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버스를 타고 가는데 도심 아파트 단지에 활짝 피어버린 벚꽃이 눈에 들어왔다.
어! 이게 뭐지...눈을 한 번 꿈뻑거려 본다. 내게 묻는다. 벚꽃 맞지? 천천히 오래 걸어 온 나그네가 정작 자기 집 현관문은 벌컥. 열어 젖히고 말았구나, 싶은. 더디오기에 기다리지 않았더니.
그렇다고 이렇게 코앞에 닥쳐버리다니. 서운 한 것도 반가운 것도 아닌 이 감정은 뭐지.
며칠 전 쑥국을 먹으며, 도다리 쑥국을 생각하다가, 엉겅퀴를 넣은 갈칫국에게까지 생각이 미쳤다. 호박과 얼갈이 배추를 넣고 끓이는 제주도의 갈칫국과 엉겅퀴 된장국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 그래서 엉겅퀴를 넣은 갈칫국을 먹어 보진 않았어도 느낌을 알 수는 있었다. 제주에 가면 동문시장에 갈치를 사서 동네에서 엉겅퀴를 뜯어다 국을 끓여 먹으리라 했었다.
막상 제주에 가면 그 곳에 있는 것만으로 자족해서 끼니 따윈 잊고 그냥 시간이 지나기 일쑤다. 그저 책과 산책, 멍 때리기.
아마도 나는 <홍합>과 <열여섯의 섬>을 읽었을 것이다. 집에 이 책들이 꽂혀 있던 것이 기억이 나니까. 그리고 <나는 왜 쓰는가>와 <내 술상위의 자산어보>는 읽었다. 비교적 최근에 읽었으니까.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뭉떵거려 나에게 한창훈은 '엉겅퀴를 넣어 끓인 갈칫국'으로만 남아 있다. 기억력의 한계이고 내 욕망의 크기가 이만큼이었을 것이다. 이정도가 내가 한창훈에게 가지고 있던 순정이었다. 한 그릇의 갈칫국.
오늘 <순정>을 읽었다. 언젠가 조인성이 출연한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나왔던, 이 아이 연기를 참 잘하는 구나.하고 눈도장을 찍었던 아이돌 그룹의 소년과 소녀의 사진이 띠지로 둘러져 있었다. 한창훈이 처음 쓴 시나리오 운운 영화의 원작 운운. 띠지는 넓었고 아이들은 예뻤다.
그 띠지 덕분에 나는 <순정>이 참 소년소설 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들이 고딩이었다. 재밌게 읽었던 이순원의 <19세>가 언뜻 떠올랐다. <19세>의 주인공도 순정을 가진 소년이었다. 순정이 향한 방향이 다를 뿐. 한국 소설을 읽은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화에 끼려고 정유정의 책을 몇 권 읽은 것이 다다. 라고 쓰고 보니 잡았는데 금방 읽혀서 장강명 책도 읽었구나. 아, 이기호와 천명관의 신작도 읽었네.그래봤자 외국문학과의 비율을 생각하면 안 읽어 온 것이나 다름 없기에 안 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구나.
<순정>을 읽고 병이 도지는 것을 막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는 이 사람들을 잊지 못했습니다. 너무도 깊고 짙은 사랑과 우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는 작가의 말처럼 나 또한 <순정>에서 너무도 깊고 짙은 사랑과 우정을 읽어버렸다. 여러 권 사서 좋은 사람들에게 눈 맞추며 한 권씩 건네고 싶어졌다. 며칠 전 이 책을 받아 든 날도 그랬다.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그 짜릿한 느낌들이 저녁 무렵의 공기 속에 그득했다. 그도 그녀들도 다 슬픈 날이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했다. 늘 그랬겠지만, 더 그런 날. 우울하다며 웃을 수 있는 그런 감정들이 물오른 가지 끝에 도톰하게 얹혀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