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가는 문학을 위해, 독자를 위해 삶의 다양한 광경을 재구성한다. 천재로 태어나는 주인공을 탄생시켜 그 주인공으로 하여금 열정에 사로잡혀 쏟아지는 빗속을 뛰어다니게 만들고 사랑에 빠지게 한다. 적당한 쓴맛과 단맛을 동시에 내기 위해 막 딴 치커리와 꽃상치를 잘 포개 만든, 여름 점심의 쌈밥을 만들기도 하고 연인 앞에서 처음으로 벗은 몸처럼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이 교차하는 하얀 살을 그리기도 하는 것. 그게 바로 소설이다. 소설을 읽는 일이 괴로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던져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은 소설을 창작한 게 아니라 앞으로 쓸 소설처럼 자신의 삶을 먼저 창작했다고. 아이 김해경이 쓴 소설이 위대한 작가 이상이라고.위대한 작가 이상의 작품은 그 부산물에 불과하다고....김해경이 드디어 작가 이상의 가면을 완벽하게 쓰게 됐다는 것. 물이 얼음으로 바뀌었다는 것, 알이 더이상 새를 품지 못하게 됐다는 것, 아이가 아버지가 됐다는 것, 밤이 낮으로 변해갔다는 것. 위대한 작품 이상이란 각혈한 몸으로 총독부 기수직을 뛰쳐나와 다방을 경영하고 난해한 시를 쓰다가 도쿄에서 죽는 삶이다. 김해경이 사라지고 이상이 영원했다. 삶이 먼저였고 문학이 나중에 왔다. 삶은 사라졌고 문학은 남았다. 그가 죽고 문학은 남았다. 이상은 죽고 데드마스크는 남았다 <꾿빠이,이상>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