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면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을 보고 싶어했나 보다. 어느 날 밤, 오브 아저씨가 부엌에 앉아 메이 아줌마의 길고 노란 머리를 땋아 주는 광경을 처음 보았을 때, 숲 속에 가서 행복에 겨워 언제까지나 울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으니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도 그처럼 사랑 받았을 것이다.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날 밤 오브 아저씨와 메이 아줌마 사이에 흐르던 것을 보면서 어떻게 그게 사랑이라는 걸 알았을까? 우리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에 윤기나는 내 머리카락을 빗겨 주고, 존슨즈 베이비 로션을 내 팔에 골고루 발라 주고, 나를 포근히 감싼 채 밤새도록 안고 또 안아 주었던 게 틀림없다. 엄마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어떤 엄마들보다도 오랫동안 나를 안아 주었던 게 틀림없다. 그리고 그 때까지 받은 사랑 덕분에 나는 다시 그러한 사랑을 느낄 때 바로 사랑인 줄 알 수 있었던 것이다.-10쪽
엄마가 돌아가신 뒤 아무도 나를 맡으려 하지 않았을 때도 이모나 삼촌들 손에 끌려 이집 저집 전전할 때도 나는 그 사랑을 가슴 속 깊이 간직했으며, 아무도 나를 친딸처럼 받아들이지 않아도 투정 부리거나 남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가엾은 우리 엄마는 나를 받아 줄 누군가가 나타날 때까지 내가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사랑을 남겨 두고 간 것이다. -11쪽
나는 메이 아줌마처럼 좋은 사람은 보지 못했다. 오브 아저씨 보다도 훨씬 좋았다. 아줌마는 오직 사랑밖에 없는 커다란 통 같았다. 오즈 아저씨와 내가 몽상에 빠져 헤매고 다닐 때도, 아줌마는 늘 이 트레일러에서 우리가 돌아 왔을 때 아늑하게 쉴 수 있도록 집 안을 정돈해 두었다. 아줌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했고, 누가 어떻게 행동하든 간섭하지 않았다. 아줌마는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를 다 믿었고, 그 믿음은 결코 아줌마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아줌마를 배신하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사람들은 아줌마가 자신들의 가장 좋은 면만 본다는 점을 알고, 아줌마에게 그런 면만 보여 줌으로써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했던 모양이다.-26쪽
지금 메이 아줌마가 여기 있다면, 나와 클리터스에게 말했을 것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우리에겟 떨어져 나가려는 것들은 꼭 붙잡으라고,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가도록 태어났으니 서로를 꼭 붙들라고. 우리는 모두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게 마련이니까. 아줌마는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 곳이 이 세상만이 아니라고 일러 주곤 했다. 이 세상의 삶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을 모두 얻지 못한다고 실망하지 말라고. 또 다른 생이 우리를 기다린다고.-37쪽
나는 두렵다.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내게 중요한 것들을 읽었기에, 피트넘에 군에 가서 더 이상 뭔가를 잃고 싶지는 않다.-81쪽
그 사진을 보니까 클리터스와 나의 차이점이 생각났다. 모든 것이 잘 되리라고 믿는 클리터스. 모든 것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나.
;; 사진 속의 두 사람은 비록 늙고 허약했지만, 클리터스가 이 세상에 첫 울음을 터뜨린 순간부터 그 아이를 꼭 안고 살아왔다. 그래서 클리터스는 그분들이 어제까지나 자신을 보살펴 주리란 것을 의심치 않았다. ' ' 어쩌면 그 애는 조금 다른 식으로 현명한 아이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물에 짜졌다 살아난 일이 그 애한테는 가장 근사한 일이었는지 모른다.-95쪽
나 자신으 침묵은 평화에서 비롯되었다. 차 안에서는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내 곁에는 오브 아저씨가 든든하게 앉아 있었다. 뒷자리에서는 클리터스가 흐뭇해하고 있었다. 깜짝 놀랄 일도 없이. 마음이 상할 일도 없이 우리는 앞으로 세 시간을 꼬박 그렇게 갈 것이다.-99쪽
한때는 왜 하느님이 너를 이제야 주셨을까 의아해하기도 했지. 왜 이렇게 다 늙어서야 너를 만났을까? 나는 집 안이 좁을 만큼 뚱뚱한데다 당뇨병으로 고생하고 있고, 아저씨는 해골처럼 비쩍 마르고 관절염까지 앓고 있으니 말이야. ' 하느님은 우리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길 기다리신 거야. 아저씨와 내가 젊고 튼튼했으면, 넌 아마도 네가 우리한테 얼마나 필요한 아이인지 깨닫지 못했을 테지. 넌 우리가 너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가 늙어서 너한테 많이 의지하고, 그런 우리를 보면서 너도 마음 편하게 우리한테 의지할 수 있게 해주신 거야. 우리는 모두 가족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었어.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꼭 붙잡았고, 하나가 되었지. 그렇게 단순한 거였단다.-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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