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보세요, 공작. 제노바도 루카도 보나파르트 일가의 영지, 영지나 다름없이 되어버렸잖아요. 미리 말씀드려두지만, 그래도 전쟁 같은 건 없다고 하시거나 반그리스도의(정말 저는 그자가 반그리스도라고 믿고 있어요) 추악하고 무서운 소행을 변호라도 하실 생각이라면, 저는 당장 당신과 절교하겠어요. 당신은 더이상 제 친구도, 당신이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제 충실한 노예도 아녜요. 어쨌든 잘 오셨습니다. 잘 오셨어요. 제가 당신을 놀라게 해드린 것 같군요. 자, 앉아서 말씀을 들려주세요."
1805년 7월 마리야 페오드로브나 황태후를 가까이 모시면서 이름을 떨치고 있던 女官 안나 파블로브나 셰레르는 자기 집 야회에 맨 먼저 도착한 위세 있는 고관 바실리 공작을 맞아들이면서 말했다.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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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를 읽기 시작했다. 4권이 완간된 기념으로 뭔가라도 하고 싶었고 그 뭔가는 일단 책을 손에 드는 것, 하루에 한 시간 백여쪽씪 읽어보자고 맘 먹었는데, 결론을 말하자면 사흘 동안 백쪽을 못 읽었다. 하루 한 시간씩 투자를 못했고, 다른 책들과 달리 한 시간에 백여쪽 읽기가 안되는 책이었다. 시작부분은 이름과 상황이, 대화부분을 활자를 달리해서 뭔가 가독성이 떨어졌다. 그래도 첫부분 진도가 안나간다는 팁을 미리 들었기에 참고 책장을 넘길 수는 있었다. 40여쪽 지나가니 적응이 되었고, 하루에 시간을 정해놓고 읽기는 부적합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루 지나서 펼쳐보니 금방 또 낯설어졌기 때문이다. 주말에 죽기살기로? 읽어서 두어권씩 읽어 버리는 것이 내겐 맞는 방법인 것 같다.
1권은 565쪽이고 3장으로 되어있다. 각주가 자세히 달려 있는 편인데, 처음에 아예 각주를 좀 따로 읽고 책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하다. 첫 부분과 각주 1)을 읽고 들머리를 장악해버리면 읽기가 좀 쉬워진다. 시간과 체력을 핑계로 송년모임은 거의 고사했는데, 연말연시에 읽기로는, 왠지 '전쟁과 평화'가 넘 어울린다. 겨울밤에 읽는 소설로 모양새가 그만이다. 기쁘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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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1~5장에서는 1800년대 초 페테르부르크 상류사회 살롱의 생활상이 재현되고 있다. 안나 파블로브나 야회에 온 손님들의 대화에는 조정의 정통주의자적 페테르부르트 사회"'유행''시사 문제'가 반영되어 있고, 특히 이시기 유럽의 정치 투쟁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의 반향을 느낄 수 있다. 이탈리아와 이집트 원정에서 군인으로서 명예를 획득한 나폴레옹은 1804년 황제의 칭호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면서 노골적으로 영토 침탈을 감행했다. 그는 1797년 첫 이탈리아 원정 때 제노바를 점령해 리구리아 공화국에 분여했고, 1805년 점령지 공화국을 이탈리아 왕국으로 선포한 뒤 스스로 이탈리아 왕이 되었다. 1799년에 침탈한 루카는 1805년 그의 여동생인 엘리자와 그의 남편인 바키오치에게 분여했다.(5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