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에 계획했던 아이슬란드 여행을 포기하고나니 긴긴 연휴가 조금은 지루하겠다 싶던 차에 친구의 도쿄여행에 끼어들게 되었다. 같이 가려던 일행 한 명이 못 가게 되어서 예약한 숙소를 변경해야할 처지라길래 번거롭게 그럴거 뭐 있냐며 얼른 빈자리를 꿰어찼다. 예전엔 지도 검색, 비행편 검색이 취미이다시피 했는데 이제 만사가 구찮아서 나만 따로 끊어야하는 뱅기표도 딸래미한테 미루고 도쿄에 가서도 친구만 따라 다니겠노라 공표해놓았다.

노구를 이끌고 가는 여행길이라 다들 복잡한 도심여행은 잠깐으로 만족한다하여 도쿄는 숙박정도 하고 주로 도쿄 인근여행이 되지 싶은데 바닷마을다이어리의 배경인 가마쿠라나 후지산 일일투어 또는 인근 온천지역 방문 중 택1을 할 것 같다.
가마쿠라는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아름답게 그려져서 꼭 한 번 가보고 싶던 곳이다. 만화에서 나오는 수국꽃길이나 영화의 벚꽃길을 보고, 잔멸치 덮밥을 먹으려면 때를 잘 맞춰 가야 할 것 같은데 올 가을은 그 때가 아닌 것 같긴 하다.

후지산 일일 투어는 숙소 앞에서 버스를 타면 하루동안 따라만 다니면 되기에 노구들의 선택 가능성이 가장 높다. 오늘 북수다 짬짬이 얘기를 나누었는데 막상 10월이 되면 노천욕의 유혹도 뿌리치지 못할 것 같으니 가보고 가장 연장자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일본은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를 가본 게 다여서 도쿄일정이 기대가 된다. 그래서 본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이야기를 보았다. 마음산책에서 나온 꽁치를 먹고 싶습니다가 계기가 되었는데 1954년에 나온 흑백영화를 2시간16분 동안 졸지 않고 보기는 어려웠기에 졸았던 부분을 다시보기하느라 2시간 40분쯤 보고 나니 된통 공부를 한 느낌이었다.

동경이야기는 흑백영화이고 의상과 배경이 옛날인 점만 빼면 시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좋은 문학작품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동경이야기도 수작이라고 할 만 했다. 그렇게 평이한 이야기가 지루하다거나 재미없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졸음은 단지 신체적인 피로감의 결과였을 뿐.

꽁치를 먹고 싶습니다는 제목과 표지만으로도 읽고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데 마음산책 책들이 대체로 그렇다.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함과 동시에 출시 된 탓에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자꾸 제목에 다른 생선이름들을 대응해보게 되는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서대를 먹고 싶습니다.
(서대는 서남해안에서 나는 생선으로 기름기가 없는 담백한 맛이다. 보통 반건조 생선을 굽거나 찜으로 먹는다.나의 유년의 생선이다.)

멸치가 먹고 싶습니다.
(남해안의 향토음식인 멸치쌈밥은 굵은 멸치를 자작하게 졸여서 상추나 다시마쌈에 얹어 먹는다.
박준시인의 에세이 운다고...에도 멸치쌈밥 이야기가 나오는데 천남성 열매 따먹은 에피소드도 그렇고 수능전날 에피소드도 그렇고 박준시인과 얘기를 나눈다면 통하는게 많을 것 같다. 최소 40대 감성으로 읽히는데 넘 젊어서 깜놀.)

전어가 먹고 싶습니다.
(8월말즈음에 그리 크지 않은 전어를 굵은 소금을 뿌려 숯불에 굽는다. 그리고 머리부터 꼬리까지 꼭꼭 씹어 먹으면 그야말로 ‘전어머리에 깨가 서말‘이라는 말의 참뜻을 마음 깊이 깨달을 수 있다. 전어는 이런 설명이 필요없는.)

호케가 먹고 싶습니다.
(호케는 이면수다. 오타루시장에서 반건조 호케를 사서 포장마차에서 구워 달래서 먹었는데 그 크기와 맛이 실로 맛있었다. 사케 안주로 얼마나 훌륭했던지 이십년만에 필름이 끊겼었다. 눈길에 엎어지고 미끌어지며 일행들을 숙소라고 끌고 들어간 곳이 가라오케였다는 전설.)

암튼 서대와 멸치와 전어와 호케 그 어느 것도 꽁치가 먹고싶습니다 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서점 매대에 놓인 서대가 먹고 싶습니다라는 책에 누가 손이 가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는 탁월한 작명센스(원제인가?).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가 넘 강렬해서 바로 이전 책인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가 살짝 묻히는 감이 없지 않은데 저자가 제안한 제목이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였다니 마음산책의 탁월한 작명센스를 엿볼 수 있는 대목.

이기호작가의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도 예쁜 책이네하며 재밌게 읽었었다. 읽을 때의 가벼움과 달리 뒤끝이 묵직하고 여운이 길게 남아 누구에게라도 선뜻 선물하기 좋았다. 이 책 또한 제목 표지 디자인 그립감 등이 내용을 보지 않고도 쉽게 구매를 하게 하는 외적인 요소가 충만한 책이었는데 물론 이미지에 끌려 책을 샀더라도 내용이 이에 미치지 못하면 같은 작가나 같은 출판사의 책으로 재구매가 이뤄지진 않을 것이다.

처음엔 엽편소설이라는 장르가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의 인기요인인가 했는데 최근에 나온 성석제작가의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이 이슈화 되지 못하는 걸 보니 이기호작가의 책들이 마음산책에서 나왔다는 것이 인기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은 읽어보지 않아도 분명 재밌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성작가님의 필력으로 보나 스타일면에서 엽편소설은 정말 딱 성석제의 장르다.라고 할만하고 그 재기발랄함을 엽편에 녹여냈을 땐 아무리 못해도 어느 수준 이상일 것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져 간 듯한 느낌은 단지 책의 운명일까? 싶은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사랑하는, 너무나 사랑하는도 읽어봐야 겠다. 그의 글들은 대개는 유쾌 상쾌 발랄했으니 말이다.

(잠들기 전에 누워서 잠깐 쓴다는게 넘 길어졌다.
폰을 들고 있는 왼손목과 팔꿈치가 아프다. 북플앱을 지워야하나...잠시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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