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짓 - 연애의 모든 순간에 대하여
이정 지음 / 프리즘(스노우폭스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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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옷장 속에 넣어두기만 했던 옷들을 하나씩 꺼내어 정리했다.

이 집에 이사 오고 나서 내 손으로 처음 정리하는 것이니 넉넉잡아 5년 만에 하는 듯.
버리는 옷은 대부분 대학교 때 샀던 10년 묵은 옷이었고 버림의 큰 이유는 내가 변했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가로본능에 충실한 몸이 되어있다.
여하튼 버리려고 솎아낸 옷들을 보며 엄마는 살 뺄 생각은 하지 않고 버린다고 나무랐지만
이미 그 생각으로 10년을 묵혀둔 옷이었기에 이제는 버려야 한다고 대답했다.
맞지 않는 옷에 맞추려는 생각은 버리고 싶고, 조금이라도 끼이는 옷은 싫어하는 나는 이제 편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사랑 또한 그렇다.

 

연애 4년 차. 2014년 6월부터 시작된 우리는 4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많은 것을 공유했다.
시작할 즈음에는 내 것과 네 것의 경계가 있었지만

점차 내 것으로 인식되는 우리의 것으로 변모하면서 언제나 곁에 있는 사이가 되었다.
만난 지 4년이 넘었다고 하면 어떻게 그렇게 오래 만나고 있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글쎄,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봐서는 '오래'되었다고 느껴지는 느낌은 없다.
그래서 어떻게라는 질문의 답은 주지 못하지만 그렇게라는 질문의 답은 이제 줄 수 있겠다. 너의 사랑짓때문이다.

 

사랑; 짓(사랑짓)을 펼쳐서 읽다 보니 시작부터 입꼬리가 올라가며 웃음이 나왔다.

지금은 챙겨보지 않지만 작년에 알쓸신잡1을 매회 챙겨봤었다.
이른바 지식인들이라 불리는 출연자 중에서 정재승 교수님의 이야기는

항상 어느 대학교의 누구 교수, 무슨 연구에 따르면 이라는 말문으로 시작되었는데,
그런 연구가 있단 말이야?라며 의구심을 가지면서 연구결과에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런 연구를 실제로 눈앞의 책을 통해 읽어들이니 속고 있는 기분이 들면서도 웃음이 삐져나왔다.
연애, 사랑 그리고 그것을 하는 사람에 관련된 연구결과는 썸을 타는 것처럼 묘한 기분에 빠져들게 한다.

 

앞서 적은 것처럼 이 책은 해외 심리학 연구 자료를 뒷받침해 쓴 책이다.
이걸 연구한단 말이야?라고 느껴질 정도로 당연히 여겨질법한 연구결과는,

작가의 정보와 결합하여 연구결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있다.
그래서 만만치 않은 두께에 쉬어가는 그림 하나 없이 글자만 빼곡한 이 책은,
얼핏 책의 모습만 달리하여 ~개론이라고 붙여서 교재로 써도 무방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나는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chapter3. 사랑의 과학 : 현실과 판타지에 적혀있던 '우정 같은 사랑은 배신하지 않는다.'였다.
어릴 때부터 친구 같은 연인, 편안한 연인을 추구했던 나에게

그 내용은 든든한 버팀목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내 사랑짓에 응원받은 느낌.

 

사랑을 받기 위한 비법이 담긴 책이 아니다. 사랑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담긴 책이다.
연애를 시작하는 단계라면 예쁜 사랑을 할 수 있는 길을 알려줄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동안 우리가 주고받았던 사랑짓을 되새겨볼 수 있는 시간이 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힘을 줄 것이다.
지금의 연애, 사랑의 모든 순간에 대하여 마음 편하게 해줄 '사랑; 짓(사랑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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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왕이 온다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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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움은 어둠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TV에서 봤던 전설의 고향, 토요미스테리극장은 내가 잠들어야 했던 시간을 한참 지난밤에 했고,
이야기는 어둠이 깊게 깔린 밤을 배경으로 고조되었다.
눈을 가린듯한 어둠 속에서 다른 감각들이 더 도드라져 평소보다 예민해진 탓일까,

낮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에 무서움은 곧 어둠이었다.
그런데 '보기왕이 온다' 속의 보기왕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이 찾아왔고, 무서움은 어둠에 있지 않았다.

 

'보기왕이온다'는 제1장 방문자, 제2장 소유자, 제3장 제삼자로 진행되며

보기왕이라는 존재에 대해 각자의 시점과 생각, 그리고 사건을 적어놓았다.
제1장에서는 보기왕의 존재를 가장 빨리 알아차리고 벗어나고자 했던 다하라 히데키의 이야기가,
제2장에서는 보기왕의 존재를 벗어나고자 했던 남편의 모습을 지켜봤던 그의 아내인 다하라 가나의 이야기가,
그리고 제3장에서는 이들 부부에게 닥친 보기왕의 존재를 곁에서 지켜보고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한 오컬트 작가 노자키와 영매사 고토코 이야기가 적혀있다.

 

'보기왕이온다'는 무서움에 다가가는 공포가 아닌 집까지 친절히 다가오는 공포,
그리고 그것을 피하고자 하는 주인공들의 숨 막힌 순간들이 섬세하게 적혀 있어 나도 모르게 읽으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책 속에서 바람이 불면 어디선가 바람이 부는 것 같아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그것에 의한 상처가 묘사될 때는 그 부위를 괜스레 만져보기도 했다.
책 속의 공간이 가까워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보기왕의 공포 말고도 같이 공유했던 시간 안에서 서로 달랐던 생각과 시점을 읽을 때는

무섭기도 하고 반전 같기도 했기에
공포와 놀라움의 연속으로 책을 언제 어디서 펼치든 곧장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일본호러소설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보기왕이 온다'.
순전히 대상 받은 소설은 어떤가 싶어서 호기심에 읽었는데, 빠른 흡입력과 공포,

그리고 반전 같았던 이견에 푹 빠져읽었던 시간이었다.
12월에 '온다'라는 제목으로 영화개봉도 앞두고 있다는데, 꼭 챙겨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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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귤
김혜나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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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고독함에 갇혀버릴 때가 있다.

그 감정을 일으킨 상황보다는 그 상황으로 만들어진 감정 자체만을 끌어안고 베갯잇을 적시곤 한다.
감정의 고독함에 나약함을 절실히 느끼고서야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라며 생각은 하지만 개선이 아닌 회피에 목적을 둔다.
이것은 오로지 나의 이야기. 하지만 가장 주관적인 게 객관적일 때가 있다는 말이 있듯이

타인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김혜나 소설집 '청귤'은 다섯 편의 단편소설과 한 편의 중편소설, 총 여섯 개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서로 다른 이야기이지만 읽다 보면 한 사람의 이야기인 것 같은 착각에 지난 페이지를 다시 돌아보게 되고,
하나같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속의 감정에 동화되버리고 말았다.
작가의 글을 읽으면 눈이 닿는 모든 것을 적은 것 같은, 시야에 들어온 건 허투루 넘기지 않고 차근차근 하나씩 설명하는 것 같다.
마치 이 감정과 고통을 고스란히 마주치게 하고픈, 작가의 다정함이 묻어난 걸까.
섬세하고 자세하게 적은 글을 읽다 보면 나도 이 글의 주인공이 되어 이 감정을 만들어낸 상황을 마주하고 있었다.

 

씁쓸했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씁쓸한 감정이 책에서 흘러나와 책을 잡고 있는 손을 통해 마음까지 도착하는 것 같았다.
특히 이 책의 첫 글이었던 '로레나'에서 씁쓸함이 제일 컸는데,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뿐인데도 나는 그 속에서 회피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청귤이라는 제목에 새그럽고 활발한 이미지 떠올리며 책을 펼쳤지만
첫 이야기부터 나 스스로 완전하지 않고 아직 여물지 않은 상태로 중간에 머물러 있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이 청귤과도 같은 상태인 걸까.

 

감정의 고독함에 빠져 혼자 허우적대기보다 타인의 이야기를 읽으며 같은 상처를 공감하다 보니

차츰 내 상처를 한 줌씩 꺼내어 공유하는 기분이 들었다.
마주 볼 수 있을까, 너의 상처. 나의 상처. 씁쓸한 끝 맛이 매력적인 '청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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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추락한 이유
데니스 루헤인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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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이다 잠이 들고 꿈을 꾸게 된다.

어릴 때는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잊히는 꿈이 대부분이었고 현실과 이어지는 거라곤 이불에 실례를 할 때뿐이었다.
이불에 실례할 때는 꿈속은 항상 우리 집 화장실이었다는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이를 먹었나 싶은 생각이 들 무렵부터는 눈을 뜨고도 되새겨지는 꿈이 많아졌고

오래도록 남는 꿈은 꿈속에서 겪었던 마음의 변화가 현실까지 이어지는 경우이다.
최근에도 그런 꿈을 꿨다. 눈을 뜨면 현실과 다른 허상, 거짓말인 줄은 알지만 그 마음은 쉽게 잊히지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였을까. 우리가 추락한 이유 속에 나오는 레이철이

잊히지 않고 지워지지 않는 꿈같은 현실에서 헤매는 모습에 공감을 하게 된 건.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 5월의 어느 화요일, 레이철은 남편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

차례를 넘기고 나온 프롤로그에서의 첫 문장은 주인공의 결말 같았다.
강렬했던 프롤로그를 지나 제1부 거울 속의 레이철, 제2부 브라이언, 제3부 세상 속의 레이철로 이어지면서

점차 레이철의 어둠으로 빠져들었다.
레이철은 아버지의 존재와 완전한 이름을 모른 채 자랐고
아버지에 대해 유일하게 알고 있던 어머니는 끝내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 법한 정보를 주지 않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아버지를 찾고자 사설 조사원인 브라이언을 찾아가지만 정보 부족으로 아버지를 찾지 못한다.

그게 브라이언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 이후 기자 생활을 하던 레이철은 진도 7.0의 지진이 난 아이티로 취재를 나갔다가

공황발작을 일으키게 되고 그 모습은 고스란히 방송을 타게 된다.
그 일로 이혼까지 하고 점차 스스로를 가둔 레이철 앞에 브라이언이 나타나 손을 내민다.
추락, 상처, 버림이 없을 것만 같아 그의 손을 잡았던 레이철은 왜 브라이언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게 된 것일까?

 

이 책의 제목을 질문으로 여기고 답을 찾고자 글을 읽는다면 재미가 없다고 느낄법한 따분함 끝에 어려움이 밀려온다.
책을 읽는 속도가 느린 탓이었을까, 평소보다 잠이 일찍 찾아왔던 것일까.

이유에 대한 답을 찾고자 읽었던 제1부에서 이틀 밤을 쉬어갔다.
많은 시간을 주었음에도 내가 얻은 건, 소제목이었던 거울 속의 레이철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제1부를 읽고는 책과 멀어지는 기분, 내가 추락하고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러다가 제2부부터 모래시계를 뒤집은 것처럼 책에서 멀어지고 있던 추락에서 다시 책을 목표로 추락을 했다.
속도에 무게를 더하며 추락하는 중에 깨달은 건,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핵심이라는 띠표지가 허튼소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이야기, 끝이라고 여겼던 프롤로그의 이야기가 끝이 아님에

 남겨진 페이지에는 몇 개의 반전이 남아있을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행복한 글에 공감을 하는 건 순간이다. 하지만 그와 반대되는 글에는 꽤 오래 공감을 하고 마음에 두게 된다.
공감과 반전, 사랑과 범죄에 마음을 두게 되는 꿈의 연장선 같은 '우리가 추락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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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
김지영 지음 / 푸른향기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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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뜨거웠다. 이대로 불타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척이나 뜨거웠기에 지금의 가을 날씨는 낯설기만 하다.
아침, 점심, 저녁의 기온차가 선명한 이 날씨는 옷 입는 것부터 고민하게 만들고 코를 간질거리며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생각이 많아지고 그 생각에 나약하게 만드는 건 모두 가을 탓이다.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 탓에 나는 지금 이곳을 벗어나 여행을 해야겠다고, 떠나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겁쟁이. 생각만 했던 것을 모두 실천했더라면 지금보다는 확실히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나를 붙잡고 있는 건 확실히 '나'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도통 읽을 생각도 없었던 에세이, 나를 응원할 수 있는 글을 찾아보다가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작가는 일상이라고 여겼던 생활에서 본인을 잃은 채 나락으로 떨어진듯한 기분을 느끼며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내고 여행을 준비한다.
"나는, 행복해지기로 했다." 이 한마디를 새기며.

 

좋았다. 작가가 내뱉는 감정과 여행 중에 일어난 이야기, 그리고 여행지에서 되돌아보는 과거의 모습이

내 감정인 양 내가 겪은 일인 양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떠나지 않고 여기에 머물고 있지만 내가 만약 떠난다면 작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가을밤, 나는 이 책에서 느꼈던 감정을 온전히 내 것인 양 끌어안았나 보다.
하지만 여행의 경로를 알 수 없고 이야기의 흐름이 순차적이지 않아 여행의 시작부터 멀어지고 있는,
그리고 끝과 가까워지고 있는 작가의 심정을 온전히 느낄 수 없어 아쉬웠다.
여행을 전문적으로 다룬 책이 아니기에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고사하더라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행지의 흐름에 따라 적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라며 말하는 작가에게 이 책이 예쁘네요, 말하고 싶은 '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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