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째 순한 겨울 아침을 맞고 있다. 어두운 길을 걸어 전철을 타고 책을 읽거나 눈을 감고 한 시간쯤을 지하세계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지하세계에서 벗어나 이제 막 잠을 깬 북한산의 실루엣을 보는 것은 더 나쁘지 않다. 걸어서 교문을 통과하며 맞는 알싸한 겨울 아침의 공기는 축복이다. 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중앙 현관을 피해, 교사 뒷편의 출입문을 애용하는데, 그 앞에 단풍나무가 있다. 가을 내 단풍으로 눈을 호사시켜 주더니, 이제 씨앗들이 마른 가지에 붙어 사그락 거린다. 그 씨앗들을 오며 가며 눈으로 보고 가끔은 손으로 훑어 교실로 가져온다. 아이들과 크리스마스 장식물을 꾸미고 붙이기도 하고 하늘 높이 휘르륵 날리며 놀기도 한다. 씨앗들은 여름의 정염이 끝나고, 물기가 말라가는 가을의 끝에야 모습을 드러낸다. 물기 촉촉한 잘 여문 씨앗보다 바스락거리는 맛의 씨앗이라야 진정한 씨앗 같다. 곰팡이나 세균들로 부터 침범 당하지 않게 완전히 물기를 날려버리고, 어디든 날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날개 달린 씨앗.  날개 달린 씨앗이야 하고 많지만 그래도 날개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형태를 가진 게 단풍나무 같다. 오늘 도서실에 갔다가 새로 들어 온 책 중에 <나무의 아기들>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보았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느릅나무 아기는

빛의 조각처럼 하늘을 헤엄쳐요.

 

느립나무 씨앗은 종잇장보다 얇은 부피의 부채꼴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절대로 눈에 띄지 않는 사이즈이다.

 

벽오동의 아기는

가을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배를 타고 바람의 여행을 떠나지요.

 

벽오동은 그 이름이 주는 규모 답게 씨앗 마저도 시원시원한 쪽배 같다. 사이즈가 커서 바람도 더 잘 타고 멀리 날아 갈 것 같은 스케일이다.

 

보리수 아기는

헬리곱터를 타고 멀리까지 간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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