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백나무 숲길을 걸었다. 길은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졌다. 길을 따라 들어가는데 길을 잃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가야하나. 계속 들어갔다. 꿩이 꿩꿩 울었다. 개도 컹컹 짖었다. 민가가 있는 모양이구나, 무덤이 나왔다. 풀이 길었다. 길을 가다 무덤 가를 지나면 무조건 천천히 살피듯 간다. 무덤가에는 예쁜 꽃이 많다. 사진으로만 보던 등심 붓꽃과 미나리아재비가 많았다. 암수 서로 정다운 나비도 날았다. 산초나무 잎을 따서 킁킁 냄새를 맡으며 갔다. 천남성이 지천이었다. 이름이 죽어도 생각이 안났다. 잠들기 전에 갑자기 생각나 찾아보니 이 곳에만 있는 큰천남성이었다. 한 포인트를 놓쳐 30분만 가면 된다는 정상을 밟지 못했다. 걸어도 걸어도 계속 이어질 것 같은 이상한 평지 길. 다시 처음 장소로 돌아오는 데 허벅지가 당겼다. 참. 난 요양차 온거지. 몸을 돌보러. 마음이 가는대로 돌아치다가 몸이 망가졌다. 청춘인줄 알았다가 큰 코 다쳤다.

구들에 등허리를 지지며 책을 읽었다. 하루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 마디도 듣지 않았다. 잠들 때 자장가겸 강의를 들었을 뿐. 하루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책이 온전히 두 권이 읽어 졌다. <하얀성>과 <복종>. 책과 나. 강렬한 독서 경험이었다. 일상에서라면 글쎄 읽어졌을까 싶은 책들이었다. 천천히 읽는데도 속도감이 났다. 두 권 모두 배경지식이 있으면 더 깊게 읽혔겠지만 돌아가 다시 읽고, 주석을 읽어가며 읽는 것으로도 족했다. 졸려서 자고 한 번도 깨지 않고 자고 눈을 떴다. 새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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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2 2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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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3 14: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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