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존 쿳시의 얇은 책<나라의 심장부에서>를 읽는데 옐리네크가 떠올랐다. 2년전 친구가 사는 동네의 평생학습관에서 문학강의를 들으면서 처음 접한 알프레드 옐리네크. 누구지? 작가도 책도 낯설었다.
1946년 오스트리아 출생 200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2004년이면 한창 어린이책을 읽을 때다. 암튼 그렇게 시기를 놓치고 2년전 읽은 책이 <욕망>이다. 포르노인가 문학인가라는 띠지의 문구는 잘못 뽑았다. 팔려고 일부러 선정적인 문구를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면.

포르노라는 부분에서 일견 기대감을 가지고 읽었는데
딱히 포르노도 아니고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게 뭐지?라는 기분으로 메시지를 찾으려 애쓰며 읽다가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과감히 책장을 덮어 버렸다. 반쯤 읽었던 듯 하다. 그리고 미련이 없었는데 <나라의 심장부에서>를 읽으며 그 불편함이 되살아났다. <욕망>급의 불편함은 아니지만 <나라의...>도 만만치 않다.

그 후 다른 강의 장소에서 만난 30대 출판사 편집자가 자긴 옐리네크의 책을 대학교 때 읽고 `비혼`을 결심했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 `와 대단하다. 그런 책을 20대 초반에 읽고 어떤 결심까지나!`나는 뭐지?

그이는 20대에 그 불편함을 직면했고 대처했고 결정하고 행동했지만 나는 40대에 그 불편함을 바로 회피해 버렸다. 이유는 나는 이미 불편함 속에 발을 담근 당사자로서 물 밖으로 나오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종류의 불편함이 생기는 걸 감수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가 20대에 옐리네크 책을 읽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하니 더 회피하고 싶어졌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모른 채로 속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요즘 <욕망>이든 <피아노 치는 여자>든 다시 읽는다면 끝까지 잘 읽을 수 있을 거 같아 다시 읽어보리라 생각했는데 마침 오늘이 옐리네크 생일이다. 오홋~ 아무래도 우린 인연인가ㅎㅎ 해피버스데이 열리네크♡
이런 종류의 책들도 한 번 모아서 읽고 싶다. <작은 것들의 신>도 이런 종류의 불편함이 있는 책이고
토니 모리슨의 책들도

(요즈음 2년 동안 대체 난 뭘 한거지? 책을 읽기나 한거야? 이런 생각에 괴로웠는데 그 2년의 의미가 옐리네크로 확인이 되었다. 불편해서 덮던 책들을 끝까지 좋아하며? 읽을 수 있게 된 것.
그게 2년 간극의 전과 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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