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아물기 전에 딱지를 뜯어내며 써야하는 소설
이 원고는 박완서 선생의 새 소설 <그 산은 정말 거기 있었을까>의 출간을 계기로 이루어진 인터뷰의 결과다.
이 소설은 1992년 가을에 출간되어 그동안 수많은 독자들의 가슴에 웅덩이를 파놓은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마지막 문장을 이어나가는 소설이다. 코흘리개 소녀의 기억이 시작되는 부분에서부터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의 습격으로 상처받고 헤매면서 그리는 삶의 무늬가 현란하달 정도로 슬프고도 아름답다. 어쩌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소설임을 전제로 했을 때 가능한 말인지 모른다. 어떻게 감히 그 신산했던 한 사람의 기억을, 아니 그 가족사 전체를 통해 배어나오는 우리 모두의 과거를, 풍속과 역사를 그토록 간단하게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그것을 소설이라고 한 것은 염치없는 우리 독자들에게 간단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를 마련해주기 위한 어떤 것은 아닐까.
박완서 선생과의 만남은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소설이라는 쪽문을 통해서 자신의 기억을 드러낸 사실(그렇지 않은 소설이 또 어디 있을까)을 가지고 무슨 이갸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역시 할 만한 이야기는 다 한 것이고, 감추고 싶은 이야기는 그 어떤 곳에서도 역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자명한 일이 아닌가. 이제 노경에 접어드는 대작가에게 시를 공부하는 한 애송이 청년이 할 일이란 역시 그 주변에서 서성이다 그 그림자나 엿보는 일일 것이다. 그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어려운 시간을 만들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47
아..지난 주말 맨발로 집을 뛰쳐 나간 이후로 과음의 나날을 보내고 어제 늦어서야 귀가하였다.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자야하는 상황이었던가 하면, 어젠 세수도 못(안)하고 외출해서 하루종일...노숙 주간이 따로 없었다.
아침에 잠이 깨자마자, 오늘 부터 정신을 좀 차려야지. 하면서 머리 맡의 책에 손을 뻗쳐 아무 페이지나 펼쳤다. 인터뷰집을 읽는 것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둘 다를 만나는 일. 오늘 펼쳐진 곳은 시인 장석남이 인터뷰한 부분, '상처가 아물기 전에 딱지를 뜯어내며 써야 하는 소설' 이었다. 위의 인용에 이어지는 본문 제목이 '감미로운 침묵과 맑아오는 정신'이다.
나에게 정확하게 필요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