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서만 사는 게 지긋지긋했다. 이럴거면 왜 사느냐 싶었다. 무엇이든 생산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맹목적인 시간들에서도 빠져 나오고 싶었다. 일주일에 이틀 일하지 않겠냐고 제안이 왔을 때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그러마고 했다. 내가 필요한 곳에서 누구에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다. 마침 그런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이틀이 애매하게 사람을 붙잡아 두어 여행도 못하고, 그건 별거 아니야 라고 생각했던, 돈이 안되는 것도 피곤함을 가중시킨다. 아마 봄이어서도 하겠지. 기운이 다 빠져나간 느낌이다.
윤대녕의 <피에로들의 집>을 몇 주 사두고 못 읽다가 어제 아침에 손에 들었다.
처음부터 딱히 거부감도 매혹도 없었다. '그'를 따라 자연스레 <피에로들의 집>으로 들어섰다. 도시난민의 모습을 그리겠다고 생각한 작가의 의도는 끝에 있는 '작가의 말'을 읽고서야 이해가 되었다. '이런 모습들이 난민이었구나' 그저 주변의, 나의, 너의 모습들이 '난민'이었구나. 한다.
아마도 <은어낚시통신>과 <대설주의보>정도는 읽었을 듯도 하지만 느낌이나 기억이 살아있지 않으니, 윤대녕이란 인식은 <피에로들의 집>이 처음이라고 해야겠다.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윤대녕이란 사람은 시적인 소설을 쓰는 사람이란 선입견이 있었다. <피에로들의 집>에서도 시적인 느낌들을 찾아 읽으려 했던 것 같고,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요 몇년 선택해서 읽는 나의 소설 취향이 좀 자극적이고 스피디한 타입이었어서, 정지 된 듯 걸어가는 윤대녕의 속도감이 지루했다. 그 날이 그 날, 걸어도 걸어도의 느낌이었다. 에이, 읽지 말까?
중간에 덮어버리기엔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을 읽으면서 아, 끝까지 읽기를 잘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에이, 읽지 말까?했던 것은, 소설의 곳곳에서 발견한 기시감들 내가 주로 활동하는 공간들, 지명들, 음식 이름들, 화가들의 이름들이 반가운게 아니라 지루했다. 가장 못 견딘 것은 그의 생각들, 대사들이 참신함이 없었다. 너무 내가 젖어 사는 감상들이어서 빠져들어지지가 않고, 외면하고 싶었다. 왜일까. 평소 같으면, '어머 내 마음을 읽어주는 것 같아'라며 호들갑을 떨었을 텐데.
"명년 봄에도 세상천지에 꽃들이 다퉈 피려나? 또 언젠가 눈이 내리고, 하늘로 철새들이 떼지어 날아가려나?"
나는 히뜩 마마를 돌아보았다. 거울 속에서 그녀는 의미를 알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238
유달산 입구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우뚝 버티고 서 있었으며, 이난영 노래비 주변은 쇠울타리 공사중이어서 접근이 어려웠다. 공원 매점에서는 <목포는 항구다>라는 노래가 되풀이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팔각정에 앉아 목포항 주변을 망연히 내려다보다 나는 발길을 돌려 시내로 내려갔다. 그리고 독천식당을 찾아가 낙지비빔밥을 먹고 밤의 목포항을 둘러보았다. 항구는 폐허처럼 쓸쓸했고 늙은 포주들이 어두운 처마 밑에 서서 목쉰 소리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덕인집이라는 허름한 선술집에서 홍어회를 안주로 구기자 막걸리를 마신 다음, 기차역 주변의 여관에 들어가 일찌감치 잠을 청했다. 종일 먼길을 걸어온 듯 몸과 마음이 홧홧하고 무거웠다. ... 종착역인 부전역까지는 일곱 시간 십육분이 걸릴 예정이었다. 목포를 출발해 나주 광주송정 명봉 벌교 순천 광양 하동 진주 함안 진영 삼랑진 구포를 지나야 종착역인 부전에 도착하는 것이다. 243
마지막 부분을 읽기 시작했을 때 아...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못난 놈들 끼리는 바라만 보아도 힘이 난다'는 어느 시인의 싯구절처럼 그냥 읽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욕망하고 욕망하고, 지치고 지친 날들에 대한 위로.
선생님 막걸리 한 됫박 더 시킬까요? 아니, 이걸로 견뎌보자고.하며 잔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을 들이키던 선생님을 보고 아,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했던 것처럼. 저 오늘 좀 우울하거든요. 했던 선생님의 말을 듣고 같이 키득키득 웃었을 뿐인데 마음이 개운해졌던 것 처럼, 작년 이즈음 홍도에서 동백을 보고 소주를 마시고, 완도의 바닷가 앞 여관방에 들고, 목포의 허름한 골목길을 헤매던 것 처럼. 겨울꽃과 봄꽃이 이제 막 만나졌을 뿐인데. 미친듯이 속도감이 붙은 봄날처럼.
헤매고 헤매고 헤매고, 종착역을 꿈꾸지 않는 것이 오늘을 사는 비법이지 않을까. 부전에 도착하지 앟아도, 하동 진주 함안 진영이 삼랑진을 그저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어쨌든 오늘은 홍어회에 송명섭막걸리를 마시고 싶다. 소설은 늘 술을 부른다. 시는 또 어떻고.
윤대녕의 소설들은 다 제목이 이렇구나. 두 권 쯤은 더 읽어 보려고 한다. 무엇을 읽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