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조용하고 간결했다. 베이비 석스 성녀가 쓸데없는 말은 허락하지 않았기 떄문이다. "세상만사는 적당한 정도를 아느냐에 달려있어" "멈춰야 할 때는 아는 게 좋아"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147

 

강기슭을 따라 움푹한 곳에서 자라는 푸른고사리의 포자들이 수면에 둥둥 떠서 강한가운데로 흘러갔다. 그 푸르스름한 은빛 행렬은 햇살이 낮고 희미해졌을 때 강기슭에 누워서 그 쇼ㅗㄱ이나 바로 가까이에 있찌 않으면 잘 보이지 않았다., 종종 벌레로 잘못 보기 쉬웠지만 사실 그것들은 한 세대가 미래를 확신하며 잠자고 있는 씨앗이었따. 잠깐 동안은 모두에게 미래가 있따고 믿기 쉽다. 포자 속에 담긴 모든 것들이 실현될 거라고, 정해진 수명을 다할 거라고, 하지만 이런 확신의 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포자의 수명보다는 오래가겠지만.

 

그래도 세서는 그런 노력이 고맙기만 했다. 베이비 석스가 먼 곳에서 보내주는 사랑은 가까이 살을 맞댄 그 누구의 사랑에도 뒤지지 않았다. 그 손길은 물론이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싶어하는 간절한 마음은 그녀의 영혼을 일으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만큼 끌어올려주었다. 뭔가 분명한 말을 해달라고,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소식을 탐욕스럽게 갈망하는 이 머리로 그런 소식을 전하길 기꺼워하는 이 세상을 어떻게 계속 살아가야 할지 조언을 해달라고 청할 수 있게 해주었다. 162

 

깊은 우울에 빠진 개들이 누워 있는 헛간을 지나, 경비 초소 두 곳을 지나, 말들이 자는 마구간을 지나, 부리를 깃털 속에 파묻은 암탉들을 지나, 그들은 앞을 헤치고 나아갔다. 달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예 없었으니까, 들판은 늪이었고 길은 낙수받이였다. 조지아 주 전체가 미끄러지며 녹아 없어지는 것 같았다. 길을 가로막는 참나무 가지와 싸울 때면 이끼가 그들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187

 

한 달 전 홍수처럼 쏟아지던 비가 온 세상을 물안개와 꽃으로 바꿔 놓았다.

 

꽃나무를 따라가시요. 꽃이 피는 나무만 따라가시오. 꽃이 지면 떠나시오, 꽃이 모두 지면, 원하는 곳에 이르게 될 거요.

 

그는 말채나무에서 꽃이 만발한 복숭아나무로 달려갔다. 복숭아꽃이 듬성듬성해져 벚꽃을 쫓아갔고, 그 다음에는 목련, 멀구슬나무, 페칸, 호두나무, 손바닥 선인장을 따라갔다. 마침내 그는 꽃송이가 있던 자리에 이제 막 조그만 열매가 맺힌 사과나무밭에 이르렀다. 봄이 북쪽으로 어슬렁어슬렁 산책을 가는 동안, 폴 디는 이 동반자를 따라가기 위해 미친듯이 달려야 했다. 2월부터 7월까지 그는 꽃의 마수꾼 노릇을 했다. 어쩌다 꽃을 놓쳐 길을 인도해줄 꽃잎 한 장 찾을 수 없을 때면 발길을 멈추고 언덕 위 나무에 올라 주위를 둘러싼 녹음의 세계에서 얼핏얼핏 보이는 분홍빛이나 흰빛을 찾으려 지평선을 살펴 보았다. 꽃을 만지거나 잠시 서서 향기를 맡아보는 법도 없었다. 그저 뒤따라갈 뿐이었다. 곷이 만개한 자두나무의 안내를 받는 누더기 차림의 검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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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디가 조지아 주 앨프리드 수용소와 식소, 학교 선생, 핼리, 형제들, 세서, 미스터, 쇠 재갈의 맛, 버터가 만들어지는 모습, 히커리 나무 냄새, 공책을 하나하나 가슴속의 담배 깡통 속에 집어넣기까지는 얼마간 시간이 걸렸다. 그가 124번지에 당도했을 무렵에는 이 세상 그 무엇도 깡통의 뚜껑을 열 수 없었다.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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