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개심사를 간 일은 정말 행운이었다.
‘언니 눈보러 오세요. 눈이 많이 왔어요.‘
로 촉발된 주섬주섬 서산여행.
눈이라는 단어도 마음을 움직였지만
‘언니 여기와서 누워계셔요‘
라는 후배의 센스있는 멘트가 몸을 움직이게 했다.

‘언니 집에 들어 가기 전에 가보고 싶은 데 없어요?‘
라고 후배가 물었을 때 우연히 눈에 들어 온 개심사 라는 이정표.
개심사 여기서 멀어?
해놓고 멍 때리며 실려 간 곳은 늦봄에 청벚을 보러 다니던 그 개심사였다.
걸을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건만 가는 길 호수에 모여 있던
청둥오리에 반하고 개심사 앞에 도착했을 때 천천히 가만히 내려앉던
굵지만 가벼운 눈발에 홀려서 좀 오래 걷게 되었다.
눈송이는 천천히 많이 날리는데 바람은 불지 않아서 오래 눈을 맞으며
걷는데 춥지도 않고 젖지도 않아서 넋놓고 겨울을 즐겼다.

청벚과 겹벚으로 유명한 개심사는 꽃이 피는 시기에 오면 꽃의 화려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당연히 인산인해 사람이 미어터진다. 사람들에 밀리어 입을 벌리고 꽃 바라기를 하느라 몇 번이나 왔지만 개심사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였다. 어제의 개심사는 일단 사람의 흔적이 없었고 눈길을 뺐는 화려함이 없었던지라 오롯이 공간과 눈발이 주는 적요 속에 서있을 수 있었다.

허수경 시인의 어느 시구절, ‘하염없이 염없이‘가 절로 떠오르던 그렇게 바라보던 설경 속의 산사. 아무리 꽃바라기 였대도 한 번은 눈길을 주었을 법한 곡선의 통통한 나무기둥들이 새롭게 처음 본 듯이 그 자리에 있었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가장 쉽게 허물어지던 순간은 낡은 것이 주는 아름다움 앞에서 였다. 허물어지고 또 허물어지고 경배하고 또 경배하면서 처마 아래서 말라가는 시래기 앞에서 무릎 꿇는 심정이 되었다. 그 순정한 아름다움 앞에서 더 도드라지던 오만하고 경박하고 이기적인 내 모습.

일부러 더 멀리 산길을 돌아 내려오면서 평생 볼 아름다움을 다 봐버렸구나라는 생각이 들만큼 마음이 만만하고 그득해졌다.
얼음장 위에 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본 것, 때로 헤엄치고 때로 날아오르던 새들이 만들어내던 물무늬, 눈발이 아름답게 내려와서 쌓이던 것, 세월을 가늠할 수 없게 낡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빛바랜 산사의 고즈넉함, 무심히 지나가던 고양이의 뒷 모습, 물기 없는 눈발의 포슬함, 걸을 때의 뽀득뽀득한 느낌 같은 것들 때문에 살 것 같아진
날이었다라고 느끼면서, 아 그동안은 정말 죽을 것 같았었구나 라고 생각한
살아진 어느 하루 겨울 개심사. 2018.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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