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살 던 집 옆 공원에 칠엽수가 많았다. 여름이 되기 직전 하얀색 꽃을 피워 올렸다가 가을이 되면 알밤과 거의 똑같이 생긴 열매가 수두룩하게 공원에 떨어져 있곤 했다. 사람들이 말하길 '말밤'이라고 하는 그 열매는 독이 있어 먹으면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지역의 사람들은 그 말밤을 주워 가는 것이 아닌가. 독이 있다는 데 먹어도 될까 그 말밤의 정체가 몹시 궁금했다. <힐링 플랜트> 첫 장에 그 말밤이 나왔다.  반가웠다.

 

칠엽수의 씨는 예전에 프랑스와 스위스의 직물공업에서 삼, 아마, 비단, 모직을 표백하는 데 사용하였다. 2차 대전 중 녹말의 원료로 이용된 칠엽수는 발표시켜 아세톤을 만들고, 이를 탄도압출 처리과정의 용제로 사용해 무기의 성분인 코르다이트를 만들었다. 견과는 9월과 10월에 수확한다. 특히 갓 수확한 어린 견과에는 알칼로이드 사포닌과 글루코시드가 함유되어 있어 약간의 독성을 갖는다. 만져도 위험하지 않지만, 먹으면 병에 걸릴 수 있으며, 말이 먹을 경우 떨림과 신체조정 결핍이 나타날 수 있다. 일부 포유동물, 특히 사슴은 독소를 분해할 수 있어 부작용 없이 견과를 먹을 수 있다. 22쪽

 

칠엽수는 우리나라에서는 대학로에 많은 나무다. 일명 마로니에. 홍대 주차장 거리에도 많다. 벚꽃이 지고,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신호가 마로니에 꽃이 피는 것이다. 봄밤도 아닌 것이 여름 밤도 아닌 것이 공원 벤치에 앉아서 얼마든지 밤을 샐 수도 있는 날씨에 마로니에는 꽃을 피운다. 멀리서 보면 원추형의 초롱불 같다. 이 즈음에 나무들은 흰색 꽃을 일제히 피운다. 오동나무가 조금 더 큰 연보라색 종모양의 꽃을 주렁주렁 피우는 것도  이 맘 때다. 벤치에 앉아 치맥하기 좋으라고 등나무도 주렁주렁 꽃을 연다.

 

얼마 전 한창훈의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를 읽다가 거문도에서는 갈치국에 엉겅퀴를 넣는다는 것을 알았다. 제주에서 호박을 넣은 갈칫국을 맛있게 먹었기에 엉겅퀴를 넣은 갈칫국은 어떤 맛일까 궁금했다. 엉겅퀴 잎은 가시가 억세기에 어찌 그것을 국에 넣어 먹는단 말인가 싶었는데, 어찌 되었든 거문도에서는 엉겅퀴를 갈칫국에 넣어 먹는다지 않는가. <약이 되는 식물, 힐링 플랜트>에서 보면 큰 엉겅퀴에서 주로 약용으로 쓰이는 부위는 다 자란 씨라고 한다. 오래 전 부터 간질환에 뛰어난 치료효과가 있다고 여겨 씨를 얻기 위해 재배했다고 한다. 초여름 자유로에서 연천으로 가는 길가엔 큰 엉겅퀴가 아주 싱싱하게 피어 있곤 하는데 씨가 생긴 시절에 그 길로 가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올 여름엔 엉겅퀴 씨가 여물 무렵 연천길을 한 번 가봐야 겠다. 물론 언젠가 거문도에 가게 되면, 엉겅퀴가 피는 시기에 맞춰서 가는 걸로.

 

<약이 되는 식물>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생각난 책이 <독을 품은 식물이야기>다. <약이 되는 식물>의 서문에도 '어떤 경우에라도 허브에 대한 관심이 자가진단을 권장하거나 의사의 진찰과 치료를 대신하는 것으로 연결되어서는 안된다.'라고 되어 있듯이 약이 되는 식물일지라도 잘 못 사용하면 독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독을 품은 식물이야기>의 서문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실 약초와 독초는 양날의 검이다. 그러니까 유독성분도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약이 될 수 있다. 맹독물질이라도 약을 더하거나 줄이면 약이 된다. 이와 반대로 약으로 쓰는 물질도 일정량을 초과하면 생명을 위협하는 독이 된다. 단지 양의 차이 일뿐 약초가 곧 독초이고 독초가 곧 약초인 셈이다. 6쪽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요즘에도 치명적인 바이러스 앞에서 속수무책 나라가 들썩인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것인가는 살아 있음의 화두이다. 우리 밥상에 흔히 올라오는 먹거리부터 그렇진 않지만 알아 두면 좋을 먹거리(약이 된다, 독이 된다는 먹는 것을 전제로 하기에 내겐 먹거리에 대한 책으로 읽혔다)들을 망라한 이 두 책은 딱히 식물에 관심이 없다 할지라도 읽어 보면 좋을 교양서이다. 디기탈리스에 대한 고흐의 일화가 흥미로워 옮겨 적는다.

 

디기탈리스

최근 관상용으로 많이 가꾸는 디기탈리스는 유럽에서는 주로 의약품 원료로 재배하던 식물로, 북반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명성을 얻을 만큼 화려한 꽃송이가 매력적이다...실제로 디깉탈리스는 오랜 세월에 걸쳐 민간에서 심장자극제로 사용되어 왔다...디기탈리스는 의약품의 규격을 정한 <대한약전>에서도 극약으로 규정한다. 영국의 임상 약리학자 에런슨은 네델란드 후기 인상주의 화가 고흐가 디기탈리스에 중독되었다고 주장해 주목을 받았다. 고흐가 그의 담당의사였던 가셰박사를 그린 초상화에서 가셰박사 앞에 놓인 식물이 디기탈리스 라는 게 그 단서였다. 당시 디기탈리스는 안정제, 간질 치료제, 우울증 치료제, 수면제로도 쓰였는데, 고흐가 간질, 정신불안, 조울증 등으로 고통을 호소하자 디기탈리스를 처방했다는 것이다. 특히 디기탈리스를 남용하면 사물이 노랗게 보이는 황색사증이 나타나는데, 고흐가 노란색을 즐겨 쓴 것도 즐겨 마시던 압생트와 더불어 이 디기탈리스의 영향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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