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가 6주차다. 한 일 없이 마음이 고되었고 몸은 더 고단하였다. 수업 전에 언니집에 가서 몸을 누이지 않았다면 6주를 버티지 못하였을 것이다.
6주 동안 가을이 왔다가 갔다. 어느 날엔 낮잠을 자고 일어나 튀김 집 바에 앉아서 고추 튀김 한 개랑 호가든 한 병을 마시고 갔다. 또 어느 날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한 시간 책을 고르고 고르다 결국엔 다 두고 오기도 했다. 어느 날엔 근처 사우나에 들어갔다 끝났다는 말을 듣고 그냥 돌아나와 땟국물 절은 몸으로 미안하게 앉아있기도, 권여선의 소설은 집에 책을 두고 나와 창비 카페에서 읽고 가기도 하였다.
금요일 오후. 불금을 보내고 싶은 게 아니라 그만 집으로 돌아가 다 벗어던지고 쉬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그리 달갑지 않은 소설들에 억지 애정을 주느라 용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한국단편소설읽기`라는 말에 현혹 되어, `읽기`라는 말에 마음 편해서 갔지만 내심은 한 주에 한 장이라도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싶은 마음도
컸던 것 같다. 결국 나는 읽었는가? 썼는가? 하고 되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읽은 것 같지도 쓰지도 아니하였다. 다만 전후의 변화와 발견, 그리고 만남?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은 예전에 읽고 개별 작품들의 수준이 고르게 읽을만 하다고 생각했었다. 특히 이기호의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은 오래 기억되는 소설이었다. 조해진의 `사물과의 작별`은 그 때 읽을 당시엔 무심히 넘겼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니 수작이란 생각이 든다. 삶과 사물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구체적인 것과 막연한 것의 대비를 조화롭게 잘 직조했다. 소설 습작을 하는 지인이 조해진의`빛의 호위`를 읽고 감탄해마지 않던데 그것도 마저 읽어 봐야 겠다. 그냥 읽는 것과 깊이 읽는 것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발견 중의 하나가 되겠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니 삭신은 쑤시고 마음은 오그라든다. 내복은 껴입고 어깨는 펴고 걸을 일이다. 최근 몇 주 문상할 일이 많았다. 주말까지 바쁘니 일상이 헝클어진다. 플라타너스 큰 이파리들이 스산한 거리에 속절 없이 뒹군다.
(모든 늙어 가는 것들에 경외를!)
폰을 잡으면 자꾸 기사를 검색하고 기사를 검색하다 보니 최씨 기사 넘어 문단 성추문 기사까지 넘어가게 되고 읽다보면 또 자꾸 읽게되어 스마트한 기기들을 한동안 멀리하려고 노력했다. 속이 시끄러워 잠이 오지 않는다. 남탓할 것 없고 이 지저분한 꼬라지들을 검색 따위로 소비하는 내가 젤 한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