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귀 문원 세계 청소년 화제작 3
쎄르쥬 뻬레즈 지음, 박은영 옮김, 문병성 그림 / 도서출판 문원 / 2000년 7월
평점 :
품절


"자 레이몽 라구스뛰르가 한 번 대답해 봐. 맘모스 백화점에는 주차장이 세 군데 있단 말이야. 첫 번째에는 열두 줄이 있는데 각 줄마다 열네 자리가 있고, 두 번째에는 열여덟 자리씩 여섯 줄, 그리고 세 번째에는 열세 자리씩 아홉줄이 있어. 여기까지는 확실히 알아들었지? 어려울 게 없잖아?"
어젯밤 잠을 설친 탓인지 내 머릿속은 온통 안개 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확실히 알아듣는다는 것 자체가 도대체 불가능한 마당에서 아침부터 맘모스 백화점에 있는 주차장을 들먹이다니, 정말 최악의 15분이었다. -7쪽

그 순간 내가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면, 아빠도 엄마도 내 여동생 죠슬린도 다 함께 팔아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슨 짓인들 못할까. 홍수처럼 밀려오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내 신발 안으로 질질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고, 불덩이가, 커다란 불덩이가 내 발가락을 확확 달구는 것 같았으며, 내 발목을 마구 할퀴는 것 같았다.-18쪽

어찌나 세게 잡아당기는지, 내 귀, 내 귓속에는 당나귀 한 마리가 히힝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낑낑댔다. 낑낑대고 히힝거리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아픈 상황을 피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빙빙 돌았다. 수학 문제를 풀기에는 아직도 부족한 모양이다. 레이몽, 레이몽, 모든 게 돌고 있어. 선생님. 아파요. 제 귀를 좀 놓아 주세요. 그만 하세요. 너무 아파요. 그만 하세요. 아파요...-19쪽

매일 난 그런 생각을 했다. 하루에도 열 번씩 나는 언제나 머리를 굴려 '어떻게 하면 선생님 발길에 걷어차이는 것과 당나귀 귀가 되도록 귀가 당겨지는 것을 피할까'하고 궁리했다. 늘 눈치를 살펴야 했고, 되도록 눈에 띄지 않으려고 행동했고,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피해갈 것인가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선생님한테 걸렸고, 단 한 번도 피해 간 적이 없었다. 매를 맞고 매를 맞을까 봐 두려워하며 살아간다는 것.그 것이 바보짓이든 아니든 간에 해결책은 언제나 딱 한 가지 밖에 없었다. 아파 버리는 것.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었다. 아파서 누워 있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37쪽

그것은 내 인생이 회초리와 발길질을 당하고, 귀를 잡히면서 배워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레이몽 녀석은 단단히 혼을 내줘야 돼."하고 모두 짜기라도 한 것 같았다.-39쪽

눈물이 범벅이 되어서 목으로 넘어 왔고, 나는 더 이상 비명도 지를 수가 없었다. 한꺼번에 너무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아빠는 내 몸이 미처 땅에 닿기도 전에 때리고 또 때렸다. 모든 게 너무 빨리 일어난 일이라, 내 몸은 가냘픈 토끼 한 마리가 왔다 갔다하는 것처럼 흔들거렸다.-103쪽

난 이런 식으로 계속 두려움을 갖고 살 수는 없다고, 더 이상은 그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매 순간순간마다, 행여나 매를 맞을까 벌벌 떨며 살 수는 없다고 말이다. 나의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두려울 것도 없었다. 도대체 이 집안에 남아 있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108쪽

나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 두려웠다. 내가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 아빠가 혹시 마음이 변할까 무서웠다. 나는 될 수 있으면 침착하게, 냉정하게 곧은 자세로 서 있으려고 했다.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으는 사나이처럼 처신하려고 노력하면서 말이다. -15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