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다. 일을 열심히 해서 피곤한 게 아니라, 어제 어쩌다가 맥주 두 캔을 먹고 누웠는데, 갑자기 친구 호출에 나가서 새벽에야 들어와졌다.

 

 그리고 오늘 현장학습 다녀오니 딱히 피곤하다기 보다 너무 피곤해보였나 보다. 오후 체육샘의 배려로 수업엔 따라 들어가지 않고 쉬고 있는데, 친구가 등을 떠밀어 보건실에 가서 누워 있었다. 그럼  집에 와서 그냥 자면 좋으련만 저녁 먹다가 반주로 맥주를 한 잔 마시다 말고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자정이다.

 

출근에 지장 없으려면 내처 자야 하지만, 먹다 남은 맥주 마저 마시고, 쌀국수 하나 끓여 먹고 세수도 했다. 피곤한 탓을 괜히 순한 사람한테 심술로 부리고 없던 말을 지어내 실험했다. 괜한 짓이고 쓸데 없는 말이다. 좋은 말을 왜 이렇게밖에 못 쓰는지. 반성하는 맘으로 일어나 앉았다.

 

 왠만한 알라딘 굿즈에 현혹되지 않는 나인데 -모든 공산품은 궁극적으로 쓰레기다- <나는 왜 쓰는가>가 막걸리잔을 준다고 할 때부터 이 책을 살까말까 무지 고민을 했다. 막걸리 잔에 현혹 된 것은 이차적인 문제고 먼저 사람, 그리고 두 번째는 책 제목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근데 어제 술 마시러 나갔다가 우연찮게 이 책을 건네 받았다. 그래서 일주일을 사이에 두고 한창훈의 책 두 권을 읽게 되었다. 그의 책 <홍합>은 읽지 않았지만, 읽은 듯한 느낌이 나고, 아마도 그의 소설을 한 권쯤은 읽지 않았을까 싶은데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에 대한 대책 없는 호감은 책을 읽지 않고서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암튼, 섬사람 한창훈. 그는 남자다. 

 

지난 주에 읽은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가 거문도 주변의 물고기 사전이라면,  <나는 왜 쓰는가>는 (제목만으론  '소설은 어떻게 쓰는가'로 이해한 책이다) 한창훈 주변의 사람사전이다. 따지고 보면 소설작법에 상응하는 형식이 아닐 뿐. 한창훈이란 소설가는 이런 환경 속에서 이런 깨달음을 얻고 이런 소설을 쓴다. 하는 이야기다. 이야기가 되는 그의 삶, 그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람들에 대한 해제 정도가 되겠다. 산문집인데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고 그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소설 속의 캐릭터 같다. 작가는 어쩌다 보니 먹고 살기 위해 재주없는 사람이 소설가가 되었다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그의 문장은 오래 단련되지 않고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척 읽으면 탁하고 와서 박힌다.

 

 그러나 섬은 푸른 바다 한가운데 익사 모면할 정도의 몇 뼘 땅.

 광활한 수평의 세상을 버티고 있는 수직의 장소, 방파제를 넘어 달려드는 거대한 파도와 초속 30미터의 강풍, 어부의 죽음, 가지가 한쪽으로만 늘어나 버린 팽나무, 단 한 뿌리라도 더 캐려다가 비탈에서 떨어져 버린 아낙, 살아남은 자들의 깊은 주름, 급경사의 밭, 끝없이 이어지는 일, 이젠 됐다 툭, 떨어지는 동백꽃.

 바다와 바람 외에는 모든 결핍의 장소, 이별과 쓸쓸함 만큼은 풍족한 곳, 사람도 섬을 닮아 버린다. 각자 독립된 고립이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풍경이 된 채 달이 가고 해가 바뀐다. 섬은 고독을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견디기 힘들다. 80

 

산문집이란 것은 일상에 대한 사유고 삶 그 자체다. 산문집 두 권을 읽고 나니, 한창훈이란 사람이 보이고 그의 소설들도 읽고 싶어 졌다. 월욜이 휴일이었다 보니 일주일이 더 금세 간 느낌이다. 읽을 책이 밀렸다.

 

(어제도 느끼고 오늘도 느끼고,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에 대해 감사하다. 그들의 존재는 내겐 늘 과분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나는 왜 쓰는가>를 건넨 친구도 그렇고 지금 당장 신세를 지는 친구 아무개도 그렇고, 나는 늘 존재 자체가 민폐라는 기분으로 사는 데. 그들은 왜 나에게 그렇게. . . 생각을 퇴근길 전철에서도 내내 했다. 인연이고 운명이라면 그들에겐 너무 가혹한 일이다.)

 

한창훈의 산문에 대해, 거문도와, 물고기와, 사람들에 대해 더 수다 떨고 싶지만 졸릴 때 자야 겠다. 자는 게 남는 장사 맞겠지....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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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8 0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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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8 02: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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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8 02: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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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8 06: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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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2 23: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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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2 23: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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