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지금 나 몹시 허기진데...라며...

 

늘 느끼는 거지만, 모르는 게 왜 이렇게 많은 거야를  계속 되뇌며 책을 읽었다. 섬사람. 한창훈. 그의 고향은 거문도였다. 거문도에서 나고 자라 여수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태생적으로 뭍사람들이 따라 갈 수 없는 바다 사나이만의 흥취가 이 안에는 있었다. 음식에 탐닉하고 시장 께나 돌아다니고 모르는 괴기가 있으면 찾아 보고 했건만.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까지 다 엉터리로 알고 있거나, 알았나? 하고 계속 중얼거리게 된다. 내가 그렇지 뭐..

 

첫 장에 나오는 거문도에서 먹는다는 갈치국. 제주도에서는 갈치국에 호박을 넣고, 거문도에서는 엉겅퀴를 넣는다는 국. 다행히 내게는 엉겅퀴를 넣어 끓인 된장국에 대한 추억이 있어 맛이 조금은 상상이 되었다. 아직은 바다 낚시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으나 더 늙기 전에 한 번은 이루어 볼까 싶잖아서. 이런 책을 감칠맛나게 읽는 것만으로 고달프고 시간 쓰이는 로망은 대체하기로 한다.

 

책 뒷 표지나 알라딘에 있는 광고글들은 이 책을 제대로 말해주지 못한다. 그냥 호객하는 듯한 감각적인 광고 멘트일 뿐이고. 그냥 이 책은, 말 그대로, 자산어보. 우리가 알지 못했던 바다 생물에 대한 생태학적이면서 생활적인 보고서. 바다를 동경한다해서 쓸 수 없는, 그 안에서 태어나고, 살고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생활글이다. 부럽다.

제주도에서는 호박을 넣어 끓인다. 거문도에는 항각구국이라는 게 있다. 이게 갈칫국이다. 항각구는 엉겅퀴ㅣ의 이곳 말이다. 국화과의 여러해살이 풀. 들에 핀 엉겅퀴를 팍팍 삶아 쓴 맛을 우려 낸 다음 된장에 버무리고 갈치 넣고 젓국으로 간 맞춘 게 항각구 국이다. 단맛의 갈치와 쌉싸래한 엉겅퀴가 잘 어울린다.
"국이 좋으니까 밥 한 그릇 먹어봐"
하면, 이 국이 있다는 소리이다. 섬사람들이 잔병치레를 안 하는 이유가 갈치와 엉겅퀴를 자주 먹어서 그렇다고들 한다. 육지로 이사간 이들이 소증을 가장 자주 느끼는 게 또 이 국이다. 이 곳에는 "갈치 뱃진데기(내장) 못 잊어서 육지로 시집 못 가겄네"라는 말이 내려 온다.

내가 아는 어떤 사내는 쇠고기와 모자반이 준비되면 일부러 소주를 마신다. 밤새 퍼마신 다음 날 시뻘건 눈으로 어, 어허, 소리를 내며 국을 퍼먹는다. 먹는 행위가 전투 같기도 하고 의약품 투여 같기도 하고 높은 강도의 몰입 같기도 하다. 그렇게 먹으면 더 맛있느냐고 물어보면 "이것은 보대끼는 맛으로 먹어"라고 한다. 속이 쓰리고 괴로울수록 더 맛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좁은 땅은 본능적으로 흙과 식물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코딱지만 한 땅뙈기만 있어도 채소를 심는다. 그리고 마당귀에 여러 층으로 화단을 만든다. 판자로 만든 층층대에는 꽃나무 화분과 분재가 촘촘하게 올라서 있으며 각 화분마다 전복과 소라 껍데기가 빈틈없이 박혀 있다. 담벼락 아래는 줄지어 수선화를 심고 탁자에는 뒷산에서 꺽어온 나리꽃이 꽂혀 있다. 동박새 키우는 집이 있기도 하다.

참숭어 알로 만든 어란이 왕왕 텔레비젼에 나온다. 아카시아 꽃이 피면 숭어가 알을 낳는다. 그 직전에 만든다.

노래미 耳魚 헤어진 사랑보다 더 생각나는 맛, 파리 날개 같은 두 귀가 머리에 붙어 있다, 고 해서 이어라고 하셨겠지만 아주 큰 것이라야 알 수 있을 정도이다. 맛도 좋다. 노래미회는 맛이 찰지고 보드랍다. 씹으면 은근한 감칠맛이 돈다. 껍질이 단단해 벗겨내기도 쉬운 편이다. 매운탕용으로도 좋다. 횟집에 가격표 대신 시가가 붙어 있는 몇 안되는 것 중 하나이다. 양식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는 여덟 시간 정도 지난 것이 가장 맛 좋다. 죽음의 시간이 주는 맛이다. 초고추장이나 고추냉이보다는 양념된장이 더 어울린다. 여수에선 된장빵이라ㅏ 한다. 전어나 병어처럼 단맛이 나는 살은 된장이 더 어울린다. 묵은 김치에 싸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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