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물고기가 물의 존재를 가장 늦게 알아차린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수화 사용자들에게 수화는 물고기의 물과 같다.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워서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순진한 현실주의에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신이 쓰는 언어를 하나의 구조물로 보지 않고 현실의 반영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측면들은 그 단순성과 친숙함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따라서 어떤 언어를 날 때부터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너무나 단순하고 쉬워 보이는 자신의 말이 사실은 엄청나게 복잡하며 진정한 언어의 수많은 장치들을 그 안에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는 외부의 시각이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203쪽

 

이 움직임과 똑같은 힘을 지닌 다른 요인들이 많이 존재했으며 이것들이 하나로 합쳐져서 흐름을 이루면서 1988혁명이 일어났다. 이 요소들 중 하나를 꼽는다면, 우선 1960년대의 분위기가 있다. 가난한 사람, 장애인, 소수집단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던 시절. 인권운동과 정치적 활동, 다양한 '자부심'과 '해방'운동들이 벌어지던 시절. 바로 이런 분이기가 활발하던 시기에 수화도 많은 저항을 뚫고 서서히 학문적으로 정당성을 확보했다. 그와 더불어 청각장애인들 역시 서서히 자부심과 희망을 쌓아 1세기 동안 그들을 괴롭히던 부정적인 이미지와 감정에 맞서 싸웠다. 사회 전반적으로도 문화적 다양성에 관용을 베푸는 분위기가 강화되었으며, 세상에는 서로 크게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그들 모두가 소중하고 동등하다는 인식도 강화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청각장애인도 고립되어 개인으로 살아가는 비정상적인 장애인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임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청각장애인을 환자로 보는 의학적인 시각이 인류학적, 사회학적, 종족적 시각으로 바뀐 셈이다. 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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