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무브 - 올리버 색스 자서전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 내게로 왔다. 책 속에 길이 있다. 너무 흔해서 진부함이 느껴지는 말들이다. 그런데 정말 책이 내게로 왔고 책 속에 길이 있었다. 갑자기 수화를 배워야 하는 상황인데, 수화를 배우기가 싫었다. 난감했다. 그런데 오늘 읽은 <온 더 무브>에 길이 있었다. 나는 어떤 사안이든 총체적이고 맥락을 따져 접근하는 걸 좋아하는데, 무조건 수화로 자음 모음부터 배운다는 것이 싫었다.  그렇게 배워봤자 학습속도가 무지하게 느리거나 중도 포기 할 확률이 높았다. 그런던 차에 <온 더 무브>에 이런 부분이 눈에 띄었다.

 

캘리포니아대학교출판부의 스탠 홀위츠가 청각장애에 관한 이 두 편의 에세이가 좋은 책이 될 것 같다고 제안했다. 그 생각이 마음에 들었지만 그러려면 두 부분을 연결해주는 몇 단락이 필요하겠다고 느꼈다. 언어와 신경계에 대한 개관 같은 것으로 말이다. 이때는 전혀 그렇게 될 줄 몰랐는데, 이 몇 단락은 오히려 책에서 가장 큰 부분이 되었고,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목소리를 보았네>다. 324쪽

 

그래서 급 <목소리를 보았네>을 검색했고, 알라딘 소개글은 이랬다.

 

"완전한 언어 수화, 그 아름다움을 올리버 색스만의 언어로 말하다. 올리버 색스는 우연히 청각장애인들의 세계와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인 수화에 관한 글을 읽고 새로운 탐구에 대한 의욕을 갖게 되었다. 그것이 이 책의 시작이다.

‘귀머거리이자 벙어리’인 채로 수천 년간 살아온 청각장애인들의 세계 그리고 그들의 가족, 학교,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특별한 대학인 갤러데트대학을 접하게 되면서 올리버 색스는 매혹과 경악을 동시에 느낀다. 그리고 그 감정은 언어에 대해서, 말하기와 가르치기의 본질에 대해서, 아동발달에 대해서, 신경계의 발달과 기능에 대해서, 공동체와 세계와 문화의 형성에 대해서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주었다.

이와 동시에 올리버 색스는 또 다른 영역을 인식했는데 그것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영역이 아니라 문화적인 영역이었다. 올리버 색스는 청각장애인들이 완전히 다른 종류의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언어는 인간의 사고력에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풍요로운 공동체와 문화의 매개체 역할도 했다. 바로 ‘수화’다"

 

보통은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두 세권 이상의 책이 파생되곤 한다. 그런데 자서전을 읽는 경우는 좀 예외다. 자서전의 주인공이 작가일 경우 그 작가의 책을 거의 다 읽고 싶다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것. 그 시작이 <목소리를 보았네>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청각 장애인들과 '완전히 다른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단지 기능적인 형태만을 익히고 감정 없이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좀 더 깊고 넓게 이해하고 아우르는 마인드를 <목소리를 보았네>가 알려 줄 것 같다.

 

 브루너의 저서를 읽고 난 뒤 나는 언어를 단지 언어학적 측면만이 아니라 사회적 측면까지 함께 고려하여 생각하게 되었고, 이 생각은 내가 수화와 청각장애인 문화를 이해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작용했다. 326쪽

 

  이사벨은 사고가 정교하고 엄밀한 사람이었다. 나는 얼렁뚱땅 되는 대로 생각하다가 온갖 기괴한 연상과 정신적 일탈로 빠지기 일쑤였는데, 그런 나와 의외로 처음부터 죽이 잘 맞았고 지금까지 아주 가까운 친구로 지내고 있다.

 이사벨은 부정확하거나 과장되거나 확증 없는 발언은 내게는 물론 자신에게도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 "근거를 대봐." 이사벨이 늘 하던 말이다. 이런 점에서 이사벨은 부끄러운 오류가 될 뻔했던 나의 노지를 허다하게 구제해준 내 과학적 양심의 파수꾼이었다.

 

이사벨은 루리야의 스승 비고츠키(1896~1934)가 쓴 이 글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내게 주입했다.  

 

시각장애나 청각장애가 있는 어린이가 일반 어린이와 같은 수준의 발달을 성취하려면, 결손 있는 그 아이는 또다른 방식, 또다른 과정, 또다른 수단으로 이를 이루어내야 한다. 교육자에게는 독특하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아이를 지도할 때는 반드시 그 이해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장애에 따른 약점을 보상작용에 의한 강점으로 변모시키는 것이 독창성의 핵심이다.

329쪽

 

수화를 사용하는 청각장애 부모는 갓난아기에게 수화로 '재잘거리'는데 일반 부모가 갓난아이를 보면서  말로 재잘거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청각장애 자녀는 일찍이 수화 공동체에 노출 되지 않는 한 언어라 할 만한 것을 전혀 학습하지 못한 채 성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브롱크스에 있는 한 청각장애학교에서 이사벨과 함께 만난 많은 어린이가 독순술과 구술 언어를 익히고 있었는데, 몇 년에 걸쳐 막대한 인지 부하가 요구되는 아주 힘든 과정이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이들의 언어 이해력이나 구사력은 평균을 크게 밑돈다. 나는 그 곳에서 충분히 유창한 언어 능력을 얻지 못했을 때 인지 능력과 사회 능력에 어떤 파괴적인 효과를 가져 오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청각장애인은 일반인에 비해 시각 능력이 '초활성화'되는 경향을 보이지만(이는 태어난 첫해부터 두드러진다) 수화를 학습할 경우에는 그 능력이 더욱 향상된다. 33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