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로주점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3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자기를 파멸시키려는 의지

언젠가 강의 시간에 선생님은 말하셨지. 인간에겐 누구나 자기를 파멸시키려는 의지가 있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뇌 속의 등불이 반짝 켜지는 느낌이었지. 아 그런 것도 있구나. 오래 못 푼 수수께끼가 풀리는 느낌이었지. 그리고 목로주점2를 읽는다. 막걸리를 마시며. 가만히 오래 내리는 빗줄기를 보면서 읽고 싶다. 꿀맛 꿀잼이다. , 아니구나, 인간에겐 누구나가 아니라, 어떤 인간은,이 맞겠구나.

 

인생의 첫 번째 비는 태백에 내리던 비였고, 두 번째 비는 가파도에 내리던 비, 세 번째 비는 사려니 숲에 내리던 비, 그리고 네 번째 내리는 비는 요즈음의 비라고 해두자. 내가 만드는 공간이 생긴다면 벽의 한 쪽면은 일 년 열 두달 비가 내리는 풍경으로 프로젝트를 쏘고 싶다. 비와 빗소리.

 

팔자고, 관상이고 손금이고 다 나한텐 재물이 있다는데, 그 재물 빨리 많이 들어오렴. 빨리 일 년 열두달 비가 내리는 방구석을 만들어 그 안에 처박혀 책만 읽고 싶다. 사람 따윈 만나고 싶지 않다. 이래놓고 허구헌날 그 방구석으로 사람을 끌어들여 술을 퍼마시겠지

 

질척하게 질펀하게 곰팡내 나는 현실 그리고 인간. 그런 소설. 소설이 이런 거라면 떳떳하게 난 소설만 읽어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뭐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말을 하긴 하지만. 읽는 중간 중간 기시감이 들어, 영화나 뮤지컬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책을 읽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랬지만, 지금 이 순간은 제르베즈와 나. 인간 본성의 선한 천사. 이런 책 제목이 있지 아마. 2권을 읽는 동안은 아버지에게 매만 맞다가 죽어간 그 어린 소녀의 이미지가 내내 의식을 지배했다. 술 퍼마시다가 망해가는 인간들을 보며 더 열심히 마셔야 겠다고 결심했다. 빨리 망하고 싶다. 그 때의 환경이나 지금의 환경이나 퍼마시고 망해주길 바라는 체제는 똑 같은 것 아닌가. 자기를 파멸시키려는 의지가 강한 인간들의 이야기. 자그마치 몇 년전 이야기인데 이렇게 현장성이 느껴지는 건지.

 

유전적으로 보면 친할아버지는 약주를 아주 좋아하셨고, 외할아버지는 반주를 즐기셨으며, 아버지는 평생 술을 입에 안 대시다가 은퇴 후에 반주 정도. 어머니는 술을 안드신다. 나는. 마흔이 넘어 술을 즐기기 시작했다가 요즘은 아침에도 술을 마신다. 전날 마시고 나면 아침은 술로 해장하고 싶다. 유전인자를 받았다기 보다 유전인자를 물려줄 것 같아 겁난다. 이런 글을 뻔뻔하게 리뷰로 작성하는 나는. 알라딘에 미안하다.

 

암튼 결론. 에밀 졸라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난 에밀 졸라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ㅎ 난 목로주점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이런 수많은 착각들이 자기를 형성하며 만든 거짓 됨 내지는 신기루 속에서 인간은 살아가는구나. 아니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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