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304
장석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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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시'를 받아 들일 땐 시에서 읊어지는 그 무엇들이 자기 내면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독자가 시인이 아니어서 내면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시를 찾아 읽을 수 밖에 없을 때,

둥글게 둥글게 살자는 명상도 옳긴 하지만 내 시를 보고/ 너무 이른 나이에 둥그렇게 되었다는 말도 옳아서/밤새도록 이 꺽인 고궁의 돌담 아래에 앉아 있어보는 것이다 //..// 영원히 새로운 풍경이 날 자유케 할터이니.'內面으로'

 

시인이 표현한 내면과 나의 내면이 만났을 때 독자는 기쁨을 얻는다.

나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내 아픔을 알아주는 시인은

나 조차도 마치 시인이 된 착각 속으로 몰고 가서

내가 가진 어지럼증의 한 귀퉁이에서 실마리 하나를 풀어 가만히 읊조리게 한다.

 

밤길을 걷는다/ 걸음은 어둠이나 다 가져라/걸음 없이 가고 싶은 데가 있으니/ 어둠 속 풀잎이나/바람결이나 다 가져라/ 걸어서 닿을 수 없는 데에 가고 싶으니...내가 밤길을 걸어서/ 새벽이 밝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새 날이 와서 침침하게 앉아/ 밤길을 걸었던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나는 벙어리가 되어야 하겠지/  '밤길'

 

'밤길'은 참 시인의 주저하는 낯빛이 보이는 시이다. 

헌데, 난 왜 이 시를 읽으며 들국화의 '행진'이  떠올랐을까.

거침 없는 전진을 연상케 하는 '행진'과

다분히 허무가 연상되는 '밤길'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 있는 이 안과 저 안처럼 밤길을 행진하고 싶은 시인의 번뇌가 가만히 전해져 온다.

 

저녁은 여럿이 오지 말고 딱 하나만 오라/ 내가 다 가지고 싶어라/그러나 이 어스름을 나는 다 가질 수  없어서/ 깨진 물동이처럼 무너져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데/ 남는 흐느낌을 다정스레 데리고/ 이 나무처럼 다시 서고 싶은데/ '겨울 저녁에'

 

이제 겨울이 오고 있다. 그래, 바로 이런 것이었어. 그는 지극히 사적인 내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정확히도 표현했을까..

 

밥 짓는 저녁

아궁이 앞에 앉아 있어야 할

저녁 놀이 질 시간,

주점 구석 연탄 화로 앞에서

돼지껍데기를 뒤집었다 엎었다,

마치

살들이 연탄불 위에서 구워지기라도 하는 듯이,

뜨거워서 못 견디겠는 이 마음을

젓가락으로라도 돌려 뉘어야 하겠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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