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뜨물에 두부를 으깨어 넣고 간을 하지 않고 끓여 후루룩 떠먹었다. 짜고 매운걸 입에 넣기 싫었는데 습관적으로 김치를 먹고 후회, 입에 남은 간기를 제거하려고 커피를 내리고 고구마케익도 한 조각. 그러느라 아침 먹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써버렸다. 휴일에 세 끼를 꼭 챙겨먹느라 시간을 많이 쓸 때만큼 허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매번 같은 일을 반복한다.
아침을 먹으며 남편이 말했다.
여보 내가 글쓰기 강좌를 들으려고 하는 이유는
내 생각을 조리있게 표현하고 싶어서였어.
근데 은유 작가가 나를 한 방 먹였어
글쓰기는 생각을 제대로 표현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글을 씀으로써 생각을 만들어 가는 것이래
초짜는 초고에 매달리고 타짜는 퇴고에 매달린다
글을 쓰다보면 삶에 연동된다
잘은 모르겠지만, 포스가 깊어. 이 사람.
은유작가의 글쓰기 강좌를 열심히 검색하다 실패한 남편이 드디어 토요일에 하는 독서클럽을 찾았다고 한다. 서울 시내 도서관을 다 뒤졌더니 3군데 있었다며 기존커리, 연령대, 위치등을 고려해서 비교 분석한 표를 보여줬다. 3곳의 다섯 팀이었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곳들이어서 아마 두어 군데를 갈 것 같았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예상했던 제안을 했다.
같이 가자!
여,여보...그, 그런 소모임에 부부가 차, 참석하는 거 별로지 않아?
부부 아닌척 하면 되지 뭐, 그 사람들이 신입회원 호구조사 하겠어?
난 내 모임 책읽기만도 버거운데 여기서 더 추가할 순 없어. 토욜 모임은 홀로 서기하는거야. 응?
어제 책장을 딱 한 칸만 정리하면서 언니집에서 훔쳐 온 조지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와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를 나란히 두었다. 소설작법이나 글쓰기의 비법을 기대하게 하는 제목이어서 읽고 나서 왜 제목을 이렇게 붙였나 잠시 멍 했던 책들.
제목은 제목일 뿐 그냥 에세이집이다. 정리한 기념으로 잠시 두 책을 들춰보는데 우연인듯 첫 이야기가 ‘거지가 아닌 거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인사이드 르윈>이 보고 싶어졌다.
늦은 오후였다. 우리들 마흔아홉명은(마흔여덟은 남자고 하나는 여자였다) 스파이크(부랑자 임시숙소)가 열릴 때까지 대기소인 풀밭에 누워 기다렸다. 너무 피곤해서 말들이 별로 없었다. 지칠 대로 지쳐 뻗어버린 우리는 지저분한 얼굴에 사제로 만든 담배만 삐죽 내물고 있을 뿐이었다. 머리 위로는 꽃 흐드러진 밤나무 가지가 드리워져 있었고, 그 위로는 맑은 하늘에 커다란 양털구름이 거의 움직임 없이 떠 있었다. 그 아해 풀 밭에 흩어져 있는 우리는 도시의 거무죽죽한 쓰레기 같았다. 우리는 풍경을 더럽히는 존재였다. 바닷가에 흩어져 있는 정어리 통조림이나 종이봉투처럼. <조지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9쪽
형의 별명은 '여수의 이외수'였다. 성능 좋은 세탁기에다 빨아도 제 색깔로 돌아갈 것 같지 않을 정도로 시커멓게 변한 외투에 떡이 진 머리카락, 땟국이 코팅을 한 얼굴, 새카만 매니큐어를 바른 듯한 손톱, 구멍난 신발의 인물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이르기를 거지라 했다.
거지라면 직업의식은 아주 희박했다. 담배를 구걸하기는 하는데 누가 세 개비를 줘도 한 개비, 한 갑을 줘도 포장을 벗기고 딱 한 개비만 받았다. 기호품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풀빵도 한 개, 붕어 빵도 한 개, 오뎅도 한 개, 오직 하나씩만 받고 마너지는 돌려주었다.
"혹시 숫자를 하나 이상은 못 세는 것 아니요?"
이렇게 물으면 웃는 듯 못 들은 듯 그런 얼굴을 했다. 그러니 거지가 아니었다. 스스로 그러한 사람이었다. 그냥 자연인 말이다. 주로 남산동 시장통과 봉산동 어름을 다니거나 서 있거나 했다. 그는 모든 것을 보기만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구름, 바다, 식당 간판, 양파가 쌓인 좌판, 메리야스, 신발, 양말, 아이스크림, 건전지, 버스, 택시, 오토바이, 그리고 또 무엇이든, 어쩌면 아주 많은 수를 눈으로 채워야만 하는 형벌을 받은 사람일지도 몰랐다. <한창훈 나는 왜 쓰는가> 24쪽
두 책을 들춰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글이든 음악이든 정치든 밑바닥 감성을 가진 사람만이 잘 쓸 수 있고 잘 할 수 있는 것.
그런 의미에서 그녀에게 오늘의 선곡을 바친다.
"hang me oh hang me"
https://youtu.be/ZTzH4he7hP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