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바느질
자아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다녔다
자아의 문학을 한다고 했다
행여 부서질까
세상의 중심처럼 갓난아기와 같이 안고 다녔다
구심력이었다
어찌나 끌어안고 다녔던지
자아의 못에 박힌 가슴이 되었다
자아는 가슴에 박힌 못이 되었다
자아는 세상만큼 커지는 것은 아니었다
바위도 아니었다
내가 밀어뜨리지 않아도
시간이 와서 그것을 잘게 부수는 날이 왔다
마사토나 모래나 혹은 더한 흙의 가루같이
색동저고리 옷고름같이 갈기갈기 갈라진
그것은 목을 간질이고 목을 감는 끈이 되었다
목을 매라고 하는 것 같았다
괴롭고 성가셔
63빌딩 꼭대기층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 속에 넣고 물 내리는 스위치를 눌러 버렸다
자아
나는 또 나를 절벽으로 이끌어 갔다
한계령 바람 속에 섰다
바람과 바람이 허공 속에 잠시 매듭으로 묶였다가
풀어졌다가 한다.
모가지에 허공과 바람의 손이 간지럽다
가슴에 파란 이파리가 돋아난다
하얀 구름의 하얀 스크린 위에
'자아'라는 말이 흰 글씨로 흘러간다
그래, 결국, 그것은 말들 속의 한 단어였다
하얀 말들 속의 하얀 한 단어였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다
인생은 그런 단어들을 중심으로 스타카토로 끊어지기만 한다
끊어진 스타카토들을 모아 바람이 넋의 바느질을 한다
그러면 자아가 되고 내가 되고 그대가 되고
또 훨훨 날아가 구름의 자취가 된다
밀가루가 바람에 날아가듯
세상의 오만가지
자아가 원심력의 궤도를 타고 날아간다
아니 궤도 따위는 없다
얼굴 없는 시간이 된다
꽉 다문 이빨 사이로
피가 배어 나오는
석류의
수평선으로 수평선으로
홀로 날개를 저으며 나아가는
갈매기의
밀물에 들고 썰물에 나고
물결에 숨을 맞추고
그윽하게
스페인어로 '나다 이 뿌에스 나다'
우리 말로 '그리고 아무 것도 아냐 그리고....어 아냐 아무것도'
얼굴 없는 얼굴로 구름 위에 눕는다
시간 없는 시계로 바람 속에 흩어진다
공허가 나보다 더 큰 그 곳에서
그제야 비로소 가슴의 못을 뽑는다
당신의 손을 잡는다
김승희