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학교 10주강의를 들은지 만 3년이 되어간다. 여러모로 의미있는 시간이었고 무리해서 힘들게 들었는데 이후로 오히려 여성주의를 멀리하게 된 병폐가 있었다. 강의를 들었던 강사님도 수강생들도 너무나 똑똑하여 나와는 다른 사람,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냥 똑똑하기만 한 게 아니라 그렇게 살기까지 하는 능력있는 사람들과 수많은 관련 책들. 일부러까지는 아니겠지만 베스트셀러를 읽기 싫은 기분으로 여성주의관련 책들도 읽기 싫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싫고 좋고의 느낌없이 되는대로 주어지면 어떤 책이든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날이 되었다.

82년생 김지영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데 우리집 둘째까지 e-book으로 사봤다니 가히 붐이라고 할만하다. 출간 10개월만에 27만부를 찍었다고 한다. 82년생 김지영은 독서모임의 막내가 82년생이라 구체적인 감을 잡으며 읽을 수 있었다.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를 읽을 때처럼 자료기사를 모아놓은 이야기를 읽는 기분으로 읽었는데, 두 책 다 리얼한 현실을 그리는데 가볍게 잘 읽힌다, 이런 주제를 이슈화한 공로와 그래도 소설을 읽게 한 인정 받을 만 하겠지만 소설적인 느낌이 없는 것은 나의 취향은 아니다.

어제 머리맡에 있는 책들을 좀 읽고 책꽂이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잡은 책이 2017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이다. 여기에 있는 작가들이 모두 8명인데  임현작가를 제외하고 대체로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 중반 태생의 여성이니 김지영들의 작품집이라 할 만하다. 김금희의 문상을 제외하고 주인공이 여성이면서 여성문제가 주제이니 더 그렇다.

읽으면서 계속 모르겠다, 이런 속말이 자꾸 나왔다.  내가 왜이렇게 애정을 가지고 한국문학을 읽으려고 노력하는지. 그간 철저하게 외면해왔다는 죄의식 때문인가.80년대 이상문학상, 문학사상에 실리던 단편들을 탐독하던 이후로 문학과 음악의 공백기가 있었는데 90년대 이후, 정확하게 육아기다. 아이가 태어나고 내가 읽은 책들은 육아서와 아이의 성장에 맞춘 그림책, 동화책, 청소년소설이 다였다. 어린이문학이론서들까지 탐독했다. 열외로 읽은 책이 있다면 식물과 곤충, 미술관련책들인데 그것도 아이들을 숲체험 활동, 미술관 수업에 데리고 다니려고 그랬다. 여성주의 학교 듣고 나니 애들 때문이 아니라 내 욕구가 투사된 걸 알게 되었지만.

그런 긴 독서단절기를 지나 다시 한국문학을 읽으려고 하니 읽히지가 않았다. 더구나 취향이 에밀졸라, 필립로스, 밀란 쿤데라이니 체질적으로 단편들이 맞지 않는다.특히나 뭔가 특유의 한국단편들이 주는 잔잔함 같은 게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3년간은 한국문학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해서 알라딘에서 회자되는 작품집들은 대체로 읽은 편이다. 그러다보니 몇몇 작가들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고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도 그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려 손에 들었다가 다 읽게 되었다.

무슨 얘긴지 이해가 안되어 두 번 읽은 작품도 있고 작가후기나 뒤에 실린 짧은 평론글들을 읽어가며 집중하니 그럭저럭 읽어낼 수 있었다. 두 번 읽은 작품이 호수-다른사람인데 평론까지 읽고 나서야 좀 이해가 되었다. 한겨레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 다른사람이어서 같은 작품인가 찾아봤더니 아니다. 다른사람은 장편소설이다. 줄거리를 봤더니 아마 단편 호수-다른사람이 모티브가 된 듯하다. 7편의 작품중에 가장 불편함을 주는 소설이었다. 단편이 아니라 적어도 중편은 되어야 겠다고 느낀 건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해줬어야 하는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분량에 비해서너너무 여러가지의 이야기가 담겼다. 불편하고 독특하다는 점에서 강화길이란 이름이 기억될 것 같다.

 

그러면서 민영을 바라봤다. 이전에 민영은 그와 술을 마시는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었다. 그가 술을 즐기지 않아서 그런다고 했다. 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낼 재밌는 일은 얼마든지 많다며 좋다고 했다. 그의 반응을 보며 나는 민영이 그와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가 내게 말한 것과는 반대라는 걸 눈치챘다. 강화길 호수 -다른사람 177

 

임현 최은미 백수린 천희란은 처음 읽어 보는 작가들이었는데, 다들 그만그만 했다. 특출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느낌. 기존의 작품을 읽은 작가는 최은영, 김금희였는데, 최은영은그 여름에서도 여성 심리를 잘 포착하여 과하지 않게 서술했다. 쇼코의 미소 단편들에 비해 조금 더 강한 표현들이 보인다.

 

손가락 하나 잡지 않고도, 조금도 스치지 않고도 수이 옆에 다가서면 몸이 반응했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수이의 손을 잡았을 때,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창고 구석에서 수이를 처음 안으며너 이경은 자신이 뼈와 살과 피부를 가진 존재라는 것에 감사했고, 언젠가 죽을 때가 되면 기억에 남는 건 이런 일들밖에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최은영 <그여름>220

 

김금희는 이 중 가장 올드한 느낌으로 읽었는데, 예전에 읽던 소설들을 읽는 느낌 그래서 편하게 잘 읽혔다. 찌질한 캐릭터를 선명하게 그렸다. 읽고 나니 티비문학관 한 편을 본 듯하다. 김금희의 소설은 장면이 이미지화가 되어 남아 있다.

 

송은 그 말이 너무 유치하고 어이가 없어서 일격을 당한 것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건 송이 대구에 온 뒤로 희극배우에게서 들은 어떤 말보다도 웃긴 말이었다. 희극배우는 더이상 아무것도 먹지 않고 송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서는 무언가를 견디면서 들었다. 그렇게 견디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송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고 희극배우가 정말 웃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김금희 <문상>111

 

백수린의 고요한 시간은 책 뒷장에 남진우 평론가가 남겨 놓은  '삶을 소리없이 마모시키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우수 어린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에 공감했다. 최은미의 눈으로 만든 사람은 어린 소녀 시절 불편한 진실을 간직하며 살아야 했던 여성이 성인이 되어 다시 맞닥뜨린 상처를 일상속에서 풀어내고 있는 소설이다. 상처를 잘 형상화 해냈다고 생각한다. 쉽게 잊혀지지 않는 소설이 될 것 같다. 천희란의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무가는 성소수자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굉장히 정제된 감정과 단단한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김금희의 한낮의 연애는 좀 비껴나있지만, 쇼코의 미소나 2017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요즘 화제가 되는 책들에서 소설의 주제들이 변화함을 느낀다. 일상의 성차별이나 성폭력문제들,성소수자들의 이야기도 자주 보인다. 문학이 역할 중의 하나가 현실을 반영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면 '여성혐오와 관련된 다양한 사례를 소설 속으로 가져와 그간 덜 시급한 것으로 취급되어 온 여서운제를 전면으로 들오 나온' 아내들의 학교나,'데이트 폭력, 여혐, 성폭력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있다는 다른 사람이 그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읽어 볼 마음이 생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