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격동 중에 쥘리엥은 행복하다기보다는 놀라운 기분이었다. 마틸드의 야단법석은 러시아인의
술책이 얼마나 현명한 것인가를 그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말과 행동을 절제하는 것' 이것이 유일한 내 구원의 길이다.' 266쪽
쥘리엥은 마음이 다른 데 팔려 있었다. 마틸드가 보이는 격렬한 애정의 표시에도 그저 건정으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그는 침울한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마틸드에게 위대하고 숭고한 인물로 보였다. 마틸드는 그의 예민한 자존심이 모든 상태를 망쳐버리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312쪽
그의 무감동한 태도, 엄격하고 사나움에 가까운 눈초리, 창백한 얼굴, 요지부동의 냉정함으로 인해 첫날부터 그에 대한 평판이 일기 시작했다. 며칠 뒤에는 그의 절도 있는 완벽한 예의범절이며 그가 별 꾸밈 없이 보여준 능숙한 권총 사격 및 검술 솜씨 덕분에 아무도 그에 대해 큰 소리로 희롱할 엄두를 못 냈다. 315쪽
쥘리엥은 야심에 도취해 있을망정 허영심에 도취한 것은 아니었따. 그렇지만 그는 외모를 치장하는 데는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다. 315쪽
이 편지를 보내고 다소 정신을 차리자 쥘리엥은 처음으로 몹시 불행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죽는다 라는 그 숙명적인 말에, 그가 품었던 야심의 희망이 하나하나 그의 가슴에서 뽑혀 나갔다. 그러나 죽음 그 자체가 무서운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전 생애는 불행을 향한 기나긴 준비 과정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불행 가운데서도 가장 큰 불해이라고 할 만한 것을 조금도 잊고 싶지 않았다. 326쪽
마틸드가 살아 온 파리의 상류 사회에서는 정열이 신중함을 버어 내던지는 일은 극히 드문 것이다. 창문으로 몸을 내던지는 것은 6층 꼭대기에 사는 하층민들에게 일어나는 일인 것이다. 350쪽
마틸드 곁에서 느끼는 마음의 불편은 마틸드의 열정이 점점 유별나고 분별 없어지는 만큼 더욱더 커지는 것이다.
영웅주의 시대와 몸서리져지는 무서운 쾌감에 대한 기억이 마틸드의 머리에 고정관념처럼 달라붙었다. 지금껏 오만한 마틸드의 마음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던 자살이라는 집념이 마음속에 스며들어, 곧 그녀의 마음을 절대적인 힘으로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 그렇지, 내 선조들의 피가 내게 와서 식어버릴 리 만무하지. 마틸드는 자랑스럽게 중얼거렸다.
이봐요, 정열이라는 것은 인생행로의 한 사건에 불과한 거요. 그러나 그 사건은 탁월한 영혼들만 겪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