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이 걸었다 - 뮌스터 걸어본다 5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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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우연의 도시 어느 우연의 시인

 

책장을 덮으며 생각한다. 그래, 시인은 이렇게 푹 젖어 사는 사람이구나...  

책이 이렇게 예쁠 수도 있구나!  

읽기도 전에 손에 잡힌 촉감 만으로 이미 책을 다 읽어버린 느낌이다.

 

 서문에서 시인은 맹인 독자를  직접 손을 잡아 이끌 듯 뮌스터로 안내한다. 말로 공간을 대충 그리는데 그 흐릿함이 오히려 명확하게 다가온다. 지도를 펼치라 했건만 지도쯤은 펼치지 않아도 머릿 속으로 대충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마르고 닳도록 지도를 봐서가 아니라 명확함이 싫은 그 아스라함만으로 뮌스터는 벌써 마음 안에 머릿 속에 자리한다.

 

'어느 날, 트라클의 시를 읽다가 내가 잊고 있던 뮌스터의 첫인상이 20년이라는 세월을 뒤로한 채 문득 찾아 왔다. 아주 짧은 시간의 층이라 얇야서 없어져 버린 줄 알았는데 트라클의 시가 내 시간의 얇은 지층 하나를 돌려주었던 것이다. 시를 읽는 어떤 시간은 이런 시간이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것이 돌아오는 시간, 그 시간을 새로 발견하고는 그 시간으로 들어가보는 것.' 32쪽

 

그녀는 '트라클'이란 강에 몸을 깊숙히 담구었고, 아주 천천히 일어났다. 우리는 그녀의 온기로 기화되는 트라클의 수증기를 가만히 바라보거나, 공기 중에 흩어진 수증기의 입자가 우리에게 닿아 소멸 되는 것을 그냥 느낄 뿐이다. 대상에게 침잠했던 시인이 대상의 시세계에서 건져올린 사유를 가만히 되뇌인다.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그녀가 가진 물기를 호흡할 뿐이다.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엔 수 많은 겹이 있고, 꿈이 있고, 결국은 떨어지고 말 별똥별이 대기하고 있다.

 

부드럽고 따듯해서 마음이 촉촉해진다. 결국 눈가도 촉촉해지고 만다.

 

기차역에서

칠기박물관 앞에서

뮌스터의 푸른 반지

츠빙어에서

소금길, 그리고 다른 길들

 

뮌스터의 반을 걸었다. 그냥 걸은 것이 아니라 외로움과 그리움의 사유들과 함께. 시인이 사랑한 시들을 읽으며 오래 된 길들을 걷고, 사람과 건물들을 만났다. 기차역이든 박물관이든, 짙은 숲그늘의 가로수길이든 과거의 유적 앞에서든 시인은 고향을 그리워하고 '너'와 '나'를 향해 가는 질문들을 한다. 시인을 떠나오게 했고, 돌아가고 싶게 만든 영원의 질문들이 뮌스터의 거리 곳곳에서 불쑥 불쑥 튀어 나온다. 시인은 열다섯 시간의 거리 그 너머에서 고향이 가깝다고 말한다. 갑자기 베낭하나 둘러 메고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를 타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4시간 반 기차를 타면 뮌스터. 우연의 일치로 어제 마저 읽은 헤세의 <황야의 이리>도 뮌스터가 배경이다. 소설 속에 배경이 특정한 역할을 하지도 배경의 묘사도 거의 없지만, 허수경 시인의 뮌스터와 '하리 힐러'의 뮌스터가 오버랩 되면서 글이 더 쫄깃하게 읽힌다.

 

지도는 깜짝 선물이다. 다 읽어 버리기 아까워 반을 남긴다. 남아 있는 동안은, 읽어 가는 동안은 먼 곳의 그리움을 시인과 함께 느낄 수 있겠지. 시인이 좀 덜 외로웠으면 한다.

 

상점 거리의 시작을 박물관이, 상점 거리의 끝을 성당이 장식한다는 건 이 도시가 제 중심부를 그저 상인들에게  내어주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시간을 보존하는 박물관과 마음을 달래주는 성당이 있어야만 비로소 자본주의 상점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도시의 설계자들이 진즉에 했는지도 모르겠다.네게로 가는 길을 잃어 버렸을 때 역사를 바라본다는 건 휴식을 뜻할 수도 있다.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고 기를 쓰면 진짜 잃어버린다. 그 때는 잠시 덮어두는 것이 최고다. 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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