 찾아가 의병을 진압해주길 요구했다. 그 역시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일본에 저항하기 위해 사람들이 일어났다고 하면, 조선사람들이 호응하고 연대할 줄 알았는데, 그건 나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대의 명분은 배가 부를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분명 멸치 얘기로 시작했는데, 그 뒤에 사람들의 얘기가 있었다. 소설도 아니고, 만화도 아니지만 읽어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