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그리고 앉아
마른 세수를 하는 사람아
지난 계절 조그맣게 울던
풀벌레들은 어디로 갔는가
바다는 다시 저물어
저녁에는
이름을 부른다
저녁의 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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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멀미를 기억한다
지상의 소리들 먼 곳으로 가고
나무들 제 속의 어둠을 마당에 흘릴 때
불린 듯 마루에 나와 앉아 울던
물금이 처음 생긴 저녁
물이 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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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운 땅 닿지 말고 딛고 가라고
절뚝절뚝 철쭉이 피네 오르네
더 놀고 가렴
다물지 못한 입에 이팝꽃 피네
천석 만석
저녁을 짓네
이 멀고 억울한 향기
나는 알지
네 몸 냄새
캄캄한 향기
제망매_흰 꽃들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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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처럼 적막하게
눈 내리는 저녁
늙어가는 사내의
꺼진 뺨을
천천히
쓸어보면
살얼음처럼 살얼음처럼
누가 아프고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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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 잃은 바람들
한 시절 정박한다
그러나 수면은 옹이를 만들지 않는다
만져지지 않는 것들
어금니에 실려
썩은 뿌리 시큰하다
개망초들 천치처럼 웃는다
깨진 소주병처럼 달 빛나고
잔별들 소름 돋을 때
키 큰 미루나무들
머리 풀고
검은 방죽을 건너온다
하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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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멀고 억울한 향기
나는 알지
네 몸 냄새
캄캄한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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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향기 캄캄한 향기 캄캄한 향기...<나는 잠깐 설웁다>를 읽다가 잠이 들고, 아침에 깨어 다시 보면서 아 살만하군. 뿌듯하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시집이라는 두께에 만족한만큼 얇고 질기게 고통스러웠다.
(오늘 잠깐만 서러울게요
쉽게 서럽고 잠깐만 슬픈 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